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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Mar 13. 2017

바늘 도둑이면, 소 도둑일까?

미국 증거법이 '성격 증거'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이유

"엄마! 오빠가 나 때렸어"

"아 내가 안 때렸어요!"

"너 전에도 동생 때린 적 있잖아! 또 때렸구나!
동생 때리지 말랬지! 저기 가서 손들고 서있어!"

('그럼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면, 이 글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그렇다. 사실 오빠는 동생을 때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성격상의 특성들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개인의 성격상 특성으로부터 그가 취할 행동을 유추, 추론하는 것은 굉장히 합리적이다. 그러나, 미국 증거법은 일반적으로 법정에 '성격 증거(Character Evidence)'가 들어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물론 예외를 가지고 있지만(미국 증거법은 예외조항을 외우는 것이 공부의 대부분이다), 미국 증거법은 피고나 피해자, 참고인 혹은 증인의 성격에 대한 증거를 그 혹은 그녀가 일정 상황에서 그 성격에 근거해 행동하였을 것이라는 논증의 설립 자체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A는 성격이 이렇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했었을 것이다!'라는 방식의 성향 추론(Propensity Inference)은 금지된다. 미국 연방 증거법 제405조(=FRE405(a))에 따르면 성격 증거는 일반적으로 평판(Reputation), 개인적 의견(Opinion), 체포 사실(Arrest history), 전과(Conviction Record) 등을 포함한다.


Federal Rules of Evidence(FRE=미국 연방 증거법)
FRE404(a): Evidence of a person's Character or character trait is not admissible to prove that on a particular occasion the person acted in accordance with the character or trait.


우리는 흔히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혹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을 자주 쓰며 어떠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추후에도 그 성향대로 행동한다는 것을 잠재적으로 믿고 있다.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실제로 그렇기도 한 거 같다.) 그러나, 이것이 논리적 인과성을 가져다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인과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성향 추론은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99번 물건을 훔쳤던 사람이더라도, 이번에는 훔치지 않았을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99번 훔쳤다는 것을 토대로 100번째 절도를 선고한다면 이 얼마나 부정의한 결과인가?


"판사님(Your honor)! 피고는 과거 바늘을 훔친 것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소 절도 사건에서도 절도를 저질렀을 것입니다!"

(이젠 조금은 불공정하게 느껴지시는가?)


성향 추론이 금지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바로 '불공정한 편견(Unfair Prejudice)'의 위험성 때문이다. 피고는 언제나 불공정한 편견 없이 사실과 가장 가까운 상태 그 자체 즉, 공정한 상황에서 재판받아야 하는데 피고의 과거 행적이나 성격에 관한 것은 피고가 실제 해당 시간, 해당 장소에서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입증하기보다는 배심원(Jury)으로 하여금 '어머 저 사람 원래 저런 사람인가 봐', '맞아 맞아 한번 했으니까 또 했겠지'와 같은 편견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성향 추론(Propensity Inference)이 허용되는 예외조항도 당연히 존재한다. 형사 사건에서, 피고는 자신이 해당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신의 성격에 대한 증거를 제출할 수 있다. 피고가 먼저 성격 증거를 제출하면, 이를 '문을 열었다(Open the door)'고 판단하여 검사 측 역시 피고의 성격에 대한 증거를 제출해 피고를 공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형사사건에서 피고는 피해자의 성격 증거를 제출해 오히려 피해자가 먼저 자신을 공격했음을 주장하여 정당방위와 같은 상황을 입증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검사 측은 피해자 또는 피고의 성격 증거를 제출해 이를 반박할 수 있게 된다.


(훨씬 더 많은 예외들이 있지만, 이를 다 쓰다 보면 100쪽이 넘어갈 테니 아주 간략하게만 서술하고 넘어가겠다)


사실 주요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성범죄' 재판에서의 증거법 적용 부분이다. 미국 연방 증거법은 성범죄 재판에서 피고인의 성적 성향을 증거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는 앞서 말한 일반적인 미국 증거법의 해석과 상반되는 해석이다. 이는 '한 번 성 범죄자면, 언제나 성 범죄자일 수 있다'라는 강력한 전제가 미국인들의 사고에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미국이 얼마나 성범죄에 대해서 일절의 자비가 없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글에서 더 이야기해보겠다.


결론적으로, 미국법에 따르면 '논리'를 가지고 유죄 여부를 따지는 재판에서 '과거의 행적'이나 '폭력적 성격' 혹은 '나쁜 평판'과 같은 성격 증거는 '일반적으로' 사용될 수 없다. 하지만, 수많은 예외가 존재하기 때문에 미국 증거법 교과서는 매우 두껍다.


독일법을 필두로 한 대륙법계에 속해있는 우리 형사소송법의 입장에서 영미법계인 미국 증거법은 참 생소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입장을 대표하듯이 대륙법계 형사소송법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최근 증거 규정 일부에 영미법계 증거법 이론과 제도가 도입되어 실무상의 여러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이완규 교수는 자신의 역서(아서 베스트, 『미국 증거법』) 서문에서 형사소송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증거법'으로 이야기한다. 형사소송은 범죄자를 확인하여 처벌하기 위한 일련의 체계이며, 그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를 입증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번 학기 미국 증거법을 배우며 추후 미래에 한국 형사소송법의 실무적 충돌을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춘 법조인으로 자라나는 것을 꿈꾸며, 재미있는 내용들이 나올 때마다 글을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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