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연애 이야기. 02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연인이 아닌 누나와 동생이었던 시절로 되돌아간다.
연하는 안 만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그녀에게
나는 연하였지만, 최대한 남자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절대로 누나라고 부르지 않고 슬쩍슬쩍 말을 놓아가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높디높고 완고한 철옹성과 같던 그녀가 어느새 시간을 내주고 함께 동네를 걷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서로의 안부를 묻던 딱딱한 대화에서, 일상을 공유하고
끊이지 않는 잔잔하고 설레는 대화로 변해가는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쌀쌀한 바람마저 따뜻하게 느껴졌던 가을의 어느 날,
평촌에 유명한 테마파크인 중앙공원을 걸으며 산책을 하고 있을 때
연하남의 어설프지만 용기가 담긴 플러팅이 시작되었다.
"우리 눈 감고 걷기 해볼래??"
뜬금없고 어이없는 맥락의 현장이었지만, 너무나 고맙게도
그녀가 해보자며 긍정의 대답을 해주었다.
"나 믿고 그냥 계속 걸어가자~"
"앞에 계단 있어~! 조심~"
"눈 뜨지 마~! 나 믿어야 해!!"
그녀의 팔목을 잡고 가까이 붙어서 눈을 감은 채 공원 이곳저곳을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같이 걷는 것은 처음이라,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번에는 내가 눈 감아볼게"
"나는 진짜 믿어 눈 절대 안 뜰게"
순서를 바꿔 눈을 감고 그녀에게 팔과 몸을 기댄 채 하염없이 걸었다.
눈을 감으니 나를 잡고 있는 손과 기대고 있는 어깨, 너무나 좋은 그녀의 향기가
더 짙고 예민하게 느껴졌다. 참말로 행복했다.
그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설렘과 긴장감으로 머리가 폭발했기 때문에.
그 순간이 내가 기억하는 연인이 되기 전에 가장 큰 스킨십이었고,
어설프지만 성공한 플러팅(?)으로 남아있다.
8년이 지난 지금 와서 눈 감고 걷기를 하면,
장난을 치거나 실눈을 뜨고 걷는 등.
예전의 풋풋하고 설레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처음 느꼈던 설렘은 연약하고 예민하며 순수했다면,
지금의 설렘은 단단하고 투명하며 포근하다고 표현하고 싶다.
여전히 변함없이 설레고 사랑스러운 그녀와 함께하고 있는 매일이 너무나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