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학원, 밤에는 가게를 운영하느라 고단하게 바빴던 나는 그의 한갖짐이 그저 부럽기만 했다.
가게를 하는 동안 유일하게 그에게만 외상을 허용했는데, 그건 그가 결코 밉지 않은 자이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내 친구들과 넷이 술을 마신 날, 다음날 수업을 해야 하는 내가 무리하게 친구를 태워다 주는 걸 걱정하던 그는 그럼 택시비나 넉넉히 달라는 친구의 농담에 바로 십만원을 찾아왔고,
친구는 쪼들리는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며 그를 치하했다.
피곤에 지쳐 내내 병든 닭처럼 졸던 나는 진행비 다 떨어졌을 텐데, 하고 그를 걱정했던 것도 같다.
사실 그는 그와 그 주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꽤나 유명한 감독이다. 제목만 들어도 알만한 굵직한 드라마를 제작했고, 영화 및 다수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내가 그를 만났을 때에는 중국쪽 자본을 투자받아 큰 드라마를 기획하던 중이었는데, 그때 마침 내 가게 옆 건물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중이라 가게에 자주 들렀다.
스스로를 감독이라 소개하는 터라 나도 예전에 다큐쪽에서 일을 했고 드라마도 쓰려고 교육받았다 말했더니 그는 꽤나 반가워 했다.
그렇게 친해져서 단골이 된 그는 일주일에 세번쯤 가게에 들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일하는 배우들과 기획사, 영화 관계자 들도 자주 데리고 오곤 했다.
아이의 전화를 받고 눈물이 그렁한 나를 보다 못해 에이~하며 눈물을 쓱 닦아주더니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며 끌고 가기도 했고, 대본이 잘 써지지 않는다며 갖고 오기도 했다. 때로는 배경음악으로 넣을 건데 어떠냐며 노래들을 들려주며 감상을 묻고 배우들과 즉흥연기를 시키기도 하는 둥,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그를 상대하다가 잠시 슬픔이 잊히기도 했다.
그가 건네는 대본을 보고 이리저리 고쳐 주거나 아이디어를 내면서 잊고 지냈던 작가로서의 삶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지.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내 꿈은 감동을 주는 작품을 쓰는 거였어, 하고 스스로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감독이었다.
자신을 매료시키는 작품이 나타나면 설레어 잠을 못 이루는 사람.
자신으로 인해 피해가 갈까봐 주사마저 곱게 하는 여린 사람.
촬영이 미뤄져서 기다리던 스텝들이나 배우들이 힘들어할까봐 고민하는 사람.
그 선배 연기는 힘이 있어.
걔 연기에는 진심이 있어.
칭찬에 후하고 비판은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사람.
그는 내가 가게를 운영하는 몇달간, 가장 친한 이웃이자 친구였고, 가게를 닫고 내가 미국으로 떠나버린 후에도 내게 손을 내밀었다.
글을 써.
내 글의 활자들이 그의 연출하에 어떻게 살아 움직일지 궁금하게 만들었던 그 겨울, 코끝이 시렵게 추웠지만 마음이 시리지 않았던 이유가 아니었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