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군대 이야기. 03
2017년 뜨거운 8월의 여름,
사관후보생으로서의 마지막 훈련을 받고 있었던 뜨겁고, 치열했던 우리의 이야기이다.
임관을 하기 위한 수많은 평가 중에 '분대방어' 과목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분대장 역할을 맡아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동기들에게 동기부여를 전하고 있었다.
"얘들아, 내가 잘 준비하고 알려줄 테니까 진짜 그냥 영화 찍는다고 생각하고 리얼하게 해 보자"
분대전투 교장에서 생활관 동기들과 원형으로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평가의 절차와 행동 요령을 공유하면서 평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후보생 당시에는 군 생활에 뜻이 있었기에, 훈련을 오기 전에 집체교육을 통해 철저히 준비하고 연구했고
특히 필자는 '연기'를 잘하고 '목소리'가 누구보다 군인다웠기에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처음에 평가 시작하지 않더라도 진지 투입 전부터, 우리는 사주경계를 하면서~ 교관님을 기다리는 거야"
"아 그리고 부상자 발생 상황에는, 그냥 죽기 직전이다~ 생각하고 리얼하게 연기해 봐. 언제 또 이런 연기를 해보겠어~"
동기들에게 강조한 부분은 기본적인 분대 방어의 순서와 리얼한 연기력이었고,
나머지 명령하달과 무전 등은 내가 해내야 할 과제였다.
"아...개덥다 진짜"
"물 혹시 남은 사람?"
"아니 난 무릎 앉아 자세가 왜 이렇게 아프냐, 나만 그래?"
아지랑이가 사방팔방 보이는 뙤약볕 한가운데 여기저기 흩어져 은엄폐한 자세로 순서를 기다리며 서로 각자 할 말만 하며 정신을 부여잡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우리 점수 잘 주세요~"하는 퍼포먼스였는데, 잘 따라와 준 동기들에게 고마운 생각이 든다.
드디어 평가가 시작되었다.
- 적 포탄 낙하!!! 진지호 대피!!
- 전방 적 발견! 보고하겠음!
- 사격집중지역 적 도달! 화력지원! 분대 사격개시!!
- 적 밀집지역으로 기관총 사수, 유탄 사수 사격!!
- 적 분대방어지역 일부 돌파! 진내사격 요청! 분대!! 진지변환!!
악을 지르고 폭포수와 같은 땀을 흘리며 10명 모두 최선을 다해 평가를 받고 순조롭게 끝나가고 있는 듯했다.
"자~ 상황부여 합니다. 부상자 발생"
캄캄한 선글라스 아래로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듯한 교관님의 마지막 상황부여가 있었고, 부상자의 역할은 생활관 안에서 가장 차분하면서 전역 후 학교 선생님을 꿈꾸는 동기가 맡게 되었다. (차동이라 부르겠다)
차동이는 그 자리에 누워 흡사 전쟁영화에서 부상당한 병사처럼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정신 차려!! 괜찮아!! 지혈대 어딨어!!!"
항상 차분하고 조용했던 차동이가 눈이 흰자만 보일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온몸을 파르르 떨며 경련을 일으키니 주변 동기들 모두 더 몰입해서 부상자 발생에 대한 조치를 하고 있었다.
"상황종료! 평가 종료합니다. 원위치"
드디어 끝났다. 교관님이 평가를 마무리하셨는데, 이상하게도 아직 차동이는 계속해서 부상자를 연기 중이었고 순간 이상함을 감지했다.
"교관님, 이상합니다!"
입에 거품까지 물고 있는 모습을 보고 빠르게 대기 중인 엠뷸런스에 실어 차동이는 의무대로 호송되었다.
당황스럽다 못해 모두가 멍하니 벙 찐 모습을 하고 있었고, 걱정된 마음을 안고 훈련에 복귀해 생활관에 들어서니 차동이가 본인의 침대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연기였는데... 갑자기 막 흐려지고 기억이 안 나..."
걱정하는 우리들과 다르게 괜찮다고 웃으며 말하는 차동이의 모습을 보고 미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더운 날씨에 급격하게 소리를 지르고 과호흡을 하면서 이상증세가 온 것 같다고 했다.
"평가를 영화처럼 하자 했더니, 평가가 아니라 그냥 우리 이야기가 영화처럼 되어부렀다"
그렇게 누구보다 찐 배우였던 차동이의 메서드 연기에 힘입어 남은 훈련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지금 차동이는 멋진 선생님이 되어 대한민국의 미래들을 열심히 교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