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코칭'을 통해서 '사랑'한다는 것
1. 변호사형 대화와 검사형 대화
'변호사형 대화'와 '검사형 대화'가 있다고?
'감정'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책과 논문들을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다. 바로 대화에는 '검사형 대화'와 '변호사형 대화'가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 감정코칭』, 최성애, 조벽, 2012, 해냄.
검사형 대화는 '짐작'과 '가정'에서 시작된다. "아니 그거 그쪽이 한 거 맞죠?", "A가 B에게 C를 했고, 그래서 당신도 그렇게 한 거죠?", "아니 기분이 나빴겠네, 그래서 그런 거죠?", "아니 이렇게 이렇게 행동한 걸 보면, 논리적으로 이랬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잖아요?" 이러한 경우에 답변은 "네", "아니요" 등으로밖에 나올 수 없다. 요즘 단어로 표현하면 "넵"이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반면에, 변호사형 대화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아니, 궁금해서 그런데 그때 뭐 한 거예요?", "왜? 왜? 도대체 왜 그런 거예요?", "아니 그때 그럼 어떤 마음이었어요?" 답변자는 "네", "아니요"가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 "아 왜 그랬냐면~~~ 이랬고 저랬고", "아 기분이 좋을 리가 없죠, 근데 또 막 엄청 나쁘고 그런 건 아닌데..."
변호사는 고객의 모든 것에 궁금하다. 아니, 궁금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 사람을 '변호'할 수 있다. 검사는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는지가 궁금하다. 피의자 자체에 대한 궁금증은 1도 없다. 피의자는 '수단'일뿐,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마음'보다 '행동'이 중요하다. 물론 이건 법정에서의 싸움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에도 마음보다 행동이 훨씬 더 큰 가치를 갖겠지만 말이다.
검사형 대화와 변호사형 대화를 공부하면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내 대부분의 대화는 '검사형 대화'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법을 공부해서일까? 나는 사람의 행동이나 인과관계 혹은 논리적 완결성이 궁금하고 그것에 대해서 주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 그리고 감성과 감정에 대해서는 놓치고 만다. 그리곤 자괴감에 빠졌다. 남자 치고는 감정적이고 감성적이며 타인에 공감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던 것이었다. 인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엔 '와... 나는 감정의 영역에서는 정말 부족하구나'라고 스스로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자괴감은 '감정의 영역' 혹은 '감성의 영역'을 공부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바뀌었다.
2. 심리학을 통한 감정에 대한 공부
과거 심리학이 정신분석이나 행동주의에 치중했다면, 최근의 심리학은 뇌과학에 기반을 두고 인지와 정서에 치중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심리치료 역시 개인치료에서 관계치료로 바뀌고 있는 것이 현재의 기류이다. 정서에 기초한 관계치료가 심리치료의 대세가 된 것이다. 여기에서 '정서지능'이라는 '마음의 힘'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것이고, 그것에서 더 발전된 것이 바로 '회복탄력성'과 'GRIT'이다.
계속해서 '감정'에 대해 찾아보면서 흥미롭게 접한 것은 '메타 감정'이라는 개념이었다. 일찍이 '메타 생각(메타 싱킹)'에 대해서는 공부한 적이 있어 메타 감정이라는 단어가 어렵게 다가오진 않았다. 메타 생각이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지를 아는 것'이라면, 메타 감정은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 지를 아는 것'이다. 메타 감정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김성애 교수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결국 김 교수의 책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때 만난 단어가 '감정 코칭'이라는 단어였다.
3. 감정코칭
감정코칭은 하임 기너트(Haim G. Ginott) 박사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감정코칭의 핵심은 '행동 이면에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임 기너트 박사는 감정코칭의 최우선 필수 요건으로 '행동보다 감정을 먼저 읽는 것'을 이야기한다. '행동보다 감정을 먼저 읽는 것!' 아까 글을 시작하면서 이야기 한 '변호사형 대화'와 '검사형 대화'가 생각나지 않는가? 검사형 대화는 '행동'을 먼저 읽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행동'만 읽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법정에서 의미(관련성: Relevance)를 갖기 때문에.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언제나 '행동'을 먼저 읽는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한 혼잣말은 놀랍게도 "바보같은 놈"이었다. 평소 욕은 입에도 담지 않는 내가 책을 읽는 도중 혼잣말을 내뱉으며 몇 번이나 고개를 푹 숙였는지 모르겠다. 그 핵심은 내가 아직 '부모'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과, '사람과의 관계'에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이혼하면 아이들은 굉장히 힘들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이 학교를 다녀와선 "엄마, 심심해"라는 말로 자신의 복잡하고 힘든 감정을 표현한다. 대부분은 그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고 "심심하면 친구들 불러서 놀아", "넌 친구도 없니?", "공부나 해"로 반응하게 된다고 한다. 딱 내가 할 말이다. "아빠가 놀아줄까?", "친구들은?", "공부를 하는 건 어때?", "심심해? 그럼 책을 읽어보는 건 어때?" 감정이 아니라 '행동'만을 보고 반응한다. 어휴... 답답이다.
"지금 기분이 어때?"
감정코칭에서 결국 핵심적인 질문은 "지금 기분이 어때?"라고 한다. 실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이를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되물어 접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간단하다(적용이 어려울 뿐이다). 그 아이의 '기분'을 직접 이야기하게끔 도와주고, 그러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청소년과 대화할 때 이성, 논리, 합리의 차원에서 다가가면 아이들은 거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감정과 느낌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청소년 감정코칭』, 최성애, 조벽, 2012, 해냄, 65쪽
신뢰는 이성적인 측면에서도 오지만, 감정의 측면에서 오는 것이 크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잘 들어주었을 때, 아이는 부모를 신뢰하게 된다고 한다. 누군가 내 감정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터놓은 사람들이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고, 또한 연인 상태에서도 거 깊은 사랑의 단계로 나아가기 쉬운 게 아닐까?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잘 들어주면 아이는 부모를 신뢰하게 됩니다. '엄마가 내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는구나' '내 기분을 이해하려고 하는구나'하면서 신뢰감이 생기고 유대감이 생깁니다. 자신의 감정이 존중받는 기분도 듭니다. 자연히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청소년 감정코칭』, 최성애, 조벽, 2012, 해냄, 105쪽.
나는 신뢰라는 것이 '이성'적 분석으로 인해서 생긴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행동 패턴을 연구했을 때 '아 이 사람이라면, 이럴 때 책임을 지겠구나', 혹은 '아 이렇게 지켜보았을 때, 이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구나'라는 메커니즘으로 신뢰가 형성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심뇌과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꽝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생각보다 '뇌'를 통해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보다 '심장'을 통해 결정하고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더 많고, 후자의 경우가 더 강력하다는 것이 연구결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성 간에 만남을 결정할 때 이윤을 따지고 논리를 따져서 결정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 대로' 결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빠르게 부상하는 '심뇌 과학(Neuro-cardiology)'에 따르면, 심장은 두뇌와 별개로 독립적인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이 사람이랑 결혼을 할지 말지 생각해보다가도, 막상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심장은 생각이 아니라 감정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청소년 감정코칭』, 최성애, 조벽, 2012, 해냄, 81-82쪽.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주려면 검사보다는 변호사 역할을 해야 한다. 검사는 잘못한 것을 찾아서 확인하고 꾸짖는 역할을 하지만, 변호사는 한편이 되어서 입장을 변호해준다. 감정코칭의 핵심은 '네가 어떤 감정을 갖더라도 네 편이 되어줄게. 그러니까 그런 감정을 갖게 되기까지의 사연을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얘기해 주렴'이다.
'네가 어떤 감정을 갖더라도 네 편이 되어줄게.
그러니까 그런 감정을 갖게 되기까지의 사연을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얘기해 주렴'
『청소년 감정코칭』, 최성애, 조벽, 2012, 해냄, 172쪽.
자꾸 내 부족한 점을 공개하여 마치 고해성사가 되는 거 같지만, 또 한가지 내가 잘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말 끊기다. 누군가가 말을 하는 도중에 대화 전개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경우 "아 그래서 이렇다는 거야?", "아 그럼 이런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이러한 방식은 책에 따르면 정말 최악이다.
4. 나의 낮음을 알고
최근 크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나는 감정적으로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감정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감히 공감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모르고 무지하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에게 감정을 '들어야만' 알 수 있다. 듣기 위해선 내 입을 닫아야 한다.
한마디 했더니 선생님이 무슨 말인지 다 안다며 말을 끊으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 하면 아이는 선생님으로부터 거부당했다고, 선생님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 감정코칭』, 최성애, 조벽, 2012, 해냄, 176쪽.
"아 그러니까 너는 이렇다는 거 아니야, 그렇지?"
나는 만약 선생님이 되었다면, 정말 감정코칭의 관점에서는 최악의 선생님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부분은 바로 '선영이와 선영이 엄마'의 대화였다. 내가 '감정'에 대해 공부하지 않고, 훈련하지 않고 딸을 갖게 되었다면 바로 100%의 확률로 행했을 모습이 바로 다음에 나오는 선영이 엄마의 모습이다. 그걸 깨달으니 마음이 한결 겸손해졌다.
선영이 엄마는 선영이와 피상적인 대화밖에 못합니다. "학원 가니? 잘 갔다 와. 밥 먹었어? 숙제했어?" 아이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 봐 눈치나 살피고, 시끄러워질 게 두려워 아이에게 해주어야 하는 조언을 망설이고 미룬다면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소년 감정코칭』, 최성애, 조벽, 2012, 해냄, 176쪽.
5. 감정과 감성이 중요한 이유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며, 실제로는 무의식이 우리를 지배한다"
프로이트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실제로는 무의식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감정'은 생각보다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오히려 이성의 영역보다 감성과 감정의 영역이 더 큰 것이 바로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6. 감정과 성경: '사랑'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본론이 너무 짧고 뒤늦게 나오는 것 같지만). 감정과 성경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감정을 통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바꾼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첫 제자로 '베드로'를 고르신다. 그리곤 물고기를 낚는 어부로 살아가고 있었던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아니 사람을 낚는 어부라니! 이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나는 이를 보며 정확히 이 의미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우리가 흔히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아'라는 말을 하거나, 혹은 '머리론 아니라는 걸 알겠는데, 도저히 못 버리겠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바로 '이성'이 아닌,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심뇌 과학(Neuro-cardiology)적으로 보았을 때, 두뇌와 별개로 심장이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고, 감정에 따른 그 결정은 엄청난 힘을 지닌다. 예수님의 말은 사람들을 이성적으로 설득하고 변증법을 통해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니었을까? '마음'을 얻지 않고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고, '마음'을 얻지 않고 어떻게 그 사람을 진정 설득시킬 수 있단 말인가? '이성'으로는 설득되지 않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법정 판결이 난 후 씩씩대는 사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고린도전서 8장 12-13절의 이야기다.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에게 편지가 온다. 가난한 성도들이 있는데, 그들 중 '제사드린 음식'을 먹는 것 때문에 분쟁이 생겼다는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형제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고 말이다. 이는 무엇인가?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라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엄마가 된 여인은 단 한 번도 '엄마가 되는 법'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면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된다. 이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게 된다.
감정코칭의 기반은 '사랑'이고, '사랑'의 기반은 '감정'이라고 했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계명은 반드시 '감정'과 밀접한 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성적으로 아무리 맞을 지라도, 감성과 감정의 영역에서 어긋날 때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없다.
But whoever loves God is known by God. When you sin against them in this way and wound their weak conscience, you sin against Christ.
1 Corinthians 8:3, 12
크리스찬으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감정'을 잘 다룰 수 있을 때 우리는 '공감(empathy)'할 수 있게 된다.
제레미 레프킨은 자신의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인간을 '근본적으로 공감하는 종(種)'으로 보는 깨달음이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고 말한다. 크리스찬에게, 그리고 나와 같이 감정 앞에 겸손한 (사랑 앞에 한없이 겸손해지는) 부족한 사람들 모두에게 '감정'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