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의 채식주의자》 전범선, 한겨레출판, 2020
저자는 '조선 락'이라는 분야를 개척해 가는 인디밴드 보컬이다. 스스로 '전방위적 독립문화인', '21세기 양반 라이프스타일'이라 자칭한다. 자유주의적 색채가 강하다. 일반적인 음악인들과 학업 배경이 대별된다. 민족사관고, 아이비리그 대학, 옥스포드대학원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사실 인간 생활에 있어 공부를 좋아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학자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다. 대학 교수들 조차도 생업으로 하는 지식 노동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다소 유치 하지만 어쨌거나 관심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며 좋아서 공부했다. 로스쿨 진학 포기로 국제변호사의 길을 멈춘 게 아쉽다.
일반적인 사람의 진로 선택의 절대 기준은 '안정성'이다. 이 지점을 저자는 '불행'과 '불안'의 문제로 받아 들였다.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인디밴드 활동)을 위해 '안정된 삶(국제변호사)' 이라는 불행을 포기했다. 저자가 선택한 불안에 대한 일종의 자기 고백을 담은 책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면 먹구살기 위한 작은 몸짓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페이지, '출처'에 의하면 2부와 3부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과거에 발표한 글들을 묶었다. 신문기사, 인터뷰, 기고문, 칼럼 등 기존에 했던 글쓰기들이다. 단지 1부의 분량만 추가해서 이번에 산문집을 출판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기획은 적중했다. 출간 2개월만에 2쇄를 찍었다.
엄청 더 찍어내길 바란다.
강원도 출신인 저자는 대치동 유학시절 서울도 어색했다. 그런 그가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하며 느꼈을 소외감들을 상상해 본다. 민사고서 3년 영어로 수업했다고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 처럼 되는건 아니다. 인종 차별도 당해 봤을 것이다. 학업적 우위나 수석 졸업으로도 극복이 안되는 '서양 문화'라는 장벽과 유리 천장에 부닥쳐 보았을 것이다.
그가 광화문 거리 촛불 집회에서 백만 군중 앞 무대에 올라가 받은 전기충격은 컸다. 중학교 전학년 전교 1등을 도맡아 했었던 저자의 페르소나를 무대에서 다시 만났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스토리가 오늘 나에게까지 도달했다. 저자는 이미 알아챘던 것이다. 정통 음악인들에게는 쉽게 무시 당하리란 걸 말이다. '조선 락'으로 나가기를 잘했다.
맺음말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코로나 세상의 충격파에서 문화 예술계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여러가지로 어려웠을 것이다. 개념있는 찐 엘리트 분들이 역차별 없이 인정 받길 소망한다. 저자는 10년 후 자기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자유롭긴 하지만, 자다가 이불킥 차며 불안해 하기도 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하수인 아닌 자유의지의 주인으로 산다.
'우선 잘 하는 걸 하며 돈을 벌면서 하고 싶은 것도 해라.' 꼰대들의 단골 주문이다. 사실 꼰대들의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여름, 겨울 방학식 다음 날 출국해서 개학식 전 날에 귀국하는 꼰대들을 주변에서 부러워 한건 오래된 얘기다. 연 2회 유급으로 놀며, 하고 싶은 일 하며 산다는 얘기다. 스승이 사라지고 직업 교원들만 늘어나는 세태도 문제다.
사람이 배우기도 어렵지만 배운데로 살기란 훨씬 더 어렵다.
저자는 민족사관고 교훈 처럼 살아가고 있는게 틀림없다. "출세하기 위한 공부를 하지 말고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자."고 배웠듯이 역사가 좋아져서 역사 공부를 더 했다. "출세를 위한 진로를 택하지 말고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택하자."는 본인의 생각을 따르는 게 아닌가 싶다.
필자는 일반고 나와 내세울 건 없다. 교훈도 기억에 없다. 그렇지만, 해사(海士)에서 4년간이나 주구장창 암기하고 복창하던 교훈은 지금도 선명하다. 모르면 깨졌으니까. '진리를 구하자. 허위를 버리자. 희생하자.' 종교적 냄새가 날 정도로 거룩한 내용이다.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산다. 출세해야 엘리트가 아니다. 엘리트가 출세해야 한다.@
* 저자가 민사고에서 1등을 해볼 수 있었던 유일한 과목.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