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손질을 해야 하는 이유

좌충우돌 군대 이야기. 02

by 윤명

ROTC 학군사관후보생은 대학 3, 4학년의 여름과 겨울 방학 기간 동안 각각 4주, 2주의 군사교육을 받는다.


이건 3학년 겨울방학, 2주간의 동계 군사 훈련에 있었던 이야기다.


이번 훈련에서 배정받은 생활관에는 9명의 동기들이 있었고, 추운 겨울이지만 누구보다 뜨거운 마음과 열정으로 함께 훈련과 평가를 받으며 어느새 끈끈한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훈련이 절반을 넘어간 2주 차의 어느 날 오후, 일과를 마치고 내일 있을 사격 평가에 대비하게 위해

동기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총기 손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야야~ 누가 총기 손질하고 평가받으러 가냐~ 그냥 둬~ 조준하고 쏘면 그냥 다 맞는 것을... 아휴 짜식들"


생활관 침대에 누워 어깨를 벅벅 긁고 하품을 하며 가소로운 표정으로 총기 손질하는 나와 동기들을 향해 말했다. 그는 생활관에서 가장 게을렀던 동기였다.(게동이라고 부르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코웃음을 쳤고, 묵묵히 총기 손질을 이어갔다.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사격 평가가 있는 날이다.


"목표!!! 사격교장!!! 출발 순서는!! 1,2,3,4 중대 순으로!! 각 중대별 인솔!!"


매 훈련 대대장 후보생으로 발탁되었던 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대대장 후보생으로서 동기들을 인솔했다.

학과출장(훈련장으로 이동)을 갈 때에는 아버지 고개라는 이름부터 뜻깊고 아주 힘이 든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데 처음에는 오르기도 전부터 땀이 났던 이 고개도 어느새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고개를 내려오면 왼쪽에 공수 연습장이 보이는데, 라떼는 공수 훈련이 교육 과정에 없어서 매번 지나치기만 했다.


또 하나의 산을 넘어 드디어 사격교장에 들어섰다. 좌측으로 길게 뻗어있는 사격장이 눈에 들어오고 내리막을 가면서 사로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야 게동아, 오늘 만발 가능?"

"아 물론~ 쌉 가능이지, 내가 보여준다. 총기 손질 따위는 필요 없다는 걸"


게동이는 나의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했는데, 나는 왠지 그 순간부터 웃음이 자꾸 흘러나오고 있었다.

훈련 간 지켜본 결과, 항상 자신감은 넘치는데 뭔가 50%로 이상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는 동기였기에 이번에는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기대까지 하고 있었다.


- 탕탕! 타타탕! 탕탕탕!!


앞선 순서의 사격 소리를 들으며, 어느새 순서가 앞으로 다가오니 긴장이 되기 시작했고 개머리판에 반창고로 붙여놓은 나의 견착 위치를 계속 신경 쓰며,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했다.


그리고 드디어 사로에 입장했다.

긴장된 상황 속에 부사수로 앞의 동기들이 사격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옆을 보니 세동이가 몸을 풀고 있는 게 보였다. 도대체 사격 전에 어떤 몸을 푸는 건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긴장된 상황 속에서 나를 항상 웃게 해주는 동기가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제 내 차례다.


- 탄알집 결합, 노리쇠 전진, 탄알 1발 장전, 조정간 단발,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사격 통제관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전방 100m에 상반신만 보이는 표적이 올라왔다.


돌격사격자세(전진무의탁)에서 재빠르게 무릎 쏴 자세를 취하고 조준을 하는 동시에,

오른쪽에서 절망에 빠진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기...!!! 기능고자아앙!!!!!"


동이의 사로였다.

짧지만 강렬했던 사격이 잘 끝났고 사로에서 나와 대기 장소로 올라오자마자,

나와 생활관 동기들은 빵 터지고 말았다.


"게동이 이 시키 어제 총기 손질 안 할 때부터 알아봤다 하하하하"

"이번에도 크게 한 건 했다!!"


그렇게 불합격한 게동이를 위로하며 총기 손질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고, 복귀하는 길에 게동이가 나에게 물었다.


"기능고장 아니었으면, 합격했겠지?"


노을이 지는 붉은빛으로 가득한 아버지 고개를 넘으며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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