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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Oct 30. 2022

친구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부부로, 부부에서 적으로

이혼과정은 전쟁터였다.

위장이혼을 제안한 남편이 정말 원했던 것은 내가 고집을 꺽고 자기에게나 시어른들에게 좀더 고분고분하게 구는 것이었다.

그가 원하는 건 돈을 벌어오는 가장으로서 인정받고 떠받들여지는 것이지, 잘못한 것도 없는 자신이 이혼남이 되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혼을 요구하는 내 기세가 심상치 않았고, 집안의 모든 예적금이 내 명의로 되어 있다는 걸 깨달은 남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월급카드를 정지시키는 것이었다.


이혼을 이야기했을 뿐 아직 진행된 것은 아니어서 별 생각없이 월급을 찾으러 갔던 나는 '정지된 카드입니다'라는 문장이 뜨자 충격 속에 그를 만나러 갔다.

어떻게 말 한마디 없이 그럴 수 있냐는 내 앞에서 이혼을 이야기한 이후, 처음으로 환히 웃는 그가 낯설었다.

앞으로는 매달 찾아서 생활비를 줄 테니 내 말을 잘 들어라, 가 요지였을까.


그 순간 실감이 났다.

아, 이제 저 사람과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었구나.


아이를 낳고 품에서 키우는 동안 경력이 단절되었던 나는 중간 중간 아이가 유치원에 갈때 일을 시도했다가 시댁의 거센 반대로 오래 못하고 그만 둔 적이 많았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이 있는데 왜 굳이 일을 하냐는 거였다. 네가 할 일은 남편 뒷바라지 잘하고 애들 잘 키우고 시댁  경조사 잘 챙기는 거야, 라는 말.

그때 더 심한 말을 듣더라도 필사적으로 싸워서 일을 계속 했어야 했다. 뒤늦은 후회는 힘이 없었다.


일자리를 찾아 면접을 보는 동안, 내가 얼마나 나이가 들었는지를 실감했다.

남편이 승진을 거듭하며 자리를 굳히는 동안

나는 남편덕에 편히 산 팔자좋은 여편네,로 산 걸로 여겨지고 있었다.


시댁쪽 친척의 집에 저렴하게 전세를 사는 동안 우리는 집을 사지 못했고, 재산은 열심히 모은 현금이 다였는데. 남편은 본인의 아버지가 결혼할때 해준 전세금은 자기 것이라며 한 푼도 줄 수 없다 했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이혼을 하는 것이니 위로금조로 남는 재산도 본인이 더 많이 가져야한다 말했다.


애들 둘에 대한 양육은 직장 다니는 자기가 할 수 없으니 네가 하되, 양육비는 적정선에서 줄 것이고, 친권은 자기가 갖겠다고 했다.

몇번의 면접 끝에 사회에 나갈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한 나는 남편이 말하는 대로 재산을 넘겼다.

그렇게 이혼을 해줄 것 같다가도 어느 날엔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나 이제 죽을 거야. 나만 사라지면 편하겠지.'라고 문자를 보내놓고 전화를 꺼놔 식겁을 하게 만들거나, 그의 괴로움이 날뛰면서 나의 불안감도 깊어가는 겨울이었다.


스무살 봄에 친구로 만났다.

스무살 가을에 연인이 되었다가 겨울에 헤어지고

스물 넷 봄에 다시 연인이 되었다.

스물 여덟 봄이 움트기 시작할때 부부가 되었다.

열 한번의 봄 꽃을 함께 보다가 더는 계속할 수 없다는 겨울을 맞았다.

서른 여덟 겨울, 우리는 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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