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82

by 포근한 바람

처음과 중간 언제쯤, 그리고 마지막 며칠.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이지만 그의 입원과 떠남 그 사이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이렇게, 구체적인 기억들을 놓쳐버릴 것이니 기록을 해볼까 떠올리기는 했으나 무언가를 적는다는 것도 마음의 힘을 많이 쓰는 일이어서, 그 시기에는 그 정도까지 해낼 여력은 없었다.


일 마치고 병원으로. 환자를 잠깐 보고 아부지와 저녁을 먹고 서로서로 조금씩 도닥이다가 다시 병원으로. 그와 인사하고 집에 가고. 다시 일 마치고 병원으로, 병문안 오는 그의 친구들, 친지들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가 어느 날 그가 중환자실에 들어가 버리고. 아마 그런 날 중 하나였지. 오늘은.


중환자실은 조금 서늘하다 싶은 온도였고, 온통 비닐을 둘러싸고 나서야 환자의 근처에 갈 수 있었고, 그는 거의 의식이 없거나, 깨어 있어도 서로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운 상태였고,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다.


일흔 번째 생일이 지나고 넉달 쯤 지난 날들. 예순 아흔 해를 살아오는 동안 그는 무엇이 가장 행복하고 무엇이 가장 힘들고 무엇이 가장 좋고 무엇이 가장 아팠을까. 내가 보고 들은 그의 모습과 그의 삶은 참 다를 것이어서, 나는 그를 모르고.


동생에게 전해들은 그의 또다른 모습들. 정서적으로 많이 메마른 사람이란 기억 속의 내 모습과는 다른, 역시나 그도 마음의 여러 갈래를 가지고 있었고, 어쩌면 생의 의무를 거의 다 치르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서, 그런 갈래 중에 마음 속 저 깊이 고이 묻어두었던 밝고 해사한 마음들이 비죽비죽 나오더라던 그 모습을 나는 모르고.


뒤죽박죽인 채로, 전해들은 말과 기억 속 그림과 이제는 곁에 없는 사람에 대해 자연스레 변하는 감정들이 더 뒤섞여서, 그래, 모른다는 게 맞겠지. 그 삶의 전부를 함께 한 것도 아니니 더욱.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스물 두 해를 함께 살아온 딸에 대해서도 이제 서서히, 아, 내가 모르는 저런 게 저 친구에게 있었구나 발견하곤 하는 걸.


그래서, 그에 대한 애정이 있었든 없었든, 나는 매일 조금씩 그를 떠올리며, 어쩌면 그것이 한 생을 살아온, 그 가족과 친지와 몇 안 되는 친구들 외에는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증명할 길이 점점 없어지는 이에 대한 가족으로서의 의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무명으로 살다가는 모든 이에게 어쩌면 자식이란 그런 역할을 하는 자일까. 사랑이든 의리든, 분노든 증오든 혹은 그 모든 것이 뒤섞인 마음으로든 매일매일 그를 떠올리며 나고 살고 죽는 그 모든 순간을 같이 할 수는 없었다 해도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 중 하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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