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화(Globalization): 끝나지 않은 바벨탑 이야기
사람들에게는 본능적으로 가지는 열망들이 있다. '성취감'이나, '보람' 혹은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열망', '아름다운 것에 대한 열망'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중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강한 열망은 바로 '통합에 대한 열망(Eager to Unity)'인 것 같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의견이 '통합'될 때 큰 쾌감을 느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죽이 잘 맞아 이야기가 잘 통할 때 그 사람이 좋아지는 것도 '통합에 대한 열망'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하려던 말을 상대방이 해 주었을 때 손바닥을 서로 맞대어 "짝"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 역시 '통합'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는 한 장면일 것이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 간의 자연스러운 통합과 더불어, '설득'을 통한 통합을 위해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말한다. 그리고 주장하며 설득한다. '통합'을 위해서.
사람과 사람 간의 '통합'의 개념에서 이를 조금 더 확장해보면, '가족'안에서의 통합이나 '공동체'안에서의 통합의 측면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는 더 나아가 '사회' 혹은 '국가'의 통합으로 커질 수 있으며, 탈 국가적 통합으로 귀결된다. 바로 '지구화(Globalization)'다. 다시 말해, 인간의 기본적인 '통합에 대한 열망'은 '지구화'라는 결과로 다가오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와 국가 간의 통합, 그리고 그 통합에 따른 경계의 해체화는 지구화가 함께 가져오는 것들이다.
지구화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한국에 살면서 미국에서 만들어진 물건을 구입하는 것과 같은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세계를 여행하는 것 까지 우리의 삶은 지구화되었다. 그 어떤 나라에 가서도 똑같은 맛의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 같은 맛의 햄버거를 맛볼 수 있는 것은 지구화가 주는 선물이다. 이런 지구화와 함께 발전하는 것은 바로 '국제법'이다. '법'이 없으면 질서는 없어지게 되기에 '국제법'이 없이 지구화는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지구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국제법'에 대한 필요성이 계속해서 늘어나게 되고 국제법은 확장되고 발전되게 된다. 지구화와 국제법은 사실 상호 보완적인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정치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지구화는 참 좋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더 발전된 것으로 보이고,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우리가 현재 직면한 '지구화'를 바라보며 크리스찬으로서 '국제법'과 '지구화'를 어떻게 볼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성경에는 수많은 유명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중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바벨탑'사건이다. 성경에 따르면, 원래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가 하나였고, 말 역시도 하나였다. 사람들은 서로 말했다. "성읍과 탑을 건설해서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사람들은 열심히 성읍과 탑을 건설했지만, 그것을 좋게 보시지 않은 하나님은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다양한 언어를 만들어) 사람들을 흩어져 살게 하셨다. 창세기 11장 전반부에 쓰여 있는 바벨탑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지구화는 사실 창세기의 우리 선조들이 바벨탑을 쌓았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통합'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는 것일지 모르며, 그 열망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은 '국제법'일지 모르겠다. 역사를 보았을 때, 사람들은 흩어져 있다가 '왕'을 중심으로 '왕국'을 만들었다. 그 이후에는 '왕국'의 개념에서 '제국'의 개념으로 더 큰 통합을 향해 나아갔다. 이제 다시 '제국'의 개념은 '지구화'와 '국제법'이라는 이름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통합의 측면에서 우리는 아직도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을 계속해서 쌓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Kingdom of God(하나님 나라)'를 외치는 기독교인에게, 지구화와 국제법은 도전이자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법학자에게 이는 설레는 일이 될 수 있다. 어떠한 국제법에 영향을 받는 지구화를 이루어내느냐에 따라 하나님 나라와 닮은 더 좋은 세상에 가까워지는지, 혹은 더 멀어질 지가 나타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