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줄리안 반스의 소설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의 원제는 '엘리자베스 핀치'다. 소설의 서술자 닐이 들은 대학 수업 '문화와 문명'의 담당교수 이름을 딴 제목이다.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옮긴이 혹은 출판사의 해석을 반영한 것인지 모르나 옮긴이 말에서도 바뀐 제목의 의미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피치(소설에서 EF로 약칭됨)의 수업 방식은 어떤 점에서 소크라테스를 연상시킨다.(소설에서도 언급된다) 어떤 문제에 대해 하나의 통념을 다른 통념으로 대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교수법. EF의 문화사 수업은 수강생들이 수업이 끝난 뒤에도 교수가 던진 질문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하는 그런 수업이다. 늦깎이로 대학을 다니는 30대 이혼남 닐이 소설의 서술자로 등장하는데, 닐은 그가 이 교수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엘리자베스 핀치라는 인물 혹은 그녀와 닐의 관계보다는 그녀의 수업에 등장하는 율리아누스 이야기이다. 율리아누스는 서기 363년에 죽은 로마제국의 황제인데, EF는 율리아누스를 중심으로 서양 기독교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주제로 삼는다. 학기말 과제를 제출하지 못한 닐은 20여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율리아누스에 대한 에세이를 쓴다. 종강 이후에도 20년 동안 일년에 서너 차례 EF와의 점심 만남을 이어온 닐은, EF가 죽고 난후 그녀의 책과 서류를 유산으로 받고 그 안에 있는 율리아누스에 대한 기록을 읽고 에세이를 쓴다.
소설 II부는 닐이 쓴 에세이이다. 율리아누스는 일신교가 아니라 다신교가 낫다고 생각하고 종교적 관용을 실행하고자 한 황제였다. 관용의 정신을 중시한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율리아누스는 종교적 자유와 관용을 중시한 철학적 군주의 모범으로 재평가된다.(닐은 볼테르, 몽테스키외를 인용한다) 그러나 3년이라는 짦은 통치(AD 361-363) 후 전장에서 페르시아군의 창에 맞아 죽은 후부터 율리아누스는 기독교 작가들의 온갖 비방과 중상의 대상이 된다. '배교자 율리아누스'라는 호칭, 아이들에게 겁을 줄 때 불러내는 도깨비 등으로 불리던 황제는 사실 그리스 로마 문화의 정신에 투철한 철학적 군주로서 기독교를 탄압하거나 박해한 적이 없는데도 그렇다.
물론 그가 남겼다고 하는 글 『갈릴리인들에게 반대한다』에 등장하는 기독교 비판은 신랄하다. 총 3부인 글에서 1부만 단편적으로 전해진다. 다음과 같은 발언은 기독교인들이 아마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리라. "갈릴리인[기독교인]들이 꾸며놓은 이야기는 사실 사람들이.... 지어낸 허구에 불과하다... 사람들의 영혼 가운데 우화를 사랑하는 유치하고 어리석은 부분을 한껏 이용하여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도록 유도하고 있다." 작가가 소설에서 한 이 인용이 허구는 아닐 것이다.
율리아누스 황제에 대한 해석과 재해석은 역사(사건이든 인물이든)의 진실에 대한 질문을 불러 일으킨다. 율리아누스 황제는 기독교 허용을 종교 다원화 정책의 일부로 여겼다. 하지만 율리아누스 황제 사후 1400여년 동안 율리아누스 황제에 대한 평가를 독점하고 통제해온 기독교 작가들은 그를 극도의 악의 상징으로 삼아왔다. 율리아누스는 사실 기독교인들보다 더 기독교적인 특질에 부합하는 사람이었는데... 기독교적 특질에 비길만한 겸소, 겸손, 순결, 학구심 등의 특질을 보여주었고,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고 부패하지 않았고 근면하고 공정한 군주였는데...
관용에 기반한 율리아누스의 기독교 정책은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을 대놓고 박해한 권력보다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훗날에도 밀턴은 그를 "우리 신앙의 가장 영리한 적"이라고 불렀다. 그가 만약 형편 없는 인간이었다면 그에 대한 공격이 그렇게까지 가열차지는 않았을 것이다. 프로이트가 말하고 있듯이, 작은 차이를 가진 상대에 대한 공격이 큰 차이를 가진 상대에 대한 공격보다 더 매몰차고 부당하다. 이렇게 해서 배교자 율리아누스는 적어도 유럽에서 계몽주의시대가 되기 전까지 기독교 세계사의 큰 악당 가운데 하나로 '박해자 헤롯', '배신자 유다', '그리스도 살인자 빌라도'와 함께 자리를 잡는다.
'배교자', 한 시대가 주창하는 가치 혹은 서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른다면, 엘리자베스 피치 교수도 영국의 기성 사회로부터 그러한 취급을 받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가끔 기고하기도 한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서 강의 요청을 받은 EF는 공개 강의에서 율리아누스 이야기를 한다. 기록화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수락한 EF의 공개 강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그녀는 엄청난 비판에 직면한다. 그녀는 율리아누스의 죽음 이후 일신교가 승리하고 기독교의 지배와 부패가 유럽 정신의 폐쇄를 낳았고, 율리아누스는 이따른 어떤 교황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했다고 발표한다. EF 강의가 추문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어느 보수적인 논설 위원은 그녀를 "우리 문화와 문명을 똥개화하는 데 헌신하는 전형적인 지식인"이라고 부르고 "우리가 사랑하는 잉글랜드 교구 교회를 모두 다종교 센터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이 사건은 EF를 현대판 배교자 율리아누스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율리아누스를 악의 상징으로 만들었듯이 EF를 반문명의 상징으로 악마화하는 과정을 보여준 사건이다.
인물에 대한 이러한 극단적 평가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불러온다. 한 인물에 대한 정당한 이해는 가능한가 혹은 그에 대한 전기는 쓸 수 있는가? 닐은 자신이 아는 EF, 자신은 몰랐던 EF, EF가 남긴 자전적 기록 등을 접하면서 과연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전기를 쓸 수 있을지 자문한다. 닐은 EF의 삶, 감정 세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고, EF가 자신에 대한 전기를 원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오빠 크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누이는 죽었고, 선생은 살아 있잖아요. 선생 마음이죠." 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죽은 자는 비록 말이 없지만 산자는 죽은 자를 마음대로 교정할 권리는 없다. 닐은 EF에 대한 기억이 몇몇 일화로 환원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래서 EF의 삶에 대한 어떤 일관된 서사에 도달하고 싶어한다. 이를 테면 EF의 삶을 순교의 삶으로 보는 서사와 같이.
그러나 닐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전기 작가들은 "모순되고 이가 빠진 그 모든 증거에서 하나의 삶, 살아 있는 삶, 일관된 삶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일관된 서사란 것은 대립하는 판단들을 화해시키려 하는 것이기에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개인의 역사든 집단의 역사든 하나의 서사를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암시적 사실들을 그냥 나열"하는 것이 더 진실에 다가가는 것일지 모른다. 닐이 자꾸 EF의 오빠로부터 들은 일화의 장면이 떠오르는 것도 시사적이다. "그녀의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그것은 두줄 단추 외투를 입은 남자"의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로 환원되곤 한다. 닐이 본 적이 없는 그 남자의 이미지에 EF를 이해하는 단서가 들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결국 닐은 EF의 전기를 미완성 프로젝트로 남기고자 한다. 차라리 그 편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가 전기의 완성을 운에 맡기겠다고 말한 이유이다.
소설에서 EF를 통해 작가가 제시한 논의, 즉 대안적 역사에 대한 논의도 흥미로웠지만, EF의 다음 어록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 이런 말이 수십 년 동안 오늘의 만트라 역할을 해왔다. 안이한 진술이다. 오히려 개인적인 것은 역사적인 historical 것이다." 개인적인 것은 역사적인 것이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의 인격에, 우리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역사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역사에서 이미 일어난 것, 그것이 주는 무게는 상당해서 거기서 벗어나는 것은 힘들다. 집단에게도 그렇고 개인에게도 그렇다. 사람들은 오늘날의 자신을 만드는데 기여한 과거가 기껏해야 자신의 인생 또는 부모의 인생 정도까지만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를 우리로 만든 원천은 우리가 의식하는 역사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다만 "사람들은 방에서 코끼리가 울부짖는 것을 듣지 못한다." 방에서 울부짖는 코끼리는 역사를 비유하는데 우리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역사의 영향력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여기서 말한 역사의 영향력은 실제 일어난 역사, 지배자의 역사에 기인하기 때문에 패배자의 역사에 속하는 율리아누스 황제의 통치 시절까지는 올라가지 않는다. 유럽인들이 알게 모르게 습득한 인종 우월주의, 일신교주의 등은 율리아누스 황제의 관용의 정신과는 동떨어져 있다.
작가는 소설 어디선가 바이런의 『돈 주안』 에 붙인 서사시를 인용한다. 이 시에서 바이런은 열렬한 혁명가에서 기성 체제의 보수적 구성원이 된 동료 시인 사우디를 다음과 같이 비꼰다. "배교도 아주 유행이라/ 하나의 신조를 지키는 것도 헤르쿨레스나/ 감당할 과제가 되었네." 역사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게 되는 배교도 있지만, 시대의 주류가 된 배교도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