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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게구름 Aug 30. 2018

우린 왜 미술을 포기했을까?

어렸을 때로 돌아가 보자. 아니면 자녀나 조카를 봐도 된다. 두세 살쯤 되면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연필이나 크레파스를 들어 종이에 점을 찍고 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재미가 들린 아이는 부모가 아끼는 책이나 침실의 벽뿐만 아니라 아무 곳에나 낙서를 해 댄다. 낙서의 단계를 지나면 둥근 모양을 그려 놓고 거기다 두 개의 모양을 더해서 눈을 만들고, 그것을 가리키면서 '엄마', '아빠', '우리집 개' 등 생각나는 대로 말한다.


점차 입도 나타나고 선을 뻗어 팔과 다리도 표현한다. 유치원 다닐 때쯤이면 비록 얼굴이 몸통보다 크지만 제법 사람의 형태를 갖춘다. 그리고 이제는 한 명이 아닌 가족이 나타나고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평소에 언니가 괴롭혔다면 가족 중 가장 크고 이빨도 뾰족뾰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식으로 말이다. 또한, 주변에 있는 집, 나무, 꽃 등이 간략한 형태로 상징화되어 나타난다. 아이들이 풍경화를 그릴 때 꼭 집을 그린다. 집에는 문이 한가운데 있고 손잡이가 있다. 손잡이가 있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과정은 모든 어린이가 밟아 간다. 그것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이 본 것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형상으로 만들어 내고, 한 장의 종이 위에 여러 가지 상징들을 자신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도록 구성한다. 결국 이때까지는 모든 사람이 화가인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언어 중심의 교육을 받으면서 어렸을 때의 회화적 역량은 점차 사라져 간다. 사물을 인지하기 위해 더 이상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없으며,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있어 회화적 수단보다는 언어적 체계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10살 정도가 되면 많은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더 이상 즐거워하지 않는다. 분명히 내 머리 속에 있는 정육면체는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보이는 것은 이상한 형태의 사각형이다. 진짜처럼 그리고 싶은데 언어적 지식이나 개념적 지식의 방해 때문에 그림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흥미를 잃고 소질이 없다는 생각에 미술을 포기하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고학년이 되면 수채화를 시작했다. 나는 그 시점에 왜 수채화를 가르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수채화는 매력적인 재료이기는 한데 미술을 처음 접하는 초등학생이 다루기에는 정말 힘든 재료이다. 한번 잘 못 칠하면 수정이 힘들고 물을 많이 쓰면 종이가 일어나거나 쭈글쭈글해지기 일수였다. 지금은 아크릴을 사용하고 있는데 언제든지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맘껏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정말 좋다. 암튼 당시는 형태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수채화까지 하려니 정말 절망적이었다.


중고등학교로 넘어오면 입시 미술의 세계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미대를 목표로 계속 미술을 하느냐 포기하느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때 사생대회에 나가 상장도 많이 받았었는데 부모의 반대, 가정 형편 등 여려가지 사연으로 미술을 포기했다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일주일에 한 번 취미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이 있었더라면, 성인이 돼서도 계속 미술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지 않았을까?


우리 모두는 화가로 태어났지만 잘못된 교육과 환경 때문에 미술을 포기했다. 성인이 되어 다시 미술을 시작하는 데 있어 당연히 과거의 방식을 답습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림 그리는 기술을 배우기 이전인,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아무런 선입관과 편견 없이 진실된 눈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행착오를 통해 한 걸음씩 나가야 한다. 여기에 세상을 살아오면서 얻은 경륜이 더 해진다면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글과 함께 지난 4년간의 작품 중 선별하여 함께 소개합니다. 올여름 같이 뜨거웠던 작년 어느 날 그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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