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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Nov 16. 2018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시집 중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시 읽기 동호회 두 번째 작품은 젊은 시인 박준의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이다. 제목 참 자알 정했다 싶을 만큼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시집이다. 이제 막 제대를 한듯한 풋풋한 외모의 젊은 청년이 시를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니 정말 굉장한 일이다. 그의 어머니 말씀을 빌 "꼴값"을 떨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말이 팍 와 닿는다. 우리나라에서 시인이라면 별종 동물처럼 보는 시선이 일반적이고 오히려 게임하는 사람이 정상적인 일반인으로 여겨지는 듯해서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 " 남들은 내가 그냥 사람인 줄 알겠지만 나는 사실 시인이야"라고 생각했다는 젊은 청년의 패기가 이토록 부러울 수 없다.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그냥 사람이 아니라 뭘까? 흠... 기껏해야 집에선 두 아들의 엄마? 회사에선 늙은 팀장 정도?? 다. 왜 나는 자신 있게 작가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기 민망스러울까? 실력이 부족해서? 열정이 부족해서? 남의 비웃음을 살까 봐? 글쎄.. 모두 그럴듯한 이유지만 글 쓰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아서가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그저 취미생활 정도로 글 쓰는 주제에 감히 누구에게 작가라고 나를 소개하겠나? 하는 마음이 크다. 정말 할 수 있는 게 글쓰기밖에 없고 남의 자서전을 써주며 며칠을 먹고 살 정도는 돼야 굶어도 떳떳한 작가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난 아직 멀었다 스스로 생각하며 오늘도 다른 이가 쓴 책을 읽고 시집을 읽는다. 읽다 보면, 조금씩 쓰다 보면 언젠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때가 오겠지 하는 바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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