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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Feb 14. 2019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산문집 중에서


고등학교 3학년, 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는 평소 잘 들어오지 않는 내방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시험을 치르지 말라고 했다. 내일 시험을 보면 대학에 갈 것이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할것이고 그러다보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을 공산이 큰데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인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너무 불행하고 고된 일이라고 했다. 더욱이 가족이 생기면 그 불행이 개인을 넘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번져나가므로 여기에서 불행의 끈을 자르자고 했다. 절을 알아봐 줄테니 출가를 하는 것도 생각해 보라고 덧붙였다. 당시 나는 그길로 신경질을 내며 아버지에게 나가라고 했다. 하지만 노동과 삶에 지친 날이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에서 설핏 가난을 느낄때면 나는 그때 아버지의 말을 생각한다.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읽으면서 작가의 마음과 생각을 헤아려 가며 시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래서 그의 산문집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읽게 되었다. 물론 나의 추측과 어림잡음이 모두 정답은 아니었지만 그의 말을 직접 들으며 시를 떠올리니 훨씬 그와 그의 시를 이해하게 되었다.

위에 인용한바와 같이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살았던 시인 박준 그리고 그 아들을 노동으로 힘들게 키우신 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많은 걸 공감하게 되었다. 시험을 앞둔 아들에게 출가를 권유하는 아버지의 마음, 자신의 가난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그 가난을 자식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되물림하고 싶지 않은 심정을 가슴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오늘 뉴스에 요즘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다는  기사실렸지만 정말 일인당 국민소득 3만2천불이 넘는 시대의 현실이라니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분명히 국가가 발전하고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 넘쳐난다. 과연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출가를 하면 해결될 문제인가?

우리 부모님 세대만해도 가난해도 열심히 근면 성실하게 살면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왜 먹고 살만한 지금 세상에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희망은 커녕 포기와 좌절을 안고 사는 청년이 늘어나는 것일까? 어디서 부터 잘못된 까?


나 또한 결혼전 부모님을 보며 가난해도 꿈과 희망을 가지고 근면 성실하게 살면 된다는 가르침에 따라 살았다. 나이가 들어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아 또 그렇게 키웠다. 아직 세상이 살만한 즐겁고 행복한 곳임을 알려주기 위해 매일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밝고 행복하기만 할거라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부디 나의 아이들이 불행한 유년시절의 기억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큰 돈이 없어도 작은 행복에 감사하며 살기를 바랄 뿐이다.


박준 산문집에서 말하듯 '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아직 고아는 아니지만 누구나 언젠가 고아가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는 동안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사는게 그나마 행복이기에 가난해도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낳고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시인에게도 내 아이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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