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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Aug 05. 2021

이 시골에도 집값이 올랐다.

중개사의 상념


내 사무실에서 한신 아파트로 가는 지름길은 옛집들 사이로 난 골목을 통해야 한다. 단골 세탁소를 가기 위해 이 길을 택해 걸어 보았다. 언젠가는 사라질 골목 풍경이 이제 정겹다 못해 울컥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동네분들도 큰 길을 제치고 굳이 이 길을 통해 하나로 마트를 가고, 버스 정거장을 간다.  대동여지도의 김정호가 길을 걸으며 '길 위에는 신분도 없고 귀천도 없다'라고 했듯, 부자도 티를 내지 않는 이 골목은,  평범한 얼굴을 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가벼운 곳이다. 



남편의 약을 타러 간다는 연수 할머니를 만났다. 나는 이 분을"어머니"라 부른다. 동네엔 내가 '어머니'라 칭하는 분이 몇 분 계신다. 얼마 전 며느리가 전세로 살던 아파트를 매매했다. 며느리는 베트남에서 시집왔다. 아이가 어렸을 때 남편이 먼저 멀리 갔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할머니는 며느리를 아파트 같은 동으로 이사 오게 했다. 아이는 아빠가 미국에 가 있는 줄로만 알고 컸다. 길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아이는 어딘가 풀이 죽어 있었지만 멀쑥하게 잘 크고 인물도 좋다. 

"어머니!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어요." 며느리가 산 아파트가 그 사이 6000만 원이 뛰었다. 방이 2개에 거실이 넓은 소형 아파트다. "그래? 사라고 말해 주어서 고마워!" 얼굴이 골목 옆에 핀 패랭이꽃처럼 환해지신다.



작년에 매매한 집값이 2억이 뛰어서 속상했다는 내 지인의 말이 마음에 걸려서 며칠 답답했다. 2억이 어디 작은 돈인가? 먹고살며, 자식들 뒷바라지하다 보면 평생을 못 만질 돈이 몇 달 사이에 주택 가격에 얹혀 거래가 된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결국 편치 않는 거래다. 사는 사람은 상투가 아닐까 싶고, 파는 사람은 더 오르지 않을까?, 매수인도 매도인도 그 밤을 하얗게 보낸다. 나는 그 심정을 알고도 남는다. 부동산은 수많은 정보가 난무하고, 소문이 무성해도 결국은 실행하는 자가 승자다. 지금 같은 주택시장에선 말이다.


올해,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잘 아는 주민이, 자신이 팔려고 내놓은  아파트 가격을 스스로 내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진작 내놓았으나 거래가 없자 덜 받고라도 팔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이웃 사무실 소장이 전화를 걸어  물었다. "사장님, 몇 동 몇 호 사모님 아세요?" "그럼 잘 알죠!"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왜요" " 저하고 좀 싸웠어요. 집에 안 계시길래 비번을 주셔서 집을 봤는데 침대 위에 누가 누워 본 자국이 있다고 따져서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손님이 왜 남의 침대에 올라가 누워 보겠는가. 그걸 보고 가만있을 중개사는 없다. 



 조심해야겠다 싶어 손님들께 그 집은 추천을 안 했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내가 거래를 하게 됐다. 입주 날짜가 서로 잘 맞았기 때문이다. 1월 계약에 입주는 7월이다. 이 집이 계약되자마자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오른다. 오른 것은 둘째치고 입주할 물량이 없다. 계약자가 생기면 너도나도 물건 거둬들이기 바쁘거나 가격을 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매도자가 원하는 지역은 이미 더 큰 폭으로 상승해서, 시골의 작은 아파트를 판 가격으론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잔금이 멀어지면 중개사인 나도 편치가 않다. 까다로운 주인분이 어떻게 나올까 긴장의 연속이다. 몇 달이 지나도 매도인은 일언반구 반응이 없고, 손님들과 상담하느라 바쁜 와중에 슬쩍 들러서 과일까지 놓고 갔다. 결국 매도인은 집값이 아무리 올랐어도 그냥 밀고 가겠다는 뜻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며칠 전, 매도용 서류를 떼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전화를 받고 나는 안도했지만 또 한 편으로 거의 배액이 오른 가격 때문에 죄인이 된 심정이었다. 이 분은 강남에 있는 아파트가 재건축이 되어 입주를 한다. 강남의 아파트가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하게 급등을 해서 일억 몇 천은 무시해도 될 금액인가 보다 한다. 매수인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같은 단지의 제일 큰 평형을 그때 가격으로 제일 비싸게 매물로 내놓은 손님이 있었다. 그게 매매가 되었다. 이 동네서 열여덟 해를  있었으니 매물을 내놓은 사람들은 가정사까지 환하다. 나를 믿고  맡겨주는 것이다.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된 것이 나중엔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매매가 된 꼴이 된다. 역시 맘이 편할 리가 없다. 내가 풀 수 없는 문제는 누구의 체념으로 이어진다. 


하늘이 도왔을까? 세상에...

매수인이 잔금을  한 달 미뤄달라며 사정을 했다.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겼다며, 한 달 미뤄주지 않으면 다른 데서 빌릴 생각을 하고 있단다.  내가 물었다. " 매도인이 계약금을 돌려드리면서 없었던 걸로 하자고 하면 그렇게 하시겠어요?" 매수인이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을 했다 " 네!"


이럴 땐, 매도인이 평소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복받았다고 우리는 웃으며 이야기한다.  매도인도 근심의 나날이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없어졌으니 얼굴이 활짝 핀다. 계약금을 돌려 주고 계약은 없던 것으로 하기로 했다. 평온할 일상들이 집값 때문에 올고 불고, 불행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억울해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것으로 불행하고, 부동산을 재테크 수단의 도구로 삼는 것이 떳떳한 행위가 아니라고 여겼던 사람들만 무능력자가 된 세상이다. '사업가가 모이면 예술을 이야기하고, 예술가가 모이면 돈을 이야기한다'라는 역설이 눈물겨울 때, 바람직한 삶의 지점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은유 작가의 말처럼 '삶의 겨울'에서 절망한다.




오며 가며 보게 되는 옛 방앗간이다. 예전 같으면 미관을 해친다고 불만이 가득했을 텐데 오래 봐서 그런가 눈길 부드럽게 바라보게 된다. 이 방앗간은 이 지역 3선을 했던 전직 국회의원이 지분으로 소유하고 있다. 내각리는 풍수지리학상 터가 좋은 곳이다.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준 정종이 이 동네에 궐을 짓고 살았다. 방원이 임금으로 있는 한양이 싫어 태조 이성계도 이곳에 머물렀다. 옆 마을 이름은 이성계가 여덟 밤을 머물렀다 하여 팔야리다. 내각리의 별칭은 대궐터다. 


생명의 끝이 보이는 골목은 안쓰러워서 더 마음이 간다. 골목길에 서면 마음이 푸근해서 좋다.  고개 쑥 내민 접시꽃이 마음에 박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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