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제59조, 63조에 대한 고찰
우리 모두의 삶은
누군가의 '노동'으로 지탱되고 있다
약속에 늦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집 앞 지하철 역으로 뛰어가 계단을 급하게 내려갔다. '지금 들어온 열차를 타야 한다.' 계단을 절반쯤 내려갔을 무렵 소리가 들린다. "열차 문 닫습니다." 지하철을 놓쳤다. 숨을 고르기 위해 옆에 보이는 벤치에 앉으려고 걷다가 한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공개채용'이라는 단어가 크게 적힌 포스터였다. '지하철 역무원을 채용하나?'
당연히 모집공고일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근로기준법 제59조의 폐지를 위한 선전 포스터였다.
'신선하다', '와 아이디어 끝내준다'가 처음 든 생각이었다. 물론 서울 시내에 나처럼 대학교 벽에 있는 포스터를 매일 열심히 보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정독하면 절대 근로기준법 제59조를 잊어버릴 수 없는 디자인과 내용이었다.
대한민국을 '과로사회'로 표현한 점, '시민 안전이 위협되는 사회'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근로 앞에 형용사를 붙여 '무제한 근로'로 표현한 것도 눈에 띄었다. 또한 버스기사, 우체국 집배원, 지상조업체, 영화-방송업, 의료업 등등 우리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상자들을 선택한 것도 탁월했다.
실제로 한국 노동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28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긴 노동시간을 자랑한다. 앞서 따옴표로 표시한 단어들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회라는 것이 현실이다. 이 지표에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최근 버스기사 졸음운전 사건으로 사회 전반에 큰 이슈가 된 근로기준법 제59조다.
제59조(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업에 대하여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한 경우에는 제53조제1항에 따른 주(週) 12시간을 초과하여 연장근로를 하게 하거나 제54조에 따른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
1. 운수업, 물품 판매 및 보관업, 금융보험업
2. 영화 제작 및 흥행업, 통신업, 교육연구 및 조사 사업, 광고업
3. 의료 및 위생 사업, 접객업, 소각 및 청소업, 이용업
4. 그 밖에 공중의 편의 또는 업무의 특성상 필요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
근로기준법 제59조는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에 관한 법으로 일반조항인 제53조(연장근로의 제한)와 제54조(휴게)에 우선되는 예외조항이다.
정리해보면, 근로기준법 제50조에 따라 1주일 최대 근로시간은 40시간(휴게시간 제외)인데, 53조의 예외 사항에 따라 최대 연장 근로기간이 1주일 12시간이므로, 최대 52시간으로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59조의 예외를 통해 일정 직종에 대해선 그 이상의 연장 근로기간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노동자의 건강(노동자를 위한)과 서비스의 질(노동의 수혜자들을 위한) 2가지 모두가 근로기준법 제59조에 해당하는 직종에 있어서는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당 직종은 다음과 같다: 운수업, 물품 판매 및 보관업, 금융보험업, 영화 제작 및 흥행업, 통신업, 교육연구 및 조사 사업, 광고업, 의료 및 위생 사업, 접객업, 소각 및 청소업, 이용업, 그 밖에 공중의 편의 또는 업무의 특성상 필요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이 문제의 대상은 단지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사업장의 60.6%, 노동자 400만 명이 특례조항 적용 대상이다. 이와 동시에 해당 법의 효력의 대상은 단지 노동자뿐만 아니라 노동의 수혜자를 포함하기에 근로기준법 제59조는 대한민국의 시민 대다수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당연히 모든 법에는 '입법 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실무자를 관리하는 입장에선 해당 업종의 경우에 시간이 절대적으로 정해져서는 업무의 성과를 낼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하루 혹은 일주일 최대 근로시간이 끝났다고 쉬는 버스기사, 파일럿, 스튜어디스를 생각해보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사실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이들의 노동에 의해서 지탱되고 보호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욱 근로기준법은 개편될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노동'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이 단순히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수익창출만을 위한 행동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나 아렌트가 자신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말한 '노동'의 가치는 맞는 이야기였다!)
지금 사회에 부상된 이슈는 근로기준법 제59조 뿐이지만, 사실 동법 제63조에서도 비슷한 문제는 발생한다.
제63조(적용의 제외)
이 장과 제5장에서 정한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1. 토지의 경작·개간, 식물의 재식(栽植)·재배·채취 사업, 그 밖의 농림 사업
2. 동물의 사육, 수산 동식물의 채포(採捕)·양식 사업, 그 밖의 축산, 양잠, 수산 사업
3. 감시(監視) 또는 단속적(斷續的)으로 근로에 종사하는 자로서 사용자가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자
4.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에게 '노동'은 자연과 만나는 시간이라고 정의하며 '노동'을 인간의 조건으로 주장한다.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노동!
손학규 씨의 정치 슬로건은 "저녁이 있는 삶"이다. 손학규 씨의 정치사상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 문장 하나만큼은 정말 끝내준다고 생각한다. 이를 어떤 방송인은 '한국 현대 정치사 최고의 슬로건'이라며 극찬했다.
저녁이 있는 삶, 다시 말해 '노동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그 노동의 수혜자인 우리 모두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자가 행복한 사회에선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 모두의 일상은 누군가의 노동에 의해서 지탱되기 때문이다.
생산적인 이후 활동을 위해 본문에 사용된 조문 전문을 함께 첨부한다.
제50조(근로시간)
①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②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③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
제53조(연장 근로의 제한)
①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 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②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 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51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고, 제52조제2호의 정산기간을 평균하여 1주 간에 12시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제52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③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와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 제1항과 제2항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다만, 사태가 급박하여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을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사후에 지체 없이 승인을 받아야 한다.
④ 고용노동부장관은 제3항에 따른 근로시간의 연장이 부적당하다고 인정하면 그 후 연장시간에 상당하는 휴게시간이나 휴일을 줄 것을 명할 수 있다.
제54조(휴게)
①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한다.
②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