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수리 보고서"로 읽는 "대온실 수리 보고서"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대공원이나 에버랜드가 아니라 서울 시내 한 복판 궁궐에서 처음으로 동물원을 경험한 세대, 아직도 창경궁이라는 말보다 창경원이라는 말이 먼저 입에 붙는 이 세대는 어른이 되서야 알게 되었다. 일본 식민 통치 세력에 의해 조선 최고 권력의 중심인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동물원이 서울대 공원으로 옮겨가고 난후 식물원인 대온실이 가까스로 철거를 면하고 2004년에 복원되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소설은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대온실 수리와 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큰 줄기로 한다. 1909년에 만들어진 대온실은 유리와 철골로 된 한국 최초의 근대 건축에 속했고 건축회사가 맡은 복원은 "사면이 유리로 된 온실의 아름다움"을 되살려내는 것이다. 복원은 망가진 것을 고치고 없어진 것은 채워놓으면서 가급적 과거의 형태 그대로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은 주인공 영두는 대온실의 땅 위 형태를 복원하기에 앞서 대온실의 땅 밑에 숨은 것을 파헤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온실 땅 밑에는 1909년 대온실 설계를 맡은 일본의 근대주의자이자 원예가 후쿠다의 배양소가 있다는 기록을 접했기 때문이다. 담당 관청의 책임자와 건축회사 소장의 반대를 피해 동료 직원들과 의기투합해서 발굴한 결과 땅 밑에서 배양소의 존재를 확인하고 6 25 전쟁 당시 그곳에 숨어들었던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유해까지 발견한다.
화자의 입을 빌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땅 밑은 수리와 복원의 대상이 아니지만, 그것을 그렇게 묻은 상태로는 전체를 알기란 어려울 것이고 그러다 보면 공동과 침하가 계속되어서 땅 밑에 숨은 사실들은 영영 잊혀지게 될 것이다. 그러한 수리는 허술한 수리가 된다." 작가가 의도하는 수리는 땅 위의 눈에 보이는 것 뿐 아니라 땅 밑의 보이지 않는 것까지 포함한 수리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대온실 땅 밑의 배양소 뿐 아니라 대온실과 관련된 망각된 과거를 포함한다. 영두가 읽은 자료 중에는 허구도 있지만 창경궁 대온실과 관련된 사실 자료들도 많다. 작가가 염두에 둔 대온실 수리보고서는 대온실을 중심으로 교차된 시간들, 인물들, 사건들을 포함한 보고서가 아닐까?
그러한 보고서에는 무슨 내용이 담길 수 있을까? 우리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어버린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떠올릴 뿐이었다면 작가가 찾아낸 과거의 기록에는 대온실을 만든 사람들, 대온실을 이용한 사람들, 대온실 자체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일본의 근대주의자이고 유학파 원예학자 후쿠다가 창경궁 대온실에 품었던 꿈 (도쿄의 신주쿠교엔 대온실처럼 창경궁의 대온실도 국제 교류의 장, 원예문화의 기반이 되길 바란 꿈), 그 꿈과는 거리가 먼 일제 지배의 현실, 일본 군인들에 둘러싸여 대온실을 산책하는 순종의 모습, 유흥지로 변한 조선 왕궁에 직접 들어와 풍경을 이룬 조선 군중의 모습, 태평양 전쟁 중 자기 손으로 애지중지 기르던 동물들을 죽여야 했던 사육사와 직원들의 비극, 한국 전쟁 시절 방공호로 쓰인 그곳에 숨었던 사람들, 한국전쟁 기간에도, 전쟁 이후에도 계속된 화려한 밤 벚꽃놀이...
이렇듯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대온실과 연관된 과거의 파편들로 구성된다. 보고서는 그러한 파편들로부터 과거를 맞춰보려고 애쓰지만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를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 이해는 깨진 우리 파편처럼 그 시절을 자그맣게 비출 뿐이겠지만 내게는 한참을 걸어야 감정이 식을만큼 너무나 생생한 것이었다." 작가의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해준다. 과거의 문이 내 앞에 열리는 듯 생생하게 느끼는 경험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과거에 대한 지식 을 알게 되는 것을 넘어 과거를 상상하고 과거에 감정 이입할 수 있을 때라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창경궁 춘당지쪽 월근문을 바라보면서 그곳을 드나들었을 사람들을 상상해보는 영두에게 과거는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생생하게 체험되는 대상이다. 보름마다 사도세자를 기리는 경모궁으로 거동하던 정조대왕, 낙원하숙의 안문자 할머니, 중학생 시절의 자신과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상처를 안겨준 룸메이트 리사 . 영두는 "시대는 달라도 그 문을 넘은 사람들 모두 자기 고통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공감할 수 있다.
중학교 때 유학온 영두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일년 만에 원서동을 떠나 석모도로 돌아간 이후 그때 살던 낙원 하숙 뿐 아니라 자주 놀러갔던 창경궁은 지워버려야 하는, 잊지 않으면 살수가 없는 그런 장소, 과거에 유폐된 장소가 된다. 건축 회사 일을 처음에 선뜻 맡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일을 맡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창경궁에 가보지 않을 수 없었고 어느날 회식이 끝난 후 원서동 길에 들어선 영두는 낙원하숙과 조우하게 된다. 낙원하숙은 폐가가 되어 있었고, "너무 적막했다. 마치 얼어붙은 듯 했다. 침묵으로 무장하고 완강하게 우리를 밀어내는 듯 느껴졌다." 오래동안 망각의 늪으로 가라앉힌 그 장소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장소가 숨기고 있는 과거는 열리지 않고 완강하게 닫혀있다. 사실은 낙원하숙이 영두를 완강하게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영두가 자신의 숨겨진 과거로 들어가는 문을 다시 한번 굳게 닫은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다시 들추어내게 된 것은 영두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영두에게 그러한 힘이 생긴 것은 오히려 타자의 과거를 열기 위해 애쓴 과정에서 습득한 태도 덕분이다. 영두는 대온실에 얽힌 과거, 낙원하숙의 주인인 안문자 할머니의 과거를 열기 위해 애를 썼다. 그 결과 처음에는 완강히 자신을 밀어내던 낙원 하숙에서 영두는 과거의 할머니, 과거의 나, 과거의 리사, 아니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할머니의 어린 남동생 유진과 상상 속에서 만날 수 있게 된다. 이제 영두는 그 시절에 대해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고, 자신이 입은 상처의 형태를 그릴 수 있게 되었고, 그 상처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오는 길도 알게 되었고, 자신에게 영혼의 상처를 입힌 리사를 만나는 일도 꺼리지 않게 되었다. 대온실의 과거, 문자 할머니의 과거를 열기 위해 애쓰다가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부스러기처럼 우연과 발견이 이어져 도착한 결과"인 것이다. 외할머니의 오랜 친구 문자 할머니의 낙원 하숙은 한때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서늘해지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곳은 많은 이들의 각자 다른 시간을 거느리고 있는,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별처럼 느껴지는 집이 된다. 망각과 억압 속에 파묻혀 있던 낙원하숙이 기억의 빛을 받아 수리된 것이다.
"세상 어딘가에는 지금이 아닌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들이 언제나 흐르고 있다." 문자 할머니가 상처를 안고 석모도로 돌아간 영두를 설득하기 위해 찾아와 해준 말이다.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은 지금 이 시간, 지금 우리가 의식하는 시간에만 위치하고 있지 않고 지금이 아닌 과거의 시간들을 품고 있다. 창경궁 대온실도 낙원하숙도 그러한 사물 중 하나이다.
파헤치고 복원되는 과거에는 불행과 고통의 시간도 있지만 소중한 시절도 있다. 비록 오해로 끝나버리긴 했지만 첫 사랑 순신과의 소중한 시간들은 그시절에 겪은 불행 때문에 통째로 망각에 내던져진다. "나는 좋은 부분을 오려내 남기지 못하고 어떤 시절을 통째로 버리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이해한다. 소중한 시절을 불행에게 다 내주고.... " 지나간 행복이지만 미완의 행복이기 때문에 이루어지길 바란 그 소망을 다시 기억하면서 영두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 이루지 못한 소망이 이루어진다면, 그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는 곳이 바로 낙원"이라고. 그런데 과거에 잃어버린 것 모두를 되찾지는 못하지만, 하나는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인다. 미완의 소망이 현재 진행형의 소망으로 변하는 그런 일이 일어난 듯하다. 영두가 원서동 골목에서 순신을 다시 만나게 된 그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