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가 내게 물었다.
Define "Data" and "Graphing".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 이건 분명 내가 공부했던 내용인데 이걸 '정의'내려보라고 할 줄이야...
난 그저 데이터가 뭔지 예시를 떠올리고, 그걸 수집하는 방법과 그걸 실제로 엑셀에 그래프 그리는 방법만 알고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하이디의 질문은 나를 숨막히게 했다. 등줄기에서 땀 한줄기가 스르르 흐르는 느낌이 나고 심장은 사정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대답을 해야 이 평가에서 패스할 수 있다. 나는 긴장한 목소리로 더듬대며 말하기 시작했다.
Mmm.. Data means... ahh... the information of the behavior. Mmm.. If the client does... 블라블라
뭐라고 말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매우 횡설수설했다. '음..'과 '어...' 등의 filler words로 도배하며 머릿속으로 문장을 만들어내려고 애를 쓰지만 말은 점점 더 꼬여만갔다. 이 평가를 위해서 오랜시간을 공부하고 예상 질문에 대한 대답을 연습했지만, 이 문제는 한번도 연습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미리 연습해보지 않은, 그게 뭔지 그냥 대충 알지만 '정의'내려본 적 없는 단어에 대해 영어로 설명하려니 진땀이 났다. 나는 한참을 횡설수설하다가 결국 하이디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정의' 대신 '예시'를 들어 데이터와 그래핑에 대해 설명했다. 천사같은 하이디는 내가 그 개념을 알고는 있으나 '영어로 설명'하는것은 힘들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내 대답을 인정해주었다.
평가는 그 뒤로 한시간 반이나 이어졌다. 학교에 처음 들어간 유치원생처럼,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하이디가 해보라는 것, 설명해보라는 것에 대해 차근차근 수행했다. 틀리기도 했고, 버벅대기도 했다. 무엇보다 원어민 앞에서 내가 평가받는 자리라는 사실이 너무나 떨렸다. 여기서 떨어지면 어떡하지 불안하기도 했다.
온보딩 과정을 거쳐 회사에 채용되었지만, 바로 일할수있는 것은 아니었다. 직무에 관련한 이론을 온라인 수업을 통해 공부하고, 그걸 실제로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Competency Assessment를 통과해야 일을 할 수 있다. 하이디는 평가자로서 내가 일하는데 필요한 이론적 지식들을 이해하고, 그걸 실전에서 적용할 수 있는지 꼼꼼히 평가했다.
솔직히 대충 할줄 알았는데, 정말 꼼꼼히 하더라. 와, 평가를 끝까지 마치고 하이디가 Competency Assessment에 통과했다는 문서에 싸인해줄때서야 비로소 긴장의 끈이 풀려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가 하이디에게, 나 정말 긴장했었다며 하소연하자 하이디는 내게 앞으로 더 잘할거라 격려해주었다.
이 평가에 앞서 나는 2주간에 걸쳐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아침 9시 즈음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할때까지 하루종일 앉아서. 이름은 40-hours training인데, 원어민들에게나 40시간이지, 나같은 외국인에게는 2배 가까이 시간이 소요되었다. 실제로 하루에 7시간씩 꼬박 10일동안, 아니 부족할까봐 주말에도 집에서 들었으니 실제로 80시간 걸렸다.
당연히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였고, 자막이 있는 영상도 있었지만 자막이 없는 것도 있었다. 자막이 있어도, 없어도 한번 듣고는 이해가 안가서 두번씩 들었다. 그러니 당연히 시간이 배로 걸릴 수 밖에.
이 내용으로 하이디와 함께 하는 실전 평가와 온라인으로 보는 시험도 봐야했기 때문에 대충 할수도 없었다.
양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는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덕분에 그동안 영어몰입하느라 여기저기 컨텐츠 찾아다닐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루종일 여기서 영어 몰입-리스닝, 리딩, 스피킹과 더불어 원어민과 컨벌세이션(conversation)까지 ㅋㅋ
하이디에게 평가받을때 내가 너무 버벅거리고, 스스로 어색해하고 뻘쭘해서 조금 자괴감이 들 뻔 했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하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이렇게 컨텐츠 찾을 필요 없이 공부할 수 있게 온라인 강의도 제공하고, 실제로 질문에 답하는 연습과 대화 기회까지 제공하는 무료 영어 학원이 있다니!! 심지어, 이제 평가에 통과했으니 페이도 받을 수 있다고??
오 마이 갓!! 이건 완전 개꿀이잖아~?!
영어가 늘고 싶다면, 가장 빠른 방법은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비록 지금은 버벅대는 신입 직원이지만, 이 과정 자체가 실전 영어 훈련이다. 실수하더라도, 좀 버벅대더라도, 이 과정 속에서 새로운 표현을 배우고 피드백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다.
곧 하이디와 농담따먹기 하며 여유롭게 영어를 사용하는 경력 직원이 될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