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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Oct 22. 2018

어느 개의 죽음에 관하여

장 그르니에 책 중에서


나는 동물의 참을성에 감탄한다. 그들은 이제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사물이나 또는 사람의 법칙에 순종한다. 사물이거나 사람이거나 그들로서는 마찬가지니까. 그들은 기다린다. 그러나 이 기다림의 시간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기다림이란 우리를 빠져나가는 미래라는 관점으로 생각해 볼 때, 힘이 소모되는 버려지는 시간이다. 동물들에게 있어서 이 시간은 부동의 현재이다. 그것은 끝나지 않는 시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매 순간의 의식의 반짝임마다 끝이 나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낮 동안 집안에 갇혀 있던 개는 사람이 돌아오면 곧장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택한다. 그는 방들을 가로질러 뛰어다닌 뒤, 그에게 제일 쾌적해 보이는 안락의자에 자리를 잡고 잠이 든다.


개의 고통은 이미  내가  감정으로 버티어 낼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내 감정의 창고는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고갈상태였다. 그는 아직 살아서 눈을 절반은 감은채 한쪽 구석에서 거칠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조금 전에 나는 그가 일어서 내게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복받치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나는 한쪽 손으로는 개의 머리를 받치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개의 턱을 쓰다듬어 주었다. 개는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개는 미동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의 눈길은 나의 눈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모른다. 어쩌면 내게 어떤 군주와 같은 막강한 힘이 있을 것이라고 그가 믿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수많은 다른 상황에서 개는 나의 그 힘의 효율성을 체험했던 바이니까.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인 쟝 그르니에의 작품 중 집안에 25년째 소장 중인 책 "어느 개의 죽음에 관하여"를 읽었다.  한동안  쌓여있는 책 정리를 몇 달씩 해서 지금은 얇고 부담 없는 책들 몇 개만 남아있는데 그중에 하나인 거다. 철학자가 바라보는 개의 죽음은 다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이 보는 바와 같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쳐다보고만 있다. 주인에게 바라는 막강한 힘 따위는 죽음 앞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평생을 기다리며 바라봐온 주인이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 만으로 행복하지 않았을까?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 입장에서 동물의 참을성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그들의 기다림에 감사하며 살고 있지만  죽음의 순간이 왔을 때 느낄 무기력함이란 개든 사람이든 같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서는 그저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 잘 보내주고 잘 사는 게 참 힘든 일임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나는 두 마리의 패릿과 아이들 아빠의 장례를 치르며 개의 죽음 따위에 흘릴 눈물이 남아 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새로운 눈물이 샘솟을 것 임을 예감한다. 나를 바라봐주던 그 눈빛은 평생 변치 않았는데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주며 그 눈을 감겨주어야겠지... 힘든 일이다. 그렇게 죽음을 반복 후에 눈물보다는 축복을, 비참함 보다는 겸허함을 배우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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