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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Aug 05. 2021

그 여인의 남편이 돌아왔다.

중개의 현장에서




 내 사무실 뒷문은 주차장과 연결되어 있다.뒷문을 열어 놓고 청소를 하는데  아스콘 바닥을 뚫고 질경이 하나가 저렇게 의연하게 자라 씨앗까지 맺고 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의 출근 시간은 대략 30분쯤 걸리는 거리다. 사무실이 있는 내각리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왕숙천 위에 놓인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내각교라는 다리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무심히 다리 위에 정지하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다부진 체격의 아저씨가 보인다.

마스크를 썼지만, 안면인식장애끼가 있는 나도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이다.

'이제 집에 들어왔나 보군....'

마음 속으로 생각하며 신호등 지시에 따라 도로를 질주하여 동네로 들어섰다.


우연치 않게, 생각지도 못했던 이 동네에 들어온 계기는 인연에 의해서였다. 내가 이 동네에 터를 잡고 얼마 안 있어  저 아저씨가 집을 얻으러 오셨었다. 남자 혼자서 말이다.마침 빈 집이 있어 보여주자, 맘에 든다며 아파트를 임대로 계약을 하고, 부인에게 이사날짜를 전화로 알려주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부인은 아들을 데리고 오갈 데가 없어 친정에 가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그땐 방학기간이었다.


이삿날이 되자 잔금을 치르러 남편이 왔다.고무도 당당하게, 아니 뻔뻔스럽게 사무실에 들어서길래 앞으로 생길 일은 상상도 못했다.잔금이 몇백만 원 부족하단다.살림을 실은 차는 사무실 앞 도로에 서 있는 상황이었다.


돈이 부족하더라도 입주를 시켜달라고 막무가내로 들이미는 아저씨. 주인인 노부부는 기존의 임차인에게 내주어야 하는 금액이니 차질이 생기면 안된다고 완강하게 거부를 하셨다. 이런 사태는  이사 나가는 기존의 임차인인을 당황하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딱하기는 양쪽 다 마찬가지다.


체구 당당한 그 아저씨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두 명의 남자들은 왜 사정을 안 봐 주느냐고 오히려 당당했다.

이럴 때, 중개한 공인중개사는 주인분께 죄인이 된다.

"왜 이런 사람을 소개했느냐" 쉬운 말로 욕받이가 되는 꼴이다. 우린들 알겠는가!

중개의 현장에서 집을 얻으러  온 사람을 대면하기는 주인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초면인 것이다.

걱정은 갈수록 태산이 된다. 월세의 보증금도 못 치른 사람들이 다달이 임대료는 잘 내겠는가하고 걱정에 걱정이 또아리를 틀고, 급기야 나를 향한 원망은 첩첩 강산이 된다.


이럴 때, 죄 없는 기존의 임차인을 위해, 성질 급한 내가 매듭을 끊어내야 한다.이사를 오는 사람은 이런 원리를 아주 잘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 자신의 딱한 처지를 당당하게 호소한다.

"제가 보태서 치를게요!" 결국은 내 돈을 보태서 잔금을 치뤘다. 다른 공인중개사들이 극도로 터부시하는 일을 행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차용증을 쓴다. 언제까지 상환하겠다는 날짜를 명기한다. 이래서 무사히 이사를 가고, 이사를 했다.


결국 이 손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칠만..며칠만 하더니 도무지 갚을 생각을 안 했다.전화를 했다.

전화의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받았다.

"아무개씨 전화 아닌가요"

"그 사람 죽었어요"

주변에서 키득거리는 소리. 내 돈 주고 이런 수모를 겪게 되나니..주변에 많은 남자들이 모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도박장이 아닐까 의심이 들게하는 묘한 분위기가 전화 속에서 흘러 나왔다. 기가 막혔다.


퇴근 무렵 그 집을 찾아가 벨을 눌렀다.아내가 문을 열었고, 거실 한 가운데서 아이들과 저녁 식사 중이던 남자는 웃통을 벗고 있었다. 청화백자 속의 용이 뒷덜미에서 팔뚝으로 수를 놓고 있었다.

이 사람의 정체를 예상은 했지만 확실한 실체를 눈 앞에서 확인하니 오히려 더 침착해졌다.이런 사람들이 나는 무섭지 않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선량하며, 양심을 지키고, 소박한 꿈을 이루려고 성실하게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절대 함부로 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비뚤어진 생활방식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간성이 아닌 사람들이 나는 안 무섭다. 내가 일하는 식당에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와 애정을 과시하며 밥을 멕이더라는 말을,그의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전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무슨 죄랴! 아이들이 알세라 이 사람들을 밖으로 나오게 했다. 그리고 약속을 받아냈다.


이후...그들은 내 속을 무진장 썩힌 후에야 돈을 갚았다. 그 집이 만기가 된 후에는 처음의 보증금도 없이 집을 나와야 했다. 임대료가 연체되니 되찾을 보증금이 없었던 것이다.


남자가 이젠 어느 여자분을 모시고 왔다. 여자분은 현금다발을 들고 와서 다른 집을 계약해주고 갔다. 사채를 쓴 것이었다. 몇 달 후 이들은 그 집에서도 쫒겨났다. 사채를 빌려 준 사람이 이자를 갚지 않자 강제로 이사를 시킨 것이다. 부인은 남편에게 애원했다고 한다. 제발 이혼을 해달라고.


생활비를 한 푼도 안 가져다 주는 남편이 버젓하게 호적에 등재되어 있으니, 그 가정은 '한부모가정'을 위해 준비된 혜택을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었다. 제발 그런 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게 아내는 남편을 향해 이혼을 사정했다. 서류가 정리되고, 아빠가 집을 나가자 아이들은 학자금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지원하는 전세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었다.


아내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할 때마다 내게 찾아와 주었다. 한때,

"나도 아빠처럼 조폭이 될거야"를 외쳐  엄마의 가슴을 후벼파던 큰 아들은

 착한 장년이 되어 엄마대신 계약서에 서명을 하며 노안이 와서  글씨 식별이 어려운 엄마를 돕고 있었다.

동네서 가장 깔끔한 머리스타일을 고수하던 작은 아들도 세월만큼 커 있었고, 힘을 잃은 건장한 남편은 풀죽은 모습으로 아침 운동을 나가고 있다.



그의 등판을 수놓은 청화백자 속의 용을 생각하며 사무실 청소를 하는데 오랜 날 아스콘 바닥 위에 뿌리를 박고 있었을 질경이가 오늘에사 눈에 보인다.놀라운 일이다.

생명력이 질리도록 질겨서 질경이랬다.수레바퀴 아래서도 잘 자라 차전초(車前草)라 했으니 아내의 강한 생활력이 없었으면 저 가정은 산산히 부서졌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운명의 수레바퀴에 굴하지 않고 굳건히 가정을 지켜 낸 아내가 존경스럽다. 아내는 병든 몸을 이끌고 지금도 생활전선에 있다.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실감한다.

주차장 질경이는 아스콘 광장 위에서 물색없이 생기있다. 지금 살고 있는 아내의 집은, 여태 살아오던 집보다 넓고 깨끗하며 위치도 좋다. 밝고 정거장에서도 가깝다. 이 집을 맘에 들어했고, 내가 잘 아는 주인은 기꺼이 L.H전세자금대출에 응해 주었다. L.H전세자금대출은 전세금액에서 본인이 5%에 해당하는 금액만 부담하는

제도이다. 나머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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