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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애 Aug 07. 2020

벤야민과 소리의 힘

벤야민의 유년시절 기록에는 소리에 대한 회상이 적지 않다. 뒤 편 복도에서 요란스럽게 울려 퍼진 전화벨 소리,  로지아(건물 위층에 발코니와 비슷한 공간)에서 내려다볼 때 들려오던 서민들 일상의 소리,  가사일의 시작을 알리는 열쇠 꾸러미의 달그락 소리, 끔찍이도 가기를 싫어했던 수영장에서 들리는 수도관의 콸콸 소리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등이 회상의 공간에서 들려온다.  벤야민은 이렇게 비유한다. "나는 마치 연체동물이 조개껍데기 안에 살고 있듯이 19세기 안에 살고 있었다. 이제 19세기라는 시대는 마치 텅 빈 조개껍데기처럼 내 앞에 놓여 있다. 나는 그것을 귀에 대본다." 회상이 구체적으로 떠오르기 전에  아직 회상의 내용으로 채워지지 않은 과거는 빈 조개껍데기와도 같다. 그래서 회상의 방법 중 하나는 "귀를 대보는" 것이다.  소리에 대한 회상. 물론 유년의 일상에 속한 소리들은 베를린의 공적인 삶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어른들의 세계이고,  아이에게는 거리가 먼 세상이다. 따라서 조개껍데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지극히 사소하고 사적인 삶에서 기원한다. 그러한 소리들은 단순한 청각적 현상에 불과하지만, 하고많은 소리 중에서도 특별히 그 소리가 부각된다면, 그 안에 어떤 의미가 있음에 틀림없다. 벤야민은 그 의미를 번번이 해명하지는 않는다.  또 떠올리는 모든 소리가 의미심장한 열쇠는 아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소리들은 의미 심장하다. 하나는 로지아에서 들려오는 소리이다.  로지아에 서면 아이들, 피고용인들, 손풍금 악사,  건물 관리인이 내려다보인다. 바깥으로 나가지 않은 채 아이가 접한 세상은 무엇보다도 소리로 지각된다. 그 소리는 대부분 하층 계급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을 위해 수행하는 작업이나 그들의 일과에서 나오는 소리다. 가장 인상적인 소리는 양탄자를 터는 소리다.  그 소리는 "남자의 가슴에 새겨진 애인의 목소리보다 더 깊숙이 아이의 가슴에 새겨졌다."  노동과 고된 일상의 세계를 암시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로지아는 세상과 도시, 노동의 세계를 향해 열린 곳이고 고립된 개인이 거리를 둔 채 집단을 처음 경험한 곳이기도 하다. 한밤중에 깨어 절대 고독에 직면한 아이에게 들려오는 또 다른 소리가 있다.  단편 「달」에서 달빛이 한가득 방안을 채운 시각에 홀로 깨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물을 마실 때 방안의 집기들이 소리를 다. 주전자들, 세면대 대리석 판 위에 놓인 쟁반, 대접, 유리잔, 유리병이 내는 소리 등은 처음에는 무언가 살아있는 존재들처럼 느껴지며 안도감을 주지만, 그러한 안도감은 금세 공포심으로 변한다. "컵에 물을 따라 마실 때 나는 꿀꺽 소리, 먼저 유리병을, 다음에 컵을 내려놓을 때 나는 소리 ㅡ 이 모든 소리들이 내 귀에 반복적으로 들렸다. .. 내게는 모든 소리, 모든 순간이 동일한 것의 분신으로 다가왔다. 다시 침대로 돌아갔을 때 이미 그 안에 누워있는 자신의 분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공포심"에 사로잡힌다.

   현재에 지각하는 소리는 단순한 청각적인 현상에 그치지만, 회상 속에서 떠올린 소리는 "지나간 삶의 무게로 무거워진 "소리가 된다. 프루스트에게 마들렌 과자의 맛이라는 미각이 회상의 매체가 되었다면, 벤야민에게는 소리가 종종 그러한 역할을 한다.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어느 순간을 마치 이미 살아본 시간처럼 느끼게 하는 소리들이 있다.  즉 데자뷔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에 느끼는 "충격은 대부분 소리의 형태로 다가온다. 그 소리는 예기치 않게 우리를 과거의 차가운 동굴로 불러들이는 힘을 가졌다." 그러한 힘을 가진 소리는 어떤 노크 소리일 수도 있고, 어떤 단어일 수도 있다고 벤야민은 말한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 소리는 "과거의 동굴의 둥근 천장에 부딪혀 울려 퍼지는 메아리"이다.  베를린 근교의 포츠담에 있던 여름 별장에서 나비 채집을 하던 시간들은 한동안 잊고 있다가 그곳의 지명 '브라우하우스베르크'라는 단어를 혼자 조용히 발음하는 순간에 불현듯  떠오른다. 이때 '브라우하우스베르크'는 "장미 향수 한 방울에 수백 송이의 장미꽃잎이 보존되어 있듯이, 수백 일의 여름날, 그 형태, 색채, 하루하루를 농축해서 그 안에 향기로 보존하고 있는 단어가 된다." 어떤 이름, 어떤 단어의 발음은 의미 없는 소리보다 고차원적이다. 의미를 지시하는 기표이기 때문이다. 의미 없는 단순한 소리까지도 회상에서 지난 삶의 흔적이 각인된 소리로 들린다면, 단어는 그보다 훨씬 더 무거워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누구의 이름을 언급할 때 그 이름은 단순한 음절의 나열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지칭된 사람의 현전처럼 다가온다. 그것이 이름의 마법이다. 이름은 어떤 몇 가지 속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것,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까지 함축하는 총체적인 표현이 된다.  회상에서 뿐 아니라 대상을 인식하는 태도로서 '가만히 집중해서 청취하는' 태도"가 요구되는 것은 그러한 표현을 읽어내기 위해서이다.  마치 계시를 듣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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