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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Aug 05. 2021

관리비를 왜 내가 내요?

당신의 기억을 믿지 마세요.



특약 6. 세입자 이사 후 1주일에서 2주일 정도 수리기간을 주기로 하며, 공사 후 관리비 및 공과금은 매수인 부담임.


이 특약은 매수인(집을 산 사람)이 수리를 하여 입주할 수 있도록 매도인(집을 판 사람)과 줄다리기를 해야 했던 사항이다. 매도인은 매수인의 수리기간을 주기 위해 임차인에게 이사비용을 주기로 약속을 했다.  2주일간의 임대료와 임차인에게 주어야 할 이사비는 고스란히 매도인 부담이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확인하고  동의 하에 문구를 넣었다. 


나는 수시로 세입자께 집을 얻었느냐고 전화를 했다. 그는 작업이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한다. 약속한 기일은 다가오는데 본인은 오죽할까! 며칠 후 집을 얻긴 얻었는데 날짜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내가 곤란해질까 봐 짐은 보관소에 맡기고, 자신은 새로 얻은 집에 입주하는 날까지 고시원에서 살기로 했단다.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 젊은이의 중심이 곧아서 감동했지만, 그동안 길바닥에 버리는 돈이 나는 아까웠고 안타까웠다. 이럴 때 이사비는 두 배가 들어간다. 거기다 고시원 비용도 적지 않다.

젊은이는 꼭 이 동네로 이사를 올 것이며, 집을 구할 때 누구도 아닌 내게 온다며 떠났다.


매수인께 전화를 했다. 

‘세입자가 오늘 이사를 했어요. 내일부터 수리 들어가도 됩니다. 내일부터 관리비는 부담하시는 겁니다 “


관리비 소리를 듣자마자 예민해진 수화기 저쪽의 목소리다. 자신은 미리 수리를 안 해도 되고, 왜 관리비를 내느냐는 투다. 특약을 읽어보라고 해도 그런 특약은 모른단다. 


잔금 날 얼굴을 대면한 후 이야기하자 했다. 잔금 날이 왔다. 계약서를 함께 보며 특약을 읽어주어도 자긴 기억이 없다고 펄쩍 뛴다. 동행한 자신의 언니에게도 묻지만, 본인도 기억 못 하는 걸 언니가 어찌 알겠는가. 자신이 원해서 넣은 특약이었다. 서명과 날인을 하기 전에 계약서를 읽고, 더 명기하고 싶은 문구가 있느냐 꼭 묻는다. 계약서에는 자신의 서명과 날인이 빨갛게 웃고 있다. 그녀는 60의 중간을  막 넘긴 나이였다. 

            







내게서 큰소리가 나온다.


’‘이제 자신의 기억을 너무 확신하지 마세요. 내 기억에 없다고 덮어놓고 부인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말의 기억이 확실하지 않으니 이렇게 문서로 남기는 거예요. 문서로 작성해서 서로 나눠 가진 것까지도 기억에 없다고 부인하면 되나요?” 그녀는 끝까지 용인을 안 했다.


빈집의 비밀번호를 내 명함에 써 달라고 한다. 잔금을 치르기 전이지만 어차피 치를 걸 맨도롬한 명함 뒤판에 적어준다. 1 분도 안 돼서 그녀는 명함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다며 허둥댔다. 잠자코 다시 메모지에  비밀번호를 적어주었다.






아버지 발인은 겨우내 쌓인 눈이 수만 개의 빛으로 반사되던 입춘날이었다. 관 위로 흙이 덮이자, 뻐꾸기의 짙은 울음이 산을 타고 흘렀다. 우리의 목울대에 뻐꾸기가 살고 있었다.

엄마는 예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돌아가신 아버지도 마친가지다. 동갑이시니까.


엄마는 조의금을 모아 놓은 봉투가 없어졌다고 했다. 집을 다 뒤져도 없다고 했다. 괴로운 건 일가친척이 된다. 자식이라고 다를까! 이런 사건은 쉬 쉬를 해야 한다. 가장 힘없는 작은엄마가 나서서 자신의 아들이 ’혹시‘하며 근심 어린 얼굴로 의논을 한다. 당신의 아들이 언제 나갔는지 안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 모양새가 어찌나 누추하던지 엄마에게 부아가 솟았다.


이 작은 엄마는 마흔이 되기 전에 둘째 작은아버지와 사별을 했다. 아이는 셋이었다. 호방하기 짝이 없던 작은 아버지는 별 터전 없이 살아오다 조상님의 산소 문제로 시골을 가던 중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그 가족을 우리 집 별채로 불러드린 건 아버지 뜻이었다. 막내의 교육을 떠맡겠다고도 한 아버지였다.


엄마는 장롱의 이불 사이사이까지 다 찾아봤다며, 누군가의 손을 탄 게 분명하다고 못을 박았다. 나는 좀 단호하다. 그런 면이 내게 손해로 다가온다 해도 생겨 먹은 걸 어떻게 하는가. 생겨 먹은 대로 살지 못할 때, 마음에 건 몸에 건 병이 온다고 믿는 나다. 엄마가 애지중지 아끼며 감히 덮고도 못 자는, 장롱 속에 차곡차곡 쌓인 이불들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각 잡힌 이불들이 아메바 몰골로 흐물거렸다. 안방이 이불로 꽉 찼다. 이불을 하나씩 털어 마루로 던지자 어디선가 떨어진 흰 봉투가 장판 위에 누워있었다. 작은 엄마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이래서 잃어버린 사람이 죄인이란 소리가 나온다. 엄마를 대신한 송구스러움과 미안함이 슬픔으로 가득한 가슴을 후벼 팠다. 작은 엄마가 느꼈을 모멸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작은 엄마가 눈에 안 보이는 자신의 아들을 의심할 때, 엄마는 “걔가 그랬을 리 없지!” 해야 했다. 동조를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이와 더불어 오는 ’ 인지능력의 감퇴‘와 ’ 기억력의 저하‘는 당연하다. 기억의 한계를 ’ 인정하는 자‘ 와, 부득부득 ’ 우기는 자‘ 사이에서 우리가 취할 태도는 어느 쪽이 아름다울까!


내 기억을 나조차도 믿지 못할 때가 많다. 그것이 타인의 재산에 관계되는 일이라면 한 여름임에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일이다. 방법은 하나다. 다른 건 몰라도 부동산에 관한 것은 메모를 한다. 


’ 사람은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킬만한 좋은 기억력을 지녀야 한다.‘는 니체의 말이 내게서 떠나지 말기를 소원하면서 말이다.




관리비는 특약대로, 매수인이 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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