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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Oct 30. 2022

패잔병으로 홀로 선다는 것은

새장밖으로 걸어나간 서른아홉 여자

이혼서류를 내고 작은 여행가방 하나에 노트북 하나만 챙겨서 집을 나오던 날 햇살이 눈부셨다.

늦은 오월의 햇살이 내리쬐는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숨을 골랐다. 공기가 상쾌했다.

무려 반년이었다. 남편과 이혼을 이야기하며 전쟁같은 날을 보낸 게.

그의 폭음과 가구들마저 숨을 죽이고 있는 거 같은 집안 공기와 안방침대에 누워 흘리는 눈물이 가득했던 날들.


마지막에 가서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과 친권까지 주기로 하고 결정된 이혼이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되었다.

여섯평 좀 넘는 원룸이 넓게 보였고, 책 몇권과 옷들을 갖다 놓아도 자리가 남았다.

여기가 이제 내 공간이야, 다짐하듯 스스로에게 말하고 씩씩하게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뭘 좀 해 먹을까 하고 카트를 끌며 장을 보는데 온통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만 눈에 들어왔다.

이건 첫째가 좋아하는 치킨너겟, 이건 둘째가 좋아하는 초코빵, 저건 둘 다 좋아하는 고등어, 이런 식으로 하나 하나 되뇌이다가 나도 모르게 마트 바닥에 주저 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게 첫번째 날의 기억이다.


집에서 나오기 전 잠시 있을 곳을 구하는데 마침 단기로 방을 내놓는 분이 하시는 일이 분양일이었다. 그래서 졸지에 오피스텔 분양일을 배웠다. 물티슈에 명함을 붙이고 길에 나가 전단지를 돌리고 어떻게든 손님을 잡는 일이었는데, 쑥스러움은 둘째 치고 뭔가 제대로 된 일 같지가 않았다.


결혼하기 전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이 있으니 학원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교습소 하나를 인수받았다. 프랜차이즈라 내가 신경쓸 게 많지 않을 거 같았는데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이주간 연수도 받아야 했고 인테리어 및 컴퓨터나 프린터 같은 물품도 새로 구입해야 했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당시 내가 가진 돈은 많지 않았고, 어서 자리잡아 애들을 데려와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어서 낮에 학원일을 하고  밤에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후배가 운영하던 칵테일바를 인수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해왔다. 술이라곤 한잔만 들어가도 빨개지는 체질인데다 좋아하지도 않아서 그런 걸 내가 할 수 있을까 손사레를 쳤다.

그래도 누나는 친절하고 붙임성 좋은 성격이라 잘 할 거라며 직원들을 쓰는 오너가 되는 거니 걱정할 게 없다는 말에 덜컥 도장을 찍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된 투잡 생활이었다.

낮에는 수업하고 밤에는 가게로 나오는 생활.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네가 그걸 어떻게 해?라고 걱정과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들의 걱정은 맞았다.

마침 두 일터의 거리가 꽤나 멀어서 오가는 데만 두시간이 넘게 걸렸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일만 하는 생활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낮밤으로 일에 빠지는 게 나았다.

토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맛있는 걸 먹이고 놀다가 재우곤 했는데, 자는 애들의 손이며 발을 만져보다가 울고, 가기 싫어 하는 아이들을 들여보내며 울고, 돌아와서 혼자 방에 앉아 또 우는 그 주말이 정말 괴로웠기 때문이다.

일하는 중에 큰 아이가 아직 학교에 안 왔다는 담임의 전화를 받거나, 전화기 너머로 아이의 우는 목소리가 들릴 때면 심장이 툭 떨어져 쪼개지는 아픔을 느껴야 했다.


"엄마, 엄마랑 살면 안돼? 엄마랑 살고 싶어.

집이 아무리 크고 넓으면 뭐해. 마음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데. 방이 좁아도 좋아. 엄마랑 살래."

어느 날 저녁,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큰 애가 전화를 걸어서 한 말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눈물이 늘 고여있는 거 같은 얼굴로, 왜 그렇게 죽어라고 일하냐 묻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그 곳에서 만난 나의 첫 친구였다.

그로 인해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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