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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애 Aug 08. 2020

벤야민과 브레히트의
「이웃 마을」 읽기

   

벤야민과 브레히트는 나치 정권이 지배하는, 독일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대에 십여년에 걸친 우정을 이어왔다.  두 사람은 서로 긴밀하게 생각을 공유하면서도 시간관과 역사관에서는 차이를 드러낸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벤야민은 브레히트에게 카프카가 쓴 단편 「이웃마을」을 한번 읽어보라고 준 적이 있다. 불과 몇 문장으로 이루어진 단편인데 두 사람은 아주 다르게 해석한다.      

"나의 할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한다. '인생은 놀라울 정도로  짧다. 내 기억 속에서 떠올린 인생은 압축되어 나타난다. 그렇게 짧은 인생인데 어떻게 한 젊은이가 이웃 마을로 말을 타고 떠날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불행한 돌발사가 전혀 없이 순탄하게 시간이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여행을 하기에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데 말이다.'"(카프카의 「이웃마을」)     

기껏해야 이웃마을에 갈 뿐인데 노인은 왜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을까? 브레히트는 노인의 말이 소피스트 제논의 궤변과 같다고 본다. 아무리 발이 빠른 아킬레스라고 하더라도 앞서 출발하는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다는 주장이 제논의 궤변이다. 아킬레스와 아킬레스보다 몇 미터 앞선 거북이 간의 간격을 무한한 점으로 쪼개는 제논의 궤변은 이후 반박된다. 브레히트는 잘 알려진 방식과는 다르게 제논을 반박하면서 이웃마을에 도달하는 말타기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거북이한데 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이웃마을로 가는 길이 무한히 세분화된 점들로 쪼개진다면 이 무한한 점들을 지나기에 말 탄 자의 인생은 충분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 사람을 이어 다른 사람이 바통을 이어받으면 되기 때문에. 브레히트는 이런 식으로 「이웃마을」을 해석했다.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여정이 무수한 단계들로 이루어져 한 사람이 그 단계들을 다 거치기에 시간이 부족해도 문제는 없다. 그 다음 사람이 이어받고, 또 그 다음 사람이 이어받으면 마지막의 누군가 그 목표에  언젠가 도달하기 때문이다. 브레히트는 미래지향적으로 문제를 푼다. 이러한 기대는 역사의 발전과 실천 가능성에 대한 기대이다.

 벤야민은 브레히트와  다르게 「이웃마을」을 해석했다. 벤야민에게는 이웃마을에 도달할 미래의 시점이 아니라 이미 도달한 그 시점에서 출발하는 시점을 되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앞만 보고 사는 사람은 그의 지나온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앞으로, 앞으로 시간이 이어지면 그렇게 이어진 시간들의 총합만 주어진다.  그렇게 축적된 시간들은 무상함을 보여줄 뿐이다. 삶이 의미를 획득하고 이해되는 것은 오로지 기억에서라고 벤야민은 말한다.      

“인생의 진정한 척도는 기억이다. 기억은 뒤돌아보면서 인생을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책장 몇 장을  넘기듯 순식 간에 기억은   말탄 자가  길을 떠날 결심을 한 그 자리에 도달한다. 노인들에게 그렇듯이, 인생이 문자로 변하게 되면 이 문자는 거꾸로밖에는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이 문자로 변한 자들은 그렇게 해서만 자기 자신과 만나고, 그렇게 해서만  이러한 만남을 이해할 수 있다."(『브레히트와 유물론』, 245)     

기억은 지나온 삶을 원근법처럼 축소시켜 보여주고, 그 전체의 모습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되돌아보지 않고 우리가 그냥 앞으로만  나아가면 우리 뒤에는  "벌채 구역"이 남는다.  벌채 구역은 우리가 살아온 삶을 비유한다.  잎이 무성한 나무들로 빽빽해지는 구역.  적당히 잎을 쳐내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의 시야를 가릴 수 있다. "멀리서도 보이긴 하지만 불분명하고 흐릿하게, 그만큼 더 불가사의하게 얽히고설킨 모습"(『일방통행로』, 79)으로. 문학비평을 통해 과거 속의 지침을  읽어내는 벤야민. 미래로 가기 위해 필요한 보행법을 가르치는 브레히트. 두 사람의 상이한 시간관과 역사관은 이처럼  「이웃마을」에 대한 상이한 해석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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