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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Oct 30. 2022

아이들과의 부모로서 가는 마지막 여행

미국으로 가자고 나타난 전남편

해가 바뀌고 새해를 맞았다.

나는 홀로 서 있었다. 여전히. 애들에 대한 걱정을 매단 채로.

학원과 가게를 둘 다 다른 사람에게 양도해버렸다.

반년간 밤낮없이 일했지만, 정작 내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다달이 내는 세가 워낙 비쌌고, 제대로 잠도 자지 못 한채 계속 일하느라 피로가 중첩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학원 일은 재미가 없었다.

아이들을 상대하다 보면 전남편과 그 어머니 손에 맡기고 온 아이들이 생각나서 가슴이 아렸다.

면접은 매주 꾸준히 했지만, 그때마다 면접을 훼방놓으려 드는 존재가 있었다. 시이모였다.

갑자기 애들을 돌보게 된 시어머니는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던 시이모를 불러들여 같이 생활하고 있었는데, 툭하면 큰 애를 울리고 겁박하는가 하면 어린 둘째는 면접에 나가지 말라고 붙잡곤 했다.

너무 화가 나서 집에 올라가 둘째를 데리고 나오려 하는데 첫째나 데리고 가보라며 비아냥대기에

"이모님이 참견하실 일이 아닌 거 같은데요. 제 아이인데 왜 면접을 방해하시죠?"라고 말했더니

씩씩대며 답할 말이 없었는지 나가 있으라고 외쳤고, 그 모습을 저 뒤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보고 있는 전남편이 보였다.


그 날저녁 둘째를 안고 왜 안 나왔냐 물었더니 이모할머니가 가지 말라고 했다며 울었다.

엄마는 너를 너무 사랑하고 머리도 예쁘게 빗겨주고 안아주고 씻겨주고 싶다고 말하는 나를 꼭 안고 한참 울던 이 여섯살짜리는,

집에 돌아가 바닥에 발을 쾅쾅 구르며 "엄마가 우리 버린 거 아니에요~우리 엄마 안 나빠요~엄마는 우리 사랑한대요~"고함치고 울었다고 한다.

그 말을 첫째한테 전해듣고서야 내가 없는 반년동안 할머니며 이모할머니, 아빠까지 엄마가 너를 버리고 갔다고 애들을 수시로 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혼 확정을 하던 날까지 양육권을 돌려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남편은 양육비를 이전에 말했던 것보다 줄이고 집은 해줄 수 없다고 나왔다. 그렇게 맥이 풀린 채 이혼 확정이 나고,

그래도 신고를 못하고 있었는데 전남편이 구청어 신고를 해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젠 정말 끝이라고 생각해서 자포자기한 상태로 학원과 가게를 접어버린 것이었다.

그냥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새해를 맞은 일월의 어느 날, 갑자기 전남편에게 연락이 와서 만났다.

애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놀란 마음으로 나갔더니 착잡한 얼굴의 그가 있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둘째가 유치원에 다녀오더니 막 울더라.

나는 왜 엄마가 데려다 주지 않냐고. 왜 엄마랑 살지 않냐고."

유난히 밝고 사교성 좋은 둘째가 이모할머니에게 저멀리  가라고 손사레를 치고 혼자 유치원에 들어간다 했다. 고구마캐기 체험날, 학원을 쉬고 달려간 내게 한걸음에 달려와 안기던 둘째의 밝은 얼굴이 떠올라 눈앞이 흐려졌다.


"애들 배낭메고 너 만난다고 주말마다 나가는 것도 심란하고. 나도 울엄마랑 사는 거 힘들다.

어떻게 안되겠냐."

"뭘 어떻게 안돼? 그런 사람이 그렇게 접수를 시켰어?"

"너는 이미 맘이 떠났으니까. 나는 기다렸다.

돌아오기를. 근데 니가 안왔잖아."

"너한테 떠났을진 몰라도 애들한테는 아냐.

그래시 나는 접수 못했어. 너처럼."


대화는 계속 평행선이었다.

팽팽하고 싸늘한 대화가 맥주잔을 앞에 두고 계속 이어지다가 결국 한숨을 쉬며 그가 일어섰다.

"미국여행, 한달 가기로 한 거,그거 같이 가자고 하려고 왔어. 괜한 기대를 했네"

그에게 한 내 대답은 나도 예상못한 것이었다.


"가자, 미국여행."


애들에게 부모로서 주는 마지막 선물같은 여행이라고, 서글프게 생각했다.

그게 이 말도 안 되는 동거의 계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이전 07화 그는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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