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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Oct 24. 2018

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단편 중에서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슈투트가르트 출신의 젊은 여인이 초대 전시회에서 어는 평론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는 악의적인 의도는 없었고 그녀를 북돋아 줄 생각이었다.

" 당신 작품에는 재능이 보이고 마음에도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젊은 여인은 점점 이상해져 갔다. 화실을 비운 적은 거의 없었지만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깨어있기 위해 약을 먹으면서도 자신이 무엇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피곤해지면 의자에 앉은 채 잠이 들었다. 잠이 깊이 들까 두려워 침대에 눕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밤새도록 불을 켜 두었다. 그림은 더 이상 그리지 않았다. 베를린에 있는 어느 상인이 전화를 걸어 그림 몇 장을 청했을 때 그녀는 전화에 대고 소리쳤다.

" 나를 내버려두란 말이에요! 나는 깊이가 없어요!"



한때 그렇게 그림을 잘 그렸던 젊은 여인은 순식간에 영락했다. 그녀는 외출도 하지 않고 방문도 받지 않았다. 운동부족으로 몸은 비대해졌으며 알코올과 약물 복용 때문에 유달리 빠르게 늙어 갔다. 집 안 여기저기 곰팡이가 슬기 시작했고 그녀에게는 시큼한 냄새가 나기까지 했다. 그녀는 3만 마르크를 상속받았는데 그것으로 3년을 살았다. 이 시기에 한번 나폴리로 여행을 갔었다. 어떤 상황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에게 말을 건 사람은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이 웅엉거리는 소리만을 들었을 뿐이다. 돈이 떨어지자 그 여인은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전부 구멍 내고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는 텔레비전 방송탑으로 올라가 139미터 아래로 뛰어내렸다.


앞에서 말한 평론가는 젊은 여인이 그렇게 끔찍하게 삶을 마감한 것에 대해 당혹감을 표현하는 단편을 문예란에 기고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거듭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사람이 상황을 이겨낼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을 다 같이 지켜보다니, 이것은 남아있는 우리에게 또 한 번 충격적인 사건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관심과 예술적인 분야에서 사려 깊은 동반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국가 차원의 장려와 개인의 의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결국 비극적인 종말의 씨앗은 개인적인 것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오래전 대학 1학년 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27년 만에 다시 그의 작품을 읽어보니 역시 새롭다. 한 예술가의 인생이 평론가의 평론에 좌지우지되는 모습이 안타깝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TV에 나오는 잘 나가던 연예인들이 어느 날 자살하고 떠나 버린 후 그네들의 인생을 돌이켜보는 인생 다큐멘터리를 보면 늘 이런 식의 포장이 있다. 과연 비극적인 종말은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 그 깊이에의 강요를 한 사람들은 늘 쉽게 이래저래 평을 해댄다 남의 작품에 대해 남의 인생에 대해.. 과연 평론가 필요한 직업인가? 책 하나를 출간해도 평론가의 평이 필요하고 음반을 하나 내도 평론가, 영화를 하나 봐도 평론가의 말에 의존하는 사람들.. 평론가의 한 마디가 진실이 되어 모든 선입견을 결정 버린다면 눈과 마음을 열어 온전한 감상이 가능할까? 무자비한 깊이에의 강요를 한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한마디로 예술을 접고 인생을 접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나 또한 가끔 업무 중에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보고 한 마디씩 가볍게 던지던 나의 충고가 얼마나 큰 이정표가 되는지 경험을 했다. 하지만 정답이란 게 없기에 갈수록 어느 누구에게도 결정적인 한방을 던지는 행동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초심자의 입장에서 누군가 나에게 깊이가 없소라고 한마디 하면 바로 주저앉아 글쓰기를 그만둬 버릴지 또 누가 아는가? 물론 지금 내게 깊이가 없는 건 당연하지만 계속 글쓰기에 정진하여 깊이가 생기면 그때 다시 얘기합니다라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털고 일어나는 내가 되고자 노력하지만 가슴속 깊이 치밀어 오르는 불안감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하니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섣부른 충고나 평을 자제하는 게 맞지 않겠나.. 혹시라도 내 한마디에 가슴 아팠을 많은 후배님들과 직장동료에게 사과를 합니다. 깊이에의 강요를 누가 누구에게 하겠습니까? 스스로 깊어지는 것만이 깊어지는 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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