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살이었었다. 아빠 어깨에 실려서 캄캄한 밤에 신작로를 달렸었다. 우리는 조금 전에 불이 난 집담장을 넘었다. 아빠의 어깨에서 내려지고 아빠와 나는 동네 슈퍼의 닫힌 문 앞에 맨발로 서있었다. 다시 어깨위로 나는 매졌다. 잰걸음은 달리는듯도 했고 걷는듯도 했다. 아빠의 지인 집에 도착했을 때 아빠와 내가 그집 방바닥에 까만 발자국을 남겼다. 그 노란 장판에 큰발자국과 작은 발자국이 까맣게 찍혔었다.
그날 우리집은 불이 났었다. 겨울이었다. 다급했던 우리는 내복바람에 맨발이었다.
그러나 어린 나는 추웠다보다 불이났다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나는게 있다.
자정이 지나 셔터가 닫힌 동네슈퍼 앞에서 까만 밤거리를 잠이 다깨지않은 눈으로 바라보고있었던 그 순간이었다.
어렸지만 집에 불이났단 상황은 정확히 몰랐지만 크는 내내 그날 밤 아빠 손을 잡고 그 슈퍼앞에 서서 오돌오돌 떨던 그 순간이 뚜렷하게 기억되고 있었다.
52년 후
밤 1시가 다되는 시각에 아빠가 계시는 요양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덜컥 심장이 떨어지는것 같았다. 다행히 복통을 호소한다는 전화였다.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가서 씨티를 찍었다. 별다른 소견이 발견되지않고 복통도 진정된 상태라 요양병원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잘걷지도 못하는 몸무게가 30키로도 안되는 아빠를 조심조심 차에 태우고 요양병원으로 돌아갔다. 새벽3시쯤이었다.
요양병원의 커다란 유리 현관문 앞에 휘청거리는 아빠 손을 잡고 섰다.
인기척이 없었다. 호출벨을 눌러보았다.
사람이 나오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기다리는 사이 아빠는 치매로 상황파악이 안되면서도 사람이 나오지않는 그유리문 앞에서.
아무도 없는갑다...라고 자동반사처럼 말씀하셨다.
그 문 앞에 서서 누군가 당직직원이 나오길 기다리는 그 몇분사이...
52년전 그슈퍼앞에 맨발로 서있던 그날 밤이 떠올랐다.
불이나던 날 밤, 아빠는 내 손을 잡고
지금 내가 아빠손을 잡으며 느꼈을 이 기분을 느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