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는 걷기 시작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발화.
그 단어는 마음 한가운데 돌덩이처럼 내려앉아 숨을 막았다. 아이가 20개월이 지나 겨우 걸음마를 시작하고, ‘이제 됐다’며 안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하나의 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는 세상을 향해 한 발 내디뎠지만, 그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일단 말을 하냐 못하냐는 아이의 기능에 대한 기본적인 잣대이자, 예후를 결정짓는 가장 큰 기준이었다. 굳게 닫힌 아이의 입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하루하루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더군다나 스텔라는 돌 전후로 엄마, 아빠 비슷한 말들을 가끔씩이 내뱉던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말들이 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오랜 시간, 다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침묵은 단순한 고요가 아니라, 세상과의 연결이 끊어진 듯한 깊은 단절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아이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 작은 입은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었고, 나는 매일 그 문 앞에서 두드리다 주저앉았다.
그 어떤 소리라도 좋았다. 그저 ‘아’ 하는 짧은소리라도 내주길, 간절히 바랐다.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기라도 하면 나는 숨조차 쉬지 않았다. 혹시 내 숨소리에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묻힐까 봐. 그러나 아무리 숨을 죽이고 기다려도 아이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스텔라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좋다는 태교 프로그램을 다 따라 시도했다. 클래식 음악을 들었고 탈무드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아빠의 중저음 목소리가 태아에게 잘 전달된다고 해서 매일 밤 퇴근 후 남편과 앉아 태담을 하기도 했다. 태어난 후에도 우리 집에는 늘 그림책이 넘쳐흘렀고, 나는 매일매일 스텔라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노래도 불러주었고 함께 리듬을 맞추며 놀았다.
그러나 굳게 닫힌 스텔라의 입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내가 평소에 말을 많이 안 해서 그런 걸까?
스스로를 의심하며 아이 앞에서 끊임없이 말을 쏟아냈다. 아이의 행동 하나,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실시간으로 묘사하고 생중계했다. 아이는 나를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치 말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그 사실이 내 가슴을 찢어놓았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소리를 잃은 건 아이뿐만이 아니었다. 아이의 침묵 속에서 나 역시 세상과의 언어를 잃어가고 있었다. 내 목소리도, 내 존재도 희미해져 갔다.
엄마.
단지 그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 한마디가 다시 세상을 열어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날도, 그다음 날도, 아무 소리가 없었다.
아이의 침묵은 벽처럼 단단했고, 나는 그 벽 앞에서 매일 무너졌다.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바라본다는 건, 천천히 가라앉는 배 위에서 끝없이 구조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았다. 나는 매일 입을 열어 아이를 향해 소리쳤지만, 세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말을 잃은 아이와 말을 잃어가는 엄마.
두 존재가 같은 어둠 속에 갇혀 서로의 숨소리만 남긴 채 천천히 침잠하고 있었다.
그 침묵은 정적이 아니라, 내 존재 전체를 삼키는 무언의 어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