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딸바보다. 31년 동안 외동딸을 애지중지 키우셨다. 해달라는 것은 다 해 주셨고, 오냐오냐 방식의 끝판왕을 보여주셨다. 엄마의 맞장구에 신이 난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유독 판을 벌려가며 이일 저일 도전하는 것에 중독되어 자랐고, 그 결과 교내•외에서 진행되는 대회란 대회는 다 출전했다. 멋 모르고 나간 대회 중에서 큰 상을 받을 때도 많았기 때문에 수영, 미술, 영어말하기, 글쓰기 등 못 하는 게 없다고 자만했다. 동네 아주머니들께서는 ‘동네에 천재가 났네’라며 칭찬을 마구 퍼부어 주실 정도였다. 문제는 모든 장르에 대한 흥미가 딱 그때 뿐이라는 점이었다. 대회에 한번 다녀오면 다음에 또 도전하는 기회는 없거나 한참 뒤에나 생겼다. 그렇다. 나는 매번 그저 즉흥적으로 재미를 붙였고, 빠르게 더 재밌을만한 일을 찾기 바빴다.
엄마는 왕비다. 그렇게 소중한 딸도 한 번씩은 엄하게 혼내셨다. 그런데 나는 왜 혼났는지 전혀 떠올릴 수가 없었다. 혼날 때마다 나는 벽장에 새로 생긴 자국이 몇개인지 세어보고 있었고, 왜 생겼을까 상상하고 있었고, 만약 저 생채기를 만든 범인이 아빠라면, 아빠도 엄마한테 지금의 나처럼 꾸중을 들으셨을까 궁금했고, 그러면 아빠는 뭐라고 반응하셨을까 궁금했고, 미안하다며 엄마를 안아주셨을까 싶었고, 문득 아빠가 빨리 퇴근하셔서 나도 안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맛있는 저녁으로 무얼 먹을지 고민했고, 후식으로는 뭐가 좋을지 상상했고, 오늘 하루 끝에는 아빠의 재밌는 얘기 들으면서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엄마의 말을 모두 놓쳤다. 내가 누군가의 말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지금도 여전하다. 내 앞에서 얘기 해주시는 분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하든, 얼마나 중요한 얘기를 하고 계시든지 말이다. 아 맞다. 엄마를 왜 왕비라고 묘사하고 싶었는지는 뇌 속에 펼쳐진 생각들을 따라가다보니 이미 놓쳤다.
엄마는 걱정쟁이다. 자주 덤벙대느라 크게 다친 적이 많았던 어린시절, 뭐든지 잘 잃어버려서 새로 사는 것이 많았던 학창시절, 핸드폰 충전 같은 간단한 일도 까먹기 일수라 자주 연락이 안 돼서 전전긍긍하시던 요즘까지 엄마는 나를 걱정하느라 한 세월 보내셨다. 모든 자식이 어느 정도 이런 과정으로 커가지 않냐는 질문에 반박할 만한 큰 사건도 있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일 앞에서는 유독 더 판단이 잘 안 서는 딸이기 때문이다. 딱 20살이 되던 해, 사이비 종교의 화술에 홀려 제사를 지내고 나온 적이 있다. 서울교대역 근처 대로변을 걷던 도중 두 명의 젊은 남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제는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문장인‘눈이 참 맑으시네요’를 시작으로 한 시간 넘게 대화했다. 그들의 아지트와 같던 공간까지 발을 들이게 된 가장 핵심문장은 ‘어머니 이름에 아픔이 보여요’였다. 그 문장을 듣자마자, 엄마가 편찮으실 수도 있다는 조금의 가능성을 마법같이 없애 준다던 그들을 당장에 따라나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싹한 순간인데 당시엔 그런 결정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판단했다.
엄마는 통제광이다. 실제로 통제를 즐기신다기 보다는 잡혀 있던 적이 없는 나의 경제관념 때문이다. 돈을 흥청망청 써서 다음달 용돈을 둘째 주 주말부터 애걸하던 딸의 모습을 자주 마주하셨다. 평생 엄마는 동물을 싫어하셨다. 모종의 이유로 햄스터 만큼은 정말 싫어하셨다. 평생 나는 동물을 키우고 싶어했다. 귀엽다는 이유로 햄스터를 유독 좋아했다. 23살 첫 자취를 하던 때에 골든햄스터 한 마리를 분양 받았다. 집에 데려온 날, 이름은 ‘치도’라고 지었고, 최선을 다해 키우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적금을 깼다. 어머니께서 모자란 딸 대신 모아주신 용돈으로 들었던 소중한 적금인데 작고 귀여운 존재에게 오롯이 쏟아 부었다. 자그마치 몇 백이 되던 돈을 햄스터가 먹고, 자고, 싸는 데 투자했다. 그 덕에 치도의 집은 금세 궁궐같은 모습으로 변했고, 치도는 주인도 못 먹는 자연친화적인 올가닉 간식만 먹을 수 있게 됐다.
엄마는 내 매니저다. 미루기 왕인 딸은 매번 시간에 쫓긴다. 결국엔 잘 해낼 거면서 시작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 목전까지 미루기 십상이다. 이때마다 나는 좌절하고, 엄마는 내가 포기해 버릴까봐 두려워하신다. 나만의 연예인이 업을 그만두겠다고 생떼를 쓰면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골머리를 싸매시곤 한다. 일을 미룬 건 나 혼자인데 벌은 엄마와 함께 받는다. 엄마는 딸의 1호 팬이기도 하다. 딸은 적어도 자신이 진심으로 흥미 붙인 일은 매섭게 몰입한다. 충동적인 도전정신에 이끌린 무분별한 시도들과는 다른 모습보여준다. 엄마는 한 번씩 보여주는 딸의 무서운 집중력에 감동하고, 입이 마르시도록 칭찬하고, 다음을 기대하고, 또 실망하고를 반복하신다. 허허허.
엄마는 ADHD가 긁어 부스럼이라고 하셨다. 이런 딸을 평생 경험하시고도 ADHD만큼은 평생 부정하셨다. 그 정도 아니라고, 약 먹으면 너의 천재성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고 걱정하셨다. 굳이 병원에 가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 위험까지 만들 필요가 있냐고 우려하셨다.
하지만 딸은 우울했다. 뭐든 차분하게 대처하는 법이 없어서 실수가 잦았다. 물을 쏟는 작은 실수부터 중요한 약속을 까먹어서 신뢰를 잃게 되는 큰 실수까지 허점투정이의 삶이 계속됐다. 잘못을 떠올리며 후회할 때는 자괴감이 쌓였고,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순간에는 자존감이 깎였다. 점점 더 원점에서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무너진 이미지를 되찾으려고 남들보다 배로 노력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남들의 평상시와 같은 제자리였다. 애쓰는 것 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힘들었다.
그리고 딸은 숨겼다. 대학원 수업에 늦어서 자주 헉헉대며 강의실을 들어갔던 사실을, 과제를 늦게 제출해서 강의를 담당하셨던 교수님께 죄송하다는 이메일을 여러 번 드렸다는 사실을, 지도교수님의 부탁을 까먹기도 했다는 사실을, 우리 랩실 회의를 완전히 잊어서 혼이 났다는 사실을 숨겼다. 나만 보고, 나만 생각하고, 나만 궁금해하는 엄마가 나의 수많은 오점들을 감당하시다가 상처 받으실까 숨겼다. 상처받으신 마음을 내게 모두 풀어내시기에는 내가 소중할테니 나의 실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나 대신 욕하실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딸은 ADHD 사실까지 숨겼다. 정확히는 정신의학과에서 ADHD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 엄마는 손끝에서 키운 딸이 지금까지도 손이 많이 간다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셔서 딸의 부족함을 병처럼 여기기 싫어하셨다. 누가 들을까 무섭다고 밖에서는 대화 도중 ADHD라는 단어조차 꺼내지 말자고 하셨다. 병원에가서 진단을 받아보겠다던 딸을 말리시다가 눈물을 훔치셨다.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ADHD였기 때문에 그렇게 귀여운 딸일 수 있었다고, 하지만 ADHD였기 때문에 딸도 많이 고생했다고. 이제는 조금 더 나아진 모습으로 남들과 함께 유연하게 살아가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