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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Mar 11. 2019

내가 옳다고? 그게 다는 아닌데

당신이 옳다를 읽고

상처는 속마음에 꽁꽁 숨겨져 있다. 드러내면 더 불리해지고 더 수치스러운 일이 생길 것이라는 피해 경험 때문이다. 상처를 꺼냈다가 차가운 무관심이나 예상치 못한 비난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깊숙하게 묻고 살지 않을 것이다. 상처 드러내기와 관련해선 피해 의식이 아니라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눌러둔다. 상처를 누르며 지내는 시간은 혼돈의 시간이다. 애증과 분노, 자책의 감정들 사이를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탈진의 시간이다. 널뛰는 감정에 휘둘리는 게 힘들어 방법만 있다면 그 시간을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상처를 다 드러내고 살 수가 있을까.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까진 없다. 그런데 억누르고 살아야 성숙한 사람이라는 편견 때문에 상처를 지나치게 억눌러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억누르려고 해도 두더지처럼 튀어 오르거나 시간이 갈수록 더 또렷해지는 고통도 많다. 그런 경우는 상처를 꺼내고 해결해야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공감을 바탕으로 도달한 자기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는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자기 존재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면서 자기의 느낌이 정돈되면 모든 게 자연스러워진다. 고름이 꽉 찬 상처에서 고름을 빼내듯 그는 공감 속에서 아픈 이야기들을 죽죽 끌어냈다. 고름을 빼낸 자리에 새살이 돋듯 그는 자기 상처 이야기를 하며 새살 같은 건강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아팠던 이야기를 꺼내면서 느끼는 통증은 병든 사람이 느끼는 통증이 아니라 회복 중의 고통이다. 안전하게 공감받으며 자기 상처를 쏟아내는 사람은 그 아픔이 가벼워지는 과정의 아픔이라는 걸 스스로 감지한다. 그래서 아파도 계속 말할 수 있다. 상처가 떠오르고 통증이 시작되는 순간, 동시에 그 위에 빛의 속도로 도포되는 공감에 의해 상처는 새살로 채워진다.


  공감은 상처를 더 드러낼 수 있게 만들고 제대로 드러난 상처 위에서 녹아드는 연고다. 상처 위에 바로 스민다. 상처 부위를 덮고 있는 겉옷 위에 뿌리는 분무제가 아니라 옷을 젖히고 상처 난 바로 그 부위 맨살에 바르는 약이다. 정확하고 집중력 있는 공감은 문제 해결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책임진다. 공감은 치유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장하는 강력한 치유제다.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한 정혜신의 적정 심리학 "당신이 옳다". 표지에 보면 마음의 허기를 치유할 수 있는 집밥 같은 심리학이라 쓰여 있다.  정신과 의사가 쓴 심리학이라면 왠지 심각한 정신분열 환자의 이야기들 일 것 같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일반인들의 이야기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 집밥 같은 든든한 치유의 방법으로 최고는 '공감'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세상에 상처 하나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누구나 각자의 슬픔과 각자의 고통을 안고 산다. 때로는 내 상처만 커 보이고 나만 죽을 듯 힘든 것 같지만 조금만 돌아서서 이면을 보면 상처의 종류가 다를 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러하니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훨씬 더 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심폐소생술은 심장 외 다른 장기들은 제쳐놓고 오로지 심장과 호흡에만 집중하는 응급처치다. 심장 기능만 돌아오면 몸의 다른 모든 기능은 알아서 연쇄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CPR도 마찬가지다. 심리적 CPR은 ‘나’라는 존재 자체에만 집중해야 한다. 심장 압박을 할 때는 두꺼운 옷을 젖히고 옷에 붙은 액세서리도 다 떼고 정확하게 가슴의 중앙 바로 그 위 맨살에 두 손을 올려놓는다. 심리적 CPR도 ‘나’처럼 보이지만 ‘나’가 아닌 많은 것들을 젖히고 ‘나’라는 존재 바로 그 위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가 ‘나’라는 존재 자체인가. 남들은 다 나를 부러워하는데 내가 이러는 건 사치스러운 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은 불안하고 외로울 수 있다. 그럴 때 나는 괜찮은 건가 아닌가. 그때는 내 생각이 옳은가 아니면 내 감정이 옳은가. 감정이 항상 옳다.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 위치한 곳은 내 감정, 내 느낌이므로 ‘나’의 안녕에 대한 판단은 거기에 준해서 할 때 정확하다. 심리적 CPR이 필요한 상황인지 아닌지도 감정에 따라야 마땅하다.


저자의 말데로 내 마음의 심폐소생술을 해보자. '나'라는 존재 자체에 집중해볼까?


나는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며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경제적인 문제, 육아 문제, 직장 문제, 집 문제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 꼬여 있다. 일차적으로 나의 답답한 마음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친구와 가족이 있기에 겉보기엔 아주 멀쩡하다. 하지만 가끔은 모든 굴레가 나를 숨 막히게 한다. 벗어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럴 때 누군가 한 사람이 공감해 준다면 모든 게 해결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병원문을 두드리거나 약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정도로 만족하라면 뭐 그래야겠지만 내가 옳다 아무리 외쳐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내 인생의 굴레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그냥 지고 사는 방법밖에 없다.  포기하고 체념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어 나간다. 완쾌라는 것도 해결이라는 것도 없다.  그냥 문제를 달고 우울을 달고 그냥 사는 거다. 뭐 그리 복잡한 게 아니다. 이게 내가 내린 현재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나는 제대로 된 심폐소생을 한 걸까?


다분히 책은 책일 뿐, 현실의 해결자가 아님을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읽으면서 누군가가 생각나고 함께 읽고 함께 공감하며 힘이 돼주고 싶은 사람은 분명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해줬다. 하지만 정말 책이 그들의 CPR에 성공할 거라는 확신은 없다. 어차피 그건 그들의 몫이고 그들의 인생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우울이 그저 삶의 바탕색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자연스러운 인간 감정이기에 내가 잘 보듬어 안는다면 자연스레 내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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