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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애 Aug 05. 2020

혐오감과 타자

통일 후 독일에 외국인 혐오 현상이 심해졌다. 동독의 어느 도시에 외국인들이 사는 집에 일어난 방화 사건이 기억난다. 유학시절을 보낸 대학도시도 외국인 혐오 현상을 비껴가지 못했다. 대학병원 내부 도서관 열람실 바깥의 넓은 홀에 계단을 오르면 24시간 사용할 수 있는 책상들이 있었다. 그런데 의대를 다니던 한 한국 유학생이 맡아놓고 쓰던 책상에 어느 날 밤에 누군가 불을 질렀다. 어느 정도로 탔는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다음 날 까맣게 귀퉁이가 탄 책상을 보고 여학생이 받은 쇼크는 엄청났을 것 같다. 그 방화가 꼭 외국인을 노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상황도 상황인지라 모두 '외국인 혐오'를 떠올렸다.나는 방화가 아니라 '말 봉변'을 당했다. 학과 도서관이 있는 거리에 난 자전거길을 평소처럼 지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막 지나가는데 자전거길 옆의 인도를 걷는 누군가 "외국인은 꺼져"라고 소리쳤다. 다행히 빠른 속도로 지나갔기 때문에 누군지 얼굴도 볼 겨를이 없었다. 내가 살던 도시는 대학 도시이기 때문에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대학 도시의 주민들은 외국인을 보면 노동자가 아니라 대학생을 떠올린다. 그래서 그런지 유학을 보낸 몇 년 동안 특별히 외국인을 차별하거나 혐오하거나 하는 사건은 별로 듣지 못했다. 그러다 당한 봉변이라 통일 후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원래 이번 여름에 독일에 다시 가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요즘 코로나 때문에 이런 저런 번거로운 일이 떠올라서 가지 못하고 있다. 감염 우려, 자가 격리 등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4월에 베를린 전철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미루어 짐작하고 있는 달라진 분위기 때문이다. 전철에 탄 한국인 유학생 부부를 향해 남녀 몇몇의 패거리 중 한명이 "코로나 파티, 코로나 천국" 등이라고 야유하며 심지어 성희롱 발언까지 했다. 코로나 진원지로 알려진 중국에서 왔다고 본 것이든, 중국인 한국인 등을 한 무리로 아시아인으로 싸잡은 것이든 마찬가지이다. 당시 현장에서 바로 유학생 부부는 '인종차별'이라고 경찰에 신고했다가 인종차별은 아니라는 답변을 듣고 주독 대사관에 전화했다고 한다. 최근 난민 문제 때문에도 외국인을 보는 독일인의 시각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던 터라 코로나 사태까지 더해진 독일의 방문이 꺼려졌다.

'인종차별'이라는 표현은 객관적으로 들린다. 차별의 분명한 근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혐오는 주관적인 표현이다.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혐오할 수 있고 혐오하는 말, 태도를 보일 수 있다. 혐오는 분노나 비판과는 또 다르다. 분노나 비판에 비해 혐오하는 대상을 훨씬 더 가깝게 느낀다. 혐오하는 대상과 자신 간에 경계를 지으려고 하지만 마치 몸에 붙은 송충이처럼 너무 가깝게 다가와 있어 자신과 분리시키기 어려울 때 혐오가 생긴다. 혐오 발언은 극단적이 된다. 분리하고자 하는 대상이 이미 자기 안에 들어와 있어 거리두기가 불가능해질수록 그렇다.

벤야민은 혐오감이라는 표현을 적용해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규정한다. 인간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피조물이지만 인간에게 동물성, 피조물성은 자신 안의 타자로 잊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동물에 대한 혐오감에서 지배적인 감정은,동물을 만질 때 그 동물이 자신을 알아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인간의 마음 깊이 경악을 자아내는 것은 다음과 같이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의식이다. 혐오를 일으키는 동물에게는 그 다지 낯설지 않은 요소, 그래서 그 동물이 알아차릴 수 있는 요소가 우리 안에 있다는 그런 의식 말이다. 모든 혐오감은 원래 접촉에 대한 혐오감이다. 혐오감을 극복하려고 할 때에도 그것은 과도하게 급작스러운 동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혐오를 일으키는 그것을 재빨리 움켜쥐고 먹어 치우는 것이다. 이때 아주 부드러운 피부 접촉은 금기가 된다... 비록 인간은 피조물이 부를 때 혐오감으로 대답하지만 피조물과 친족 관계에 있다는 잔혹한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된다."(『일방통행로 · 사유이미지』, 78쪽)     


자신 안에 들어있으나 망각하고 있는 것을 타자에서 발견하면 이를 떨쳐내려는 감정, 혐오감이 앞서는 것일까. 벤야민은 카프카 문학에 자주 나오는 동물들을 인간이 "망각하고 있는 것의 저장고"(『카프카와 현대』, 97쪽)라고 규정한다. 이어 "제일 망각된 것은 우리 자신의 육신이기 때문에 카프카는 자기 안에서 터져 나오는 기침을 '동물'이라고 불렀다."(같은 책, 98쪽)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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