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보내고 1년.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다독였다. 너무 오래 아주 오래 무척 오래 그 없이 살아왔어서, 그에게 돌아서 도착하기 전에 그는 사라지고, 나는 어디에도 기대어 울 수가 없어서, 그래 내 설움, 내 아픔이지. 밝게 웃을 수 있는 마음을 오래 접어두고, 아마도 나의 그도, 그냥 순전히, 내가 나의 딸에게 했듯이 오로지 나를 사랑했던 때가 있지 않았을까 믿고 싶어서, 그게, 믿기지 않아서 내내 서러운 것일까.
묵묵히 지나온 1년. 나는 무엇을 내게 속였던 것인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꿋꿋한 내가 되어, 무던하고 강인한 외양을 만들어 그 속에 들어앉아 내 여린 마음, 아픈 가슴을 외면했지. 괜찮지 않음을 인정한다며 붙들고 있을 마음마저 없는 척, 그냥 살아가다보면 살 수 있으리라는지혜가 내 것인 양. 누구에게 뭘 보여주려고, 내 마음을 소중히 하지도 못해서, 나는 다리가 아프고, 떠나기 전 엄마처럼, 목소리가 가늘고 언제나 그랬던 그이처럼.
아직도, 실재했던 그와 싸우고 있기도 해서 나는 그를 온전히 보내고 있지 않다. 나는 기억 속에서 한 번도 다정하지 않았던 그와 헤어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계속해서 의식을 치르면서도, 마음이 그저 뭉근히 아팠고, 그랬던 이유는, 내게 오랫동안 그가 없었기 때문이고, 그러나 그가 아주 떠난 것은 사실이어서 사실과 상상 사이에서 마음이 헤매고 있었고, 잡은 적 없는 그를 놓아야 하는가 싶어서 어리둥절해 있는 것이고, 이런 얘기도 진짜 내 맘인지 알 수가 없고.
마음을 충분히 준 이가 아닌 누군가의 상실. 아니면 의무로라도 그를 기려야 하는 관계에 대한 피곤. 나는 그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많지 않고, 그런데도 대신 죽었으면 싶기도 하고, 그만큼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그래도 아마도 잊은 기억 속 어딘가에서 그가 나를, 나만을, 내가 내 자식을 사랑한 만큼 사랑한 시기가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그의 인생의 아주 짧은 기간에라도. 내 생의 아주 작은 부분만큼이라도. 나는, 나는, 왜 우나.
잃어버린 것이 상실 후였는지 아득히 먼 옛날 이미 빼앗긴 것을 다시 잃은 것이었는지. 사라진 지 오래인 것을 새삼 잃어서 그토록 마음이 차가웠던 걸까. 두둥실 홀로 떠다니는 진공의 공간에서 꾸역꾸역 사는 듯이 살아왔지만 왜 그래야 했을까 묻게 되어서. 아무도 없이 혼자인 시간이 실은 더 필요했을까. 다 아는 척, 알아서 괜찮은 듯, 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일까.
서러워서 울어야 했던 때는 아주아주 오래 전이었고, 이제야 온전히 나로 살아가게 되는 것, 그것이 슬펐던 것일까. 마음 속에 일던 안타까움이 이번의 상실 때문이 아니라 계속해서 잃었던 마음 때문이었을까. 전부를 주지 않고 그나마도 계속해서 빼내어 다른 아이에게 주던 그에 대한 미움을 덮어두었던 시간. 내 마음의 더께 속에 갇혀 있던 빼앗기고 상처받은 아이. 그래서, 억울과 원망만 커다랬던 아이에 대한 위로. 필요한 건 그거였나.
그 위로가 이기적으로 보일까봐, 기꺼이 슬퍼하지 못하고, 눈물은 흘렀으나 아파하지 못했네. 그럴 듯해 보이고 싶어서. 세상의 미덕 따위 신경쓰지 않겠다면서 실은 그걸 다 갖고 싶어서 가진 척이라도 하고 싶어서 나는 내가 상실한 자의 좁은 마음밖에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덮어버리려고만 했던 거란 것. 그 마음의 근원이 내 엄마라는 것. 그리움이 아닌 안타까움만 남기고 간 이에 대해 덤덤히 차가운 마음이 가장 커서 화가 나기도.
세상살이에 마음 따위 잘 간직하면 힘만 들뿐이라고 차가운 지성으로 무장하리라며 내내 혼자였던 자가 새삼 현실의 상실에 슬픔의 껍질을 쓰고서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울 줄 알게 된지는 오래. 울음도 웃음도 다시 시작된 것은 나의 의지에 의해서. 그래서 다시 이 모든 경험과 생각과 마음이 그대로 괜찮은 거다. 회한이나 후회마저도. 나는 이 흐름대로 느끼고 있고 그래야 하기 때문에 그래지는 것이다. 아, 이제 또다시 맞을 예정인 상실. 나의 아이, 내가 떠나보내야 하는.
나는 또 얼마나 추울 것인가. 그리고 나의 삶은 얼마나 쓸쓸할까. 태어날 때부터 이제껏 언제나 항상 기꺼이 나를 사랑해주는 나의 아이. 이제 온전히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친. 또다른 상실. 그러나 이것은 내어줌. 빼앗기지 않았으니 괜찮아. 충분히. 해야 할 일은 다시, 마음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것. ‘진짜’냐고 따지지 않고 할 일이라 생각하는 것을 하는 것. 어떤 무엇도 의식하지 않고 그저, 하던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다시 내 삶. 미묘하게 변하는 에너지. 덤덤히, 원래의 따스함이 있었다 해도,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차가워져 그 따스함으로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다며 덤덤히. 그의 삶은 그 역시 덤덤히 복기하며,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말들이 다 사실임을 받아들이며 원망도 외로움도 여전히 떠오르는 아픔도 그저 다 나임을 받아들이며. 그럴듯해 보이고 싶은 마음 뒤에 숨은 나태와 비겁까지도 나임을 받아들이며 아닌 듯이 포장할 때도 있는 나까지도 나라는 것. 거짓과 참 사이에 진동하며 나아가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나임을 속속들이 느끼면서.
아팠구나 아이야. 그를 잃어서만이 아니라 47년 세월 밀고 당기며 얻지 못한 사랑을 근거로 만들어온 생이 무너져 어찌할 바를 몰랐구나. 존재가 사라졌어도 스스로 만든 기둥으로 버텨오느라 지쳐왔구나 얘야. 그 말을 해줄 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도 괜찮다 아이야. 너는 이미 스스로 잘 자라왔고, 따스함을 잃었으나 그게 뭔지 아는 성인이기도 하단다. 잘 해왔구나. 잘 해왔단다. 잘 할 거란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슬프면 울고 즐거울 때 웃으며 일단은 살렴. 아직은 살아있으니 원망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