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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Oct 30. 2022

그는 감독이다.

연극과 영화, 드라마의 세계로 발을 들이다

그를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나보다 세살 많으나 한번도 오빠라 불러본 적 없다.

그가 쓰는 영어이름은 입에 붙질 않는다.

한국 이름은 더욱 그렇다.

처음 본 순간에 그는 자신을 감독이라고 했고, 첫카톡도 ㅇㅇㅇ감독입네닷,이었다.


취하지 않은 모습의 그를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처음엔 사기꾼인가 했고,

그 다음엔 한량이구나 했다.

낮엔 학원, 밤에는 가게를 운영하느라 고단하게 바빴던 나는 그의 한갖짐이 그저 부럽기만 했다.

가게를 하는 동안 유일하게 그에게만 외상을 허용했는데, 그건 그가 결코 밉지 않은 자이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내 친구들과 넷이 술을 마신 날, 다음날 수업을 해야 하는 내가 무리하게 친구를 태워다 주는 걸 걱정하던 그는 그럼 택시비나 넉넉히 달라는 친구의 농담에 바로 십만원을 찾아왔고,

친구는 쪼들리는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며 그를 치하했다.

피곤에 지쳐 내내 병든 닭처럼 졸던 나는 진행비 다 떨어졌을 텐데, 하고 그를 걱정했던 것도 같다.


사실 그는 그와 그 주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꽤나 유명한 감독이다. 제목만 들어도 알만한 굵직한 드라마를 제작했고, 영화 및 다수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내가 그를 만났을 때에는 중국쪽 자본을 투자받아 큰 드라마를 기획하던 중이었는데, 그때 마침 내 가게 옆 건물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중이라 가게에 자주 들렀다.


스스로를 감독이라 소개하는 터라 나도 예전에 다큐쪽에서 일을 했고 드라마도 쓰려고 교육받았다 말했더니 그는 꽤나 반가워 했다.

그렇게 친해져서 단골이 된 그는 일주일에 세번쯤 가게에 들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일하는 배우들과 기획사, 영화 관계자 들도 자주 데리고 오곤 했다.


아이의 전화를 받고 눈물이 그렁한 나를 보다 못해 에이~하며 눈물을 쓱 닦아주더니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며 끌고 가기도 했고, 대본이 잘 써지지 않는다며 갖고 오기도 했다. 때로는 배경음악으로 넣을 건데 어떠냐며 노래들을 들려주며 감상을 묻고 배우들과 즉흥연기를 시키기도 하는 둥,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그를 상대하다가 잠시 슬픔이 잊히기도 했다.

그가 건네는 대본을 보고 이리저리 고쳐 주거나 아이디어를 내면서 잊고 지냈던 작가로서의 삶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지.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내 꿈은 감동을 주는 작품을 쓰는 거였어, 하고 스스로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감독이었다.

자신을 매료시키는 작품이 나타나면 설레어 잠을 못 이루는 사람.

자신으로 인해 피해가 갈까봐 주사마저 곱게 하는 여린 사람.

촬영이 미뤄져서 기다리던 스텝들이나 배우들이 힘들어할까봐 고민하는 사람.

그 선배 연기는 힘이 있어.

걔 연기에는 진심이 있어.

칭찬에 후하고 비판은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사람.


그는 내가 가게를 운영하는 몇달간, 가장 친한 이웃이자 친구였고, 가게를 닫고 내가 미국으로 떠나버린 후에도 내게 손을 내밀었다.

글을 써.


내 글의 활자들이 그의 연출하에 어떻게 살아 움직일지 궁금하게 만들었던 그 겨울, 코끝이 시렵게 추웠지만 마음이 시리지 않았던 이유가 아니었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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