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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삼킨 어둠

by 슈퍼거북맘

스텔라가 처음으로 전문가에게 “발달이 느릴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건 생후 두 달이었다.


39주의 시간을 고이 품은 끝에 처음 만난 작고 소중한 내 아가.

그 감동은 너무도 짧았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내 세상은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스텔라는 출산예정일이 지나도록 자궁 아래로 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병원의 시리도록 하얀 조명 아래에서 의사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했고, 그 차분함이 어쩐지 불안했다.


난생처음 올라가 본 수술실 침대는 딱딱했고 공기는 냉기와 소독약 냄새로 가득했다. 날카로운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달그락거리는 둔탁한 소음이 내 귀에 박혔다. 척추 마취로 하반신이 마비된 채, 커튼 너머로 의사들이 주고받는 단어들이 아득한 정신 속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후, 적막한 공기를 가르고 생애 첫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순간 내 눈에서는 굵은 물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은 감격의 눈물이자 앞으로 흘리게 될 그 모든 눈물의 시작이었다. 간호사가 눈물을 슬며시 닦아준 후 작은 아기를 내 눈앞에 보여주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불그스름한 볼을 만지며 속삭였다.


"울지 마."


그건 스텔라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내 삶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음을 직감한 채 음악이 뚝 끊기듯 바로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스텔라의 얼굴이 비대칭이란 사실이었다. 오른쪽 볼이 왼쪽보다 훨씬 컸다. 의사는 말했다. “자궁 속에서 오랜 시간 한쪽으로 누워있어서 그래요.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겁니다”.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불안과 찜찜함이 잡초처럼 자라나기 시작했다.


하반신 감각이 아직 돌아오기도 전에 나는 핸드폰을 들고 검색을 시작했다.

신생아 얼굴 비대칭, 한쪽 볼 부음, 교정 베개 효과 등등.

화면의 작은 글자들이 눈앞에서 흐려졌다.

수술 부위의 통증보다,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가 더 깊이 파고들었다.


며칠 뒤, 나는 스텔라의 목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알아차렸다.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검색창을 열었다. 사경, 조기치료, 물리치료 시기… 검색 결과마다 굵은 글씨로 쓰여진 단어들이 칼날처럼 내 마음을 베었다.


그때부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검색창을 열었다 닫았다. 잠시라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으면 무언가 끔찍한 걸 놓칠 것만 같았다. 나는 엄마가 된 것이 아니라, 아직은 알 수 없는 어떤 진단을 기다리는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앞으로의 일을 미리 예견이라도 하듯 나는 무언가에 이끌려 그때까지 잘 알지도 못했던 ‘자폐’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그 단어를 보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내 안의 일부가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경 치료로 유명한 병원에 전화를 걸었을 땐 내 마음이 온통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생아인데요, 목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요…”


전화를 끊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왠지 모르게, 그때 이미 나는 아이의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검은 안갯속을 걷는 것 같았다. 수술 부위의 통증은 점점 옅어졌지만, 내 마음의 공포는 살점처럼 자라났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모든 게 무너진 것 같았다.


사경 진료 예약일은 공교롭게도 스텔라의 생후 두 달 예방접종일이었다.

재활의학과 교수가 아이를 보고 처음으로 한 말은 엉뚱하게도 사경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아기가 힘이 없네요. 이런 아이들은 앞으로 발달이 느릴 수 있어요”


잠시 긴장과 적막이 흘렀다. 의사의 말은 내 고막 언저리를 맴돌다 연기처럼 사라졌다.

“오늘 예방접종 하고 와서 힘이 없는 거예요”


나는 남은 힘을 쥐어짜 항변했지만, 그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안 좋은 예감은 꼭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바로 다음 날, 스텔라는 빨랫줄에 걸린 옷처럼 힘 없이 늘어졌다. 전날 들었던 찝찝한 의사의 목소리가 아이의 축 처진 모습 위로 오버랩되었다. 나는 들불처럼 번지는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아이를 들쳐 안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피검사, 심전도, 심장 초음파 등등 온갖 검사를 다 하고도 모자라 입원까지 했다.

생후 두 달 된 아기와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 차가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그 밤,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모든 불길한 미래를 상상했다.


그날 이후 내 세상은 멈추었다. 나는 검색창 속에 갇혀 살았다.

사경, 근긴장 저하, 발달지연, 유전자 질환, 자폐 그리고 발달장애까지.

그 모든 불길한 단어들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어 기생충처럼 나를 좀먹었다.


밤마다 핸드폰 불빛 아래에서 나는 끝없는 터널을 헤맸다.

한 손에는 검색창, 한 손에는 아이의 손.

작은 손의 온기를 느끼며 기도했다.


제발, 아무 일도 아니기를.

제발, 그저 내 앞선 불안일 뿐이기를.


하지만 불안은 점점 현실로, 현실은 절망으로 변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어제보다 더 깊은 어둠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나 자신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스텔라가 진단을 받을 때마다 내 안의 세계는 조금씩 꺼져갔다.

물리치료를 위해 병원과 집을 매일같이 오가며 ‘희망’이란 단어를 붙잡아보려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캄캄한 동굴의 냉기뿐이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어두컴컴한 동굴의 입구라는 것을.

그곳은 차갑고 축축하고 깊었다. 빛이라고는 한 오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오직 내 심장의 미약한 고동만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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