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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Jan 26. 2016

행복이란 무엇인가

합리성의 시대에서 행복을 찾다

베버가 말했듯 우리는 합리성의 시대에 살고있다.

그 합리성은 이제 계산과 계량이라는 칼과 방패를 가지고 더욱 극악무도하게 우리를 덮고있다.


프랑스 바깔로레아의 문제 중 이런 문제가 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가?


근대 이전에 행복이란 것은 공공의 장 안에서의 차원으로 이해되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주관적인 것으로 변모하였다.


과거에는 행복에는 고통이라는 기회비용이 따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제는 행복이 고통받지 않고 많이 얻는 것이 되어버렸다.


합리성에 잠식된 행복의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어려움과 난감을 피하고 그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도록,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에서 조차 도망가는 존재로 만들었다.


프랑스의 폭탄테러에 대한 프랑스 시민사회의 대응을 바라보며, 우리는 과연 우리 다음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주고자 하는가에 대해 고민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냉정하고 솔직히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은게 '돈'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니 자유니 가치니 하는 것들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비슷한 수준을 넘어서 훨씬 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존 롤즈는 "나 자신이 나 자신을 위할 때 남을 위하게 된다"라고 이야기 한다. 어처구니없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그의 이론은 합리성에 기반해있다.


내가 항상 자유로운 상태에 있기 원한다면 남이 자유가 없는 상태에 있기를 원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부자유의 상태가 존재하는 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언제 내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롤즈의 무지의 베일 개념이다.


합리성을 갖춘 합리적인 사람은 그 상황에 자신이 떨어지지 않도록 방비책을 서울 것이라는 것이다. 자유가 모두에게 가용한 상태로 만들어야 가장 안전한 상태가 된다.


유사한 맥락으로 칸트는 인간 이성 최고의 능력을 '남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이성이 단지 도구적 이성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하버마스는 칸트의 생각을 이어받으며 "칸트가 한 이야기를 봐(정언명령) 우리 이성은 도덕적이야 그래서 희망이 있어"라고 이야기 한다. 제대로 이성이 작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도덕'이라는 단어와 동치시킬 수 있다.


최고의 합리성은 이것이라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에게 행복은 무엇일까? 소크라테스가 말한 진리를 아는 것,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적 인간이 되는 것... 이런 것 말고 진짜 무엇에 행복한가?


행복의 개념이 '개인'의 차원에 머무를 수 있는가? 행복의 개념은 필연적으로 '타자'가 필요하지 않은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나의 이웃들(이웃의 범위는 무한정 확장될 수 있다)과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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