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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Jan 30. 2016

정의란 무엇인가?

헌법재판소의 아버지 한스 켈젠의 물음

벌써 꽤나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의 기억 속에 잊힌 사건이 있다. 재작년 연말에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2013 헌다 1 결정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다. 이전에 한 번도 없었던 종류의 쟁점이었고, 쟁점 또한 굉장히 중요했다.


단 한 번의 소리 "탕 탕 탕"을 시작으로 국민이 선거를 통해서 뽑은 '정당'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판결이 가져온 영향은 많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헌법재판소'에 대해서 궁금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은 헌법재판소가, 판결 한 번으로 사회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법학을 공부하는 나에게 사람들이 부쩍 "헌법재판소가 뭐야?"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내게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헌법재판소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이야기하고 판례 몇 가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헌법재판소가 왜 만들어졌고 어떠한 법철학적 근거 위에 세워졌는지 그 형이상학적 내용은 무엇인지와 같은 깊은 이야기를 하기에는 나의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아버지이자, 헌법재판소를 기획하고 현실화에 크게 공헌했던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한스 켈젠은 학부시절부터 익히 많이 들어왔던 이름이기에 참으로 친숙했다. 그러나 그의 저서를 읽어본 기억은 없다. 법철학이나 법사회학 과제를 하면서 레퍼런스로 넣기 위해 부분 부분 찾아본 기억뿐이 없다.


한스 켈젠의 저서를 찾아보니 내 눈을 확 사로잡는 제목이 있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헌법재판소를 기획한 헌법재판소의 아버지 한스 켈젠의 정의에 대한 생각이 어떨지 궁금해 참을 수 없었고, 책을 구입하자마자 순식간에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책은 사실 굉장히 얇다. 그 이유는 한스 켈젠이 쓴 논문을 김선복 교수님께서 번역하면서 이를 도서로 출간했기 때문이다. 김선복 교수님은 스위스 유학 도중 한스 켈젠을 접하고 그의 논문들 중 의미 있는 논문들을 번역하기로 다짐하셨다고 한다. 이 논문은 바로 그 다짐의 첫 결과물이다.


굉장히 얇은 이 책은 내용도 흥미롭고 번역도 매끄럽게 되어 있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나는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 태어나서 이 세계에 왔다"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시작으로 한스 켈젠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진행된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이 짧은 논문 안에 그동안 '정의에 대한 정의'를 위한 정의 역사가 통째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행복을 통해 본 정의, 벤담 공리주의, 자유를 통한 정의가치 서열의 문제생명의 문제개인의 문제,플라톤유물론자유주의사회주의개인과 집단책임민주주의이성적 분석형이상학종교적 해석이성적 해석플라톤, 예수 그리스도근대의 법 논리, 함무라비 법전법치주의공산주의칸트아리스토텔레스자연법 이론, 절대주의 상대주의까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거의 대다수의 중요 핵심을 모두 담고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한스 켈젠은 이 모두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이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는 부분이 없다. 모든 것을 설명하고 그 설명한 것을 비판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언젠가는 한스 켈젠의 정의의 정의'가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책을 읽지만, 마지막 장을 넘기면 그때 알게 된다. '아 이 책에는 한스 켈젠의 정의의 정의'가 없구나


그러나 그러한 마무리는 사실 이 책의 값어치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미쉘 푸코가  이야기했듯, 우리는 흔히 '지식권력' 앞에서 작아지기 마련이다.


플라톤이 어떤 이야기를 했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이야기했다는 것을 들으면 왠지 그 이야기가 다 맞는 것 같고, 진리로 느껴진다. '지식권력'의 영향이다.


그러나 한스 켈젠은 그 모든 것을 비판한다. 이것은 이러한 이유로 말이  안 되고, 이것은 이래서  잘못되었고... 등등 모든 것을  비판한 후에 자신의 생각이 들어갈 공간을 채우지 않는다.


그리고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입니까?"


좋은 책은 '생각'과 '사유'를 하게 만든다. 모든 지식권력이 말하는 정의의 정의를 부정한 후 내가 생각하는 상대적 정의에 대해서 정의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대가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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