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던 대학생에서 빅테크 기업을 지나, 컨설턴트가 되기까지
‘뭐가 그리 급해?’ 나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그렇다.
교환학생도 가고 워킹홀리데이도 가면서 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완전한 자유로움을 즐기는 친구들을 곁에 두고, 빠르게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 빠르게 성장하고 싶었다.
호텔리어가 되고 싶어 호텔경영학과에 진학했지만, 꿈도 목표도 방향성을 잃어가던 대학교 3학년, 우연히 한 학회의 창립멤버로 들어가게 되었다. 학회에서는 경영통계, 데이터, 컨설팅 방법론 등을 주로 공부했고, 문과식 이론 외우기에만 빠삭했던 내가 ‘빅데이터’에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되었다. 학회 초반에는 너무 오랜만에 접하는 수학기호들과 아무것도 모르겠는 통계문제들에 겁에 질려, 탈퇴하려 했었다. ‘공부’를 진심으로 즐기는 학교 선배들의 모습을 보다보니, 아무래도 이 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러던 중 얼떨결에 부학회장을 맡게 되었고, 알게모르게 생긴 얄팍한 책임감이 문제 하나라도 더 생각하게 만들었고, 코드 하나라도 더 짜게 만들었다. 그렇게 점차 데이터와 통계에 익숙해져갔고, 학회 담당 교수님의 간택을 받아 연구실에서 ‘디지털 전략 컨설팅’을 경험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신세계였다. 수십장의 PPT장표를 쓰는 것도, 문장 하나에 열 마디 이상의 가치가 담기는 것도, 밤을 새서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모두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 같았다. 그 날, 나는 컨설턴트라는 꿈이 생겼다.
컨설팅은 으레 학벌, 어학 등 흔히 ‘스펙’좋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당장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몰랐기 때문에, 대학원 진학으로 학벌을 더 높일 수도 없었고, 원어민처럼 영어를 할 자신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에서 빠른 시간 안에 최대한으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대기업에서 선임들이 시키는 업무를 받아 차근차근 배워나갈 여유가 없었기에, ‘내가 잘 구를 수 있는 곳’을 위주로 찾게 되었다.
아주 작은 스타트업부터 ‘네카라쿠배당토’라인까지, 지원할 수 있는 공고는 모조리 지원했고, 하루에도 몇번씩 불합격 메일이 날라왔다. 마음은 더 조급해졌고, ‘성장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분야까지 일단 지원하고 봤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잔뜩 메마른 마음의 여유는 스팸문자 진동에도 휴대폰을 내던지게 만들었다. 이상과 현실은 역시 다르다는 것을 뼈에 새길 때쯤, 무서운 성장성을 보이고 있던 모바일 금융앱을 만드는 기업에서 모처럼 대규모 채용을 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고, 나는 또 아무생각 없이 지원했다.
하루만에 서류합격 연락을 받고, 전화인터뷰를 진행했다. 모든 채용 절차가 ‘입사하고싶다!’라는 간절함을 느끼기도 전에 마무리되었고, 그렇게 나는 원하던 빅테크 기업에서 직장인으로서의 첫 발걸음을 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