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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Nov 18. 2021

철학 휘두르기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야마구치 슈

 철학서를 읽을 때마다 철학자의 지적 깊이와 경이로운 사상에 기꺼이 탄복하지만, 그 철학을 삶의 무구(武具)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물론 철학은 내 삶을 바꿀 만큼의 힘이 되어주고 더 나은 인생을 살게 하였다. 하지만 그것을 '도구'로써 휘둘러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때까지 읽었던 철학서들이 잠언과 교훈으로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제목처럼 철학을 '무기'로 사용하는 다소 차가운 느낌이라 하겠다. 사실 철학은 매우 날카롭고 회의적인 사고에서부터 시작된다. 질문 의식을 가지고 틀에 박힌 사고를 한번 의심해보는 역동에서 새로운 사상이 탄생한다.


 저자 야마구치 슈는 일본 최고의 기업 인사 컨설턴트라는 명성에 걸맞게 철학이란 칼을 이 시대의 사회 깊숙이 찔러봄으로써 사회 속 고착된 틀과 문제를 깨부수고 풀어나가는 혁신가이다. 철학뿐만이 아니라 심리학, 경제학 등 여러 영역의 이론과 학문을 다방면으로 소개함으로써 기존 철학서의 답답함과 지루함을 없앴다. 또한, 철학 사상을 시간 축으로 구성하지 않고 우리가 실생활에서의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로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하고 핵심적인 학문 위주로 소개했다. 총 4가지의 콘셉트로 장이 나뉘는데 사람, 조직, 사회, 사고 순이다. 여러 학문에서 다루어진 이론과 효과, 아포리즘을 현시대에 맞게끔 도출하여 독자에게 교훈을 주기도 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책에서 소개된 학문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통념을 과감하게 부수는 것들이다. 또한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의 철학이라도 흥미롭게 재해석하여 철학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생각을 타파하게 한다. 예를 들면 '성과금을 주지 않는 편이 직원의 창조력을 향상시킨다.' 라던지 '천국에 갈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라고 발언한 신학자, '너무 평범했던 학살자', '구글의 알고리즘 vs 민주주의 운영체제' 등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특별히 그중에서도 내가 숙고했던 내용을 한두 가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



 

안정이 계속될수록 축적되는 리스크


 <블랙 스완>의 저자, '현대 최고의 사상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반(反)취약성, 안티프래질(anti - fragile)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이는 '외부의 혼란이나 압력에 오히려 성과가 상승하는 성질'을 뜻한다. 이 반취약성은 세상 모든 물질적, 비물질적인 것에 존재하는 것으로 당연히 인간도 해당하는데, 인간의 반취약성은 스트레스, 실패, 실수, 잘못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것은 인간에게 취약한 것이지만 때로는 인간을 더욱 견고하게 하며 새로운 변화를 주게 하는 전환점 될 수 있다. 쉽게 말해 인간이 취약한 성질에 반응해 긍정적 효과를 내는 것이 바로 반취약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이 성질은 꼭 인간뿐만이 아니라 현상, 사회, 정치, 경제 등에도 폭넓게 반영된다.


 책에서 야마구치 슈는 반취약성을 조직론이나 경력론에 적용하여 잘 설명하였지만 나는 내 삶 속에서 반취약성을 사용했던 경험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나는 나를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나를 연구체로 선정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내 삶을 돌이켜보니 쉽게 반취약성을 사용한 경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고 크게 반취약성을 활용한 사례들이 있는데, 빈번하게 활용하는 것은 '타인과의 비교'이다. 이 비교를 통하여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사용한다. 누가 나를 타인과 비교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지만 비교하는 행위를 내가 한다면 스스럼없이, 더욱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다. 내 주변에는 정말 삶에 향상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초인'들이 많다. 그분들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얼마나 나태하고 안일한지 꿰뚫어 보고 부끄러움과 긴장을 준다. 내 인생에 있었던 가장 강력했던 안티프래질은 내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큼 강력했다. 마음속에 치유될 수 없는 상처와 메꿀 수 없는 구멍을 만들었지만, 절박해짐으로써 그 시간 동안 내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살 수 있었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는 말이 있다. 정말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안티프래질을 잘 사용한다면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자발적인 동기와 개인적 재능으로도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겠지만(또 그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지만), 가장 빠르고 폭발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은 아마 반취약성의 활용이 아닐까? '나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시련은 나를 한층 더 강하게 만든다. 살아있는 한, 나는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라는 유명한 니체의 아포리즘이 반취약성을 쉽게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꺼이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은 '인간이 자신의 마음속에 양립 불가능한 생각이 대립할 때, 자신의 믿음에 맞추어 행동을 바꾸기보다 행동에 따라 믿음을 조절하려 한다.'는 심리적 작용을 말한다. 책에서 제일 처음 소개된 니체의 '르상티망'도 인지 부조화의 대표적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인지 부조화의 예들이 많지만, 내가 글을 읽고 바로 떠올린 것은  '스톡홀름 신드롬(Stockholm Syndrome)'이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 강도들이 은행을 털다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강도들은 은행의 고객 4명을 인질로 잡아두지만, 6일이 지난 후 검거당하게 된다. 다행히도 인질들은 무사히 돌아오게 되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재판이 시작되자 인질들이 모두 은행 강도들을 옹호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억류당하고 있을 때 인질들의 마음속에는 '범죄 행위에 대한 인식'과 '생존의 욕구'라는 생각이 대립하였을 것이다. 물론 은행을 터는 행위는 중범죄라는 것을 알지만, 생존이 인질에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은행 강도들이 친절하고 착하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이런 인지적 왜곡은 인질이 극한의 상황에서 공포를 줄이기 위해 강도들과의 유대를 형성했다는 착각이다.


인지 부조화는 심리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로써 사실 판단 여부를 흐리게 하고 심하면 진리조차도 기탄없이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인지 부조화는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인가? 아쉽게도 책에서는 인지 부조화를 막을 수 있는 무기를 소개하지 않았다. 나는 인지 부조화가 긍정적인 사례로는 절대로 발현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바,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마음속에 갈등이 일어났을 때, 양립되는 생각 중 어느 것이 나의 신념과 가까운 것인지 깊게 고민해 본다. 그 갈등이 사소한 것이라도 시간을 주고 살펴봐야 하는데, 그 사색의 의미는 나의 신념이 무엇이고자 한지 반복적으로 인지하며 더욱더 두터운 신념관을 가지려는 것이 첫 번째고, 더 중대하고 위협적인 인지 부조화가 일어났을 때를 대비한 연습이 두 번째이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쉬운 길로 가려는 편향된 마음을 가지려는 습성이 생겼다. 이런 자세는 쉽게 휘둘리고 부러지기 쉽다. 인지 부조화는 굉장히 빠르고 조용히 침투하기 때문에 마치 어떠한 갈등도 없었던 것처럼 어느새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인지 부조화는 기본적으로 생각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쉬운 생각만 하고 어려운 생각을 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면, 스톡홀름 신드롬의 인질들처럼 간단한 진실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어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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