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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Oct 30. 2022

다시 떠나온 집으로 들어가다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엄마는 내 우군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내가 애 둘을 낳고 키우면서도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게 그런 거였고, 엄마가 제일 좋다며 달려드는 애들을 볼때마다 신기했던 이유였다.

니들은 엄마가 그렇게 좋니?

 네. 좋아요~

 왜?

 왜긴요. 엄마니까. 그냥 좋은 거지~

이런 식의 대화는 둘째가 열한살이 된 지금까지도 종종 이어지는데, 한번도 내 엄마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나로서는 그런 내 아이들이 부러웠다.


미국여행에서 사온 선물을 늘어놓으며 여행은 정말 끔찍했다는 것, 전남편 어머니가 짐을 뺐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엄마의 눈이 반짝였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얼른 그 집으로 들어가라는 거였다. 그 어머니가 손들고 나왔으니 네 자리를 찾으라는 게 요지였다.


"엄마, 내 얘기 안 들렸어? 나 너무 끔찍했다고."

"그래도 있을 만 하니까 있었겠지. 너 이번에  안 들어가면 다시 못 들어가."

"내가 그 집에 들어가기 싫다니까. 전남편이랑 같이 있는 거 너무 힘들다고. 괴롭다고."

"너 이번에 안 들어가면 진짜로 애들 버렸다는 소리 듣는 거야. 엄마가 되서 니 애들 버릴래?"


엄마는 딸이 쫓겨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책 읽고 글쓰는 것만 좋아하고, 집안 청소나 살림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딸이 깔끔한 사위의 성미를 맞추지 못하고 내처졌다고.

아무리 내가 이혼을 원했다고 해도 소용없었고,

도대체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고 오히려 따지고 묻는 건 어쩌면 시어머니보다도 더 냉혹했다.


그렇게 친정엄마와 말다툼을 이어가고 있을 때, 둘째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가 하원을 해야 하는데 아무도 데리러 나오지 않아 다시 유치원으로 돌아왔다는.

다급히 둘째가 다니는 유치원으로 향했더니 저쪽에서 오는 전남편의 차가 보였다.

아이를 찾으러 들어가는 전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그냥 돌아서서 나오는데 바람이 매섭게 몸을 휘감았다.


다음날 전남편에게서 어떻게 할거냐는 문자가 이어졌고, 방에서 나오면 같은 걸 묻는 엄마의 냉정한 눈과 마주쳤다.

첫째에게도 문자가 왔다. 엄마, 보고 싶어.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와 전화기를 꺼내 미국에서 찍은 애들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았다.

첫째가 웃는 볼에 보조개가 움푹 패었다.

둘째의 앞니 빠진 잇몸이 귀여웠다.


충동적으로 차를 몰아 옛집으로 갔다.

비밀번호를 조심스럽게 누르고 들어갔더니 집안이 캄캄하고 고요했다.

저녁 밥상은 치우지 않은 채 그대로였고,

밥솥에는 밥이 누룽지만 남아 굳어 있었다.

안방에 모두 모여 잠들어 있었다.

큰 애는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서.

둘째와 전남편은 침대에 웅크린 채로.

대짜로 뻗어 자는 둘째가 이불을 휘감아서 전남편은 좀 추워 보였다.

이불을 하나 더 꺼내 전남편에게 덮어주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했다.


이 곳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 내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살기 원한다.

나는 아이들 걱정에 매일같이  울었다.

내 꿈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거였지만 깨졌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엄마이고 싶다는 반쪽의 꿈까지 깨야 할까.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설거지를 마치고 쇼파에 누웠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여기 들어왔다.

이런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수없이 자신에게 묻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 갑자기 나를 껴안는 전남편에 의해 잠이 깨었다.

적과의 동거, 그 첫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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