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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Oct 30. 2022

세상에서 가장 힘든 전남편과의 미국여행

지상천국이라도 너와는 힘들어

두고 두고 그 날의 결정을 후회했다.

전남편의 연락을 받고 그 자리에 나가는 것이 아닌데.

미국 여행을 같이 가는 게 아닌데.

아니, 돌아오는 날 애들 할머니가 짐을 뺀 얘기에 흔들리는 게 아닌데.

아니, 그 집에 다시 들어가는 게 아닌데.

후회는 늘 늦고 결과는 빠르게 내 삶을 흔든다.


미국으로 떠나던 날, 인천공항의 하늘은 흐리고 입김이 나오도록 공기는 차가웠다.

짐을 먼저 부치고 돌아서다가 저 멀리서 들어오는 애들과 전남편, 시어머니, 시이모의 얼굴이 보였다.

여기까지 따라왔구나.

원래 친척동생을 데리고 가려다가 이틀전에 맘을 바꾼 전남편에게 나를 왜 데려가냐며 시이모가 엄청 신경질을 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도 굳이 출발하기전 같이 식사를 하자는 전남편의 문자를 받고 사양하는 답문을 보냈다.

정말 내 마음 같은 건 너의 고려사항이 아니구나.

한숨이 나오려 했다.


출발전 애들을 만났다. 좋아라 하며 안기는 둘을 데리고 목베개를 세개 사왔는데, 그건 불편해보이니 각진 걸로 바꾸라는 전남편의 문자가 또 왔다. 내돈내산, 인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쏘아붙이려다가 굳이 싸우지 말자, 싶어 말았다.


한달여간 LA로 시작해 미국 서부를 쭉 도는 여행이었다. 그간 일하느라 쓰지 않았던 휴가를 모아서 쓰는 거라 했다.

나는 첫째를, 전남편은 둘째를 데리고 비행기에 앉았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하기엔 치떨리게 싫은 감정이 먼저 솟아서, 주로 문자나 카톡으로 할 말을 보내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는데, 한달을 어떻게 붙어 있지, 하는 뒤늦은 후회가 일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 여행은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여행 중 가장 고되고 괴로운 여행이었다.

친정 아버지 고집에 가이드도 없이 황산을 쌩으로 올랐던 중국 여행보다도 더했다.

죽도록 미워하는 전남편과 함께 한다는 것은, 특히 여행은 사람 할 짓이 아니었다.


원래도 남편과 나의 여행스타일은 맞지 않았다.

그는 빽빽하게 여행계획을 세우고 돈이 아까우니 하나라도 더 보고 뽕을 뽑자(?)라는 스타일이라면 나는 유유자적 좋은 경치를 보고 여유있게 쉬자는 휴양형 스타일이기에.

언제 또 미국을 오겠어~그러니 다 봐야지, 라는 남편의 각오하에 새벽 기상은 물론이고 하루 종일 이동을 해야 했다.


이혼하기 전에 각자 감명깊게 보며 슬픔에 빠졌던 영화 '라라랜드'의 배경이었던 그리니치 전망대에 가서는 별자리 설명을 듣다가 코를 골며 잠든 나와 아이들때문에 창피해 죽을 뻔 했다며 화를 냈다.

나는 덕분에 잠시나마 숙면이었는데.

디즈니랜드니 레고랜드니 각종 랜드들을 돌다가 밤이 되면 지쳐 쓰러졌고, 밤에도 혼자 앉아 계획을 짜는 그의 뒷모습을 목격할때면 저 인간은 로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지나가던 어느날 밤, 어쩌다 보니 한 침대에 자는 일이 생겼다.

침대 양쪽 끝에 누워서 바싹 몸을 긴장한 채 누워 있자니 쉽사리 잠이 오질 않았다.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까 애써 숨죽여 있는데 몸을 뒤척이다가 무심결에 뻗은 그의 손과 내 손이 살짝 닿았다.

흠칫 놀라 손을 빼려는 순간, 그가 내 팔을 끌어당겼고 얼결에 나는 그의 품에 안기는 꼴이 되었다. 놀랍게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익숙했지만 이젠 낯선 품이었다.

내 남편이었지만 지금은 전남편이 되었다.

이 여행을 끝으로 너와는 정말 끝이다, 수없이 다짐하고 있었는데 얼굴로 그의 눈물같은 액체가 한 방울 떨어졌다.(어쩌면 침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문득 슬퍼져서 그를 토닥거렸다.

그러는 바람에 충동적으로, 전혀 예상에 없던 그와의 관계가 이루어졌다.

그건  마치 '차가운 불꽃'같았다.

서로를 미치게 증오하는 두 사람이 순간적인 충동으로 임하는, 서로를 향한 원망이자 분노같은 몸짓.


여행을 끝나는 대로 아이들에 대한 미련 및 아픈 마음도 접고, 저 멀리 유학을 가거나 제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내 결심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돌아오는 날, 전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당황한 목소리로 그가 말하는 게 들렸다.

"벌써 짐을 다 뺐어요?"


그렇다. 그간 애들을 봐주던 시어머니가 본인의 짐을 다 빼버린 것이었다.

애들 엄마를 잘 꼬셔서 이 집으로 들어오게 만들라, 는 게 그 어머니의 계획이었고, 나는 그것도 모른채 애들을 위한 부모로서의 마지막 여행이라고 미국에 다녀왔던 것이다.

마음이 이보다 더 복잡해질 수 없는 상태로 여행가방을 들고 친정집에 들어갔다.

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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