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개월수엔 뒤집기를 해야 하고, 손을 뻗어 물건을 잡아야 하는데 스텔라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공감능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대학병원 물리치료사의 매정한 말은 늘 내 심장을 후벼 팠다.
‘아니, 그게 안되니까 지금 치료받는 거잖아?! 그게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런 말들이 수백 번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병원의 빽빽한 스케줄 사이에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스텔라의 치료를 끼워 넣어달라고 빌어야 하는, 나는 완전한 을이었다. 그저, 힘없는 발달지연 아기의 엄마일 뿐이었다.
물리치료는 일주일에 두 번, 몇 달 동안 계속됐다.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병원은 너무 컸고, 주차는 매번 전쟁이었다. 치료 시작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도 지하주차장은 늘 만차였고, 멀리 떨어진 야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기를 안은 채 셔틀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나는 축축한 아스팔트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한 손에는 아기를, 한 손에는 무거운 짐가방과 우산을 간신히 들었다. 그 길 위에서 매일 나는 짐꾼이자 절망에 빠진 엄마였고, 그저 살기 위해 버티는 한 인간이었다.
심장을 후벼 파는 상처를 입은 채 치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지옥으로 향하는 길처럼 무겁고 슬펐다. 감당할 수 없는 좌절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와 나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꺼억꺼억 소리 내며 울었다.
스텔라는 오는 길에 잠들어 다행히 내 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에 갇힌 신세였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이 앞에서는 울면 안 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 본능도 오래가진 못했다. 수많은 날들을 울었고, 아이가 보는 앞에서도 결국 울음을 삼키지 못한 날이 많았다. 아이 앞에서 엉엉 울고 나면 매번 두려웠다. 나의 우울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아이에게 전염될까 봐.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이 앞에서 울고 안 울고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엄마가 느끼는 슬픔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전해지는 법이다. 아이는 고스란히 엄마의 감정을 흡수한다. 그렇게 나는 아이의 마음속에도 어둠을 심고 있었다.
스텔라는 돌이 지나도 걷지 못했다.
주변 또래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때, 스텔라는 앉지도 못하고 여전히 바닥을 기어 다녔다.
엄청난 노력 끝에 뒤집기를 하고, 기어 다니기를 시작해도, 또 그다음 발달 과업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끝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러닝머신 위에 있는 것처럼, 나와 스텔라는 아무리 노력해도 발달의 정상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나는 아이의 작은 등을 일으켜 세우려 애썼다. 두 팔로 겨드랑이를 받쳐 일으키면 스텔라의 다리는 말랑한 봉제인형처럼 힘없이 휘청거렸고, 금세 주저앉았다.
“한 번만 더 해보자. 스텔라, 한 번만!”
하지만 아이의 눈에는 이미 피로와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걷지 못하는 건 스텔라가 아니라, 사실은 나였다.
나는 두려움에 짓눌려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절망 속에 갇힌 또 다른 아이였다.
결국 스텔라가 독립보행을 시작한 건, 생후 20개월이 지나서였다.
보통의 아이들이 돌 전후로 완성하는 이 과업을, 스텔라는 아주 많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돈을 쏟아부어 완성했다.
일반적으로 ‘조금 늦되다’고 표현되는 아이들도 14, 15개월 정도에는 걷기 시작하고, 아무리 늦어도 18개월에는 걸음을 뗀다. 그래서 ‘18개월’은 ‘조금 늦된 것’과 ‘신체, 발달상의 이상’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스텔라는 이 기준선보다도 두 달이 더 걸렸다.
목 가누기부터 늦었으니 걷는 것도 오래 걸릴 거라 예상은 했지만, 마의 ‘18개월’이 다가오는 데도 걷지 못하자 내 심장이 조여오기 시작했다. 혹시나 평생 걷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나는 매일같이 두려움에 잠식당한 채 일상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스텔라가 대체 왜 느린지 원인을 알 수 없어 죽을 만큼 답답하고 암울한 현실을 살았다. 영혼이 빠져나간 좀비처럼 치료실과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가끔씩 거울을 보면 깜짝 놀라곤 했다. 거울 속에는 생기와 웃음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1년 사이에 10년은 늙어버린 여자가 송장처럼 서있었다. 눈 밑은 움푹 꺼지고, 입술은 딱딱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그 여자는 분명 나였다. 나는 살아 있었지만, 죽어 있었다.
발달지연의 원인을 찾기 위해 돌이 지난 어느 무렵, 스텔라의 뇌 MRI를 찍었다.
촬영실은 마치 냉장고 속처럼 싸늘하고 적막했다.
아이가 움직이면 촬영이 불가능한 탓에 진정제를 먹였다. 불과 몇 초만에 팔다리가 축 늘어지며 잠든 스텔라를 보니 참았던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나왔다. 아이를 철제 침대 위에 눕히자 머리 쪽에서 기계음이 드르르륵 울렸다. 아이를 혼자 남겨두고 촬영실 밖에서 기다린 그 몇 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뇌의 구조에는 이상이 없으니 그나마 심한 케이스는 아니라고, 의사는 건조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 말에 아주 잠깐 안도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내 영혼을 잠식하고 있던 두려움과 공포가 물러나진 않았다.
다음은 염색체 검사였다. 작은 팔에서 피를 뽑을 때 스텔라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가 칼날이 되어 내 오장육부를 갈라놓았다. 결과를 기다리며 또 나는 핸드폰에 매달렸다.
염색체 결함, 유전자 이상, 근긴장 저하 및 발달장애...
검색창 속 단어들이 내 불안을 먹고 자랐다.
결과는 ‘이상 없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대답 없는 메아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그럼 왜? 뭐가 문제인 거야? 도대체 왜 느린 거냐고?!
그날 이후, 나는 할 수 있는 온갖 상상을 하며 머릿속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는 건강하다고 생각했으니, 남편을 의심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남편 쪽 집안의 건강상 내력이 있지 않을까?
그의 유전자에 혹시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스텔라가 남편을 닮아 몸이 허약한 거야!
내가 만들어낸 머릿속 스토리텔링이 점점 사실처럼 느껴졌다. 남편이 퇴근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심장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가 미웠다. 그의 존재가, 그의 유전자가, 심지어 그의 숨소리마저 미워졌다.
스텔라가 느린 건 남편 때문이야!
이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밤마다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 발달장애와 관련한 정보를 샅샅이 검색했다. 손 끝이 떨렸고 내 눈은 점점 총기를 잃어갔다.
스텔라의 느림은 이유가 없었다.
그 어떤 검사도, 그 어떤 설명도, 이 현실을 해석해주지 못했다.
나는 매일 무너지고, 다음날 또 무너졌다.
그렇게 무너진 채로, 숨마저도 멎어지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