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의 눈물』에서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는 시간"

by 윤미애

권지예 작가의 소설집 『베로니카의 눈물』은 먼 나라, 먼 도시로 떠난 여행자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작가가 석 달 동안 체류한 적이 있는 쿠바가 두 이야기(「베로니카의 눈물」,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는 시간」)에 나오고, 플로리다(「플로리다 프로젝트」), 파리(「낭만적 삶은 박물관에나」), 발칸 반도(」카이로스의 머리카락」)가 각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다. 이 소설집의 모든 이야기들이 흥미로웠지만 특히 관심을 끈 단편은 「파라디이스 빔을 만나는 시간」이다. 파라다이스 빔은 천국의 빛줄기를 의미하는 단어인데 작품에서 이는 '생에서 만나는 빛나는 순간"이라고 표현된다.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는 시간」에서 아내 수현과 남편 민수는 각자의 고유한 파라다이스 빔을 경험한다. 운동권 출신으로 평생 변변한 직장 없이 교사 아내의 경제력에 의존해서 살아온 민수는 쿠바의 말레콘 해변에서, 갑작스러운 암선고로 죽은 남편의 유서를 전해주러 쿠바에 다녀온 수현은 영종도의 마시란 해변가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마시란 해변의 낙조를 보고 민수는 수현에게 물었었다. "얼마만큼 좋아?.... 천국처럼?" 아무리 감동적인 순간이라고 하더라도 천국처럼, 파라다이스처럼 좋은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수현은 나중에 알게 된다. 죽기 몇년 전에 여행 간 쿠바의 말레콘 해변에서 민수는 어린 창녀 소피아로부터 파라다이스 빔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고, 그 순간을 소피아와 함께 경험했음을. 유서가 된 소피아에게 쓴 편지에서 민수는 자신의 감정을 상세히 묘사한다. 민수는 소피아가 할머니로부터 받았다는 아쿠아마린 묵주 팔찌를 그녀와 함께 오후의 햇빛에 비춰보면서 파라디이스 빔을 알게 된다. "맑고 뜨거운 햇살이 너의 목덜미와 팔뚝을 흐르고 상쾌한 바람 한 줄기가 머리칼을 날리는 순간이면, 온 세상이 반짝여서 참 좋았어."

파라다이스 빔을 느끼는 순간은 일상적인 시간과 전적으로 '다른 시간', 즉 '헤테로크로니아'의 시간이고, 그러한 시간을 경험하도록 하는 장소는 환상적 장소, 헤테로토피아다. 푸코의 『헤테로토피아』에 의하면, 헤테로토피아를 구성하는 여러 원리 중 하나는 이질적 시간, 헤테로크로니아의 원리다. 민수에게 쿠바는 헤테로토피아는 아니다. 혁명이 일어난 지 수십년이 지난 후의 쿠바는 경제적으로 아주 낙후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주민들의 삶은 궁핍하기 짝이 없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많아지면서 쿠바는 밝은 조명이 비추어지는 관광지와 어둠에 싸인 골목의 이중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젊은 시절 혁명적 유토피아를 꿈꾸었을 민수도 쿠바의 적나라한 현실을 목격한다. 그러나 쿠바는 그에게 여전히 "참 묘한 나라"다. 민수에게 쿠바는 현재의 모습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총천연색 사진이 아니라 쿠바 혁명기라는 과거가 흐릿하게 겹쳐진 흑백 사진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민수에게 파라다이스 빔을 선사한 것은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물빛만도, 카리브해 물빛을 담은 아쿠아마린 묵주 팔찌만도 아니다. "군더더기 없는 호리병 같은 몸과 매끄럽게 빛나는 벌꿀 색의 피부와 깊고 그윽한 눈을 가진 가난한 물라토 여자"인 소피아도 있다. 그런데 소피아의 매혹은 쿠바의 실패한 혁명에 대한 우수와 겹쳐진다. 창녀의 존재는 쿠바 혁명의 실패를 보여주는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명퇴 후의 여유로운 삶, 행복한 노후를 남편과 함께 하리라는 수현의 꿈은 명퇴를 앞둔 겨울방학에 남편의 간암 말기 진단으로 허무하게 깨어진다. 낙조를 보고 감탄하는 수현에게 천국처럼 좋냐고 묻던 남편이 은연중에 암시한 파라다이스 빔은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된 수현에게는 역겨운 단어로 다가온다. "살아서도 천국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었던 그 신비했던 마법의 언어가 쿠바의 어린 창녀로부터 당신을 통해 나에게까지 옮겨진 성병처럼 역겨워지기까지 했어요." 평생 명분과 이상을 추구하는 자유인으로 산 남편 민수가 쿠바의 이국적인 환경에서 느낀 파라다이스 빔은, 경제력없는 남편 대신 평생을 생활인으로 살아온 수현의 삶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강민수! 도대체 너는 누구고 나는 무엇인지! ...... 나는 묵묵히 생활을 위해, 당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살아온, 그저 당신 인생과 생활의 희생자이자 피해자!" 이렇게 느끼는 수현에게 인생의 빛나는 순간을 의미하는 파라다이스 빔은 사치이기도 하다.

그런 수현에게도 파라다이스 빔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자신만의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는 순간. 쿠바에서 소피아를 만나지 못하고 집에 돌아온 수현은 자전거를 타고 남편과 동행하던 때보다 더 멀리까지 가본다. 자전거로 달릴 때면 걸을 때보다 훨씬 넓은 시야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그렇게 펼쳐지는 풍경과 자신이 하나가 된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한 기분은 자동차를 타고 달릴 때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폴 비릴리오가 말했듯이, 자동차의 속도는 너무 빨라서 풍경은 이미지나 점들의 다발로밖에는 지각되지 못한다. 자전거를 타면서 수현은 자신이 경험하는 파라다이스 빔을 이렇게 묘사한다. "페달을 밟으며 내 몸에 전해지는 리드미컬한 삶의 에너지가 자연을 만나는 어느 순간, 오르가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요. 파라다이스 빔이 마구 쏟아지는 느낌. 그때는 공기가 가벼워지고 빛의 입자마저 세세하게 느껴져요." 자전거의 속도감은 리드미컬한 삶의 에너지로 느끼게 되고, 그러한 에너지로 인해 자연 풍경이 분할되고 또 진동한다. 수현의 파라다이스 빔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동경이 가닿고자 하는 유토피아가 아닌 바로 이 곳, 이 익숙한 장소에서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익숙한 자연의 무대가 다른 시간, 헤테로크로니아를 경험하게 해주는 헤테로토피아가 된다. 수현은 자신만의 파라다이스 빔을 경험하고 난 후에 비로소 남편 민수의 파라디이스 빔을 깊이 이해하고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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