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를 만드는 언론, 그리고 국민들
우리 형사소송법은 수사밀행성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수사밀행성의 원칙'? 수사는 원래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거 아닌가? 공개적이지 않은 것은 투명하지 않은 것 이잖아!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우리가 법학에 대해 무지한 기자들로 인해서 수십년간 속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린 속아왔다.
수사란 원래 밀실에서 하는 것이다.
귀류법을 이용해서 증명해보자,
1. 수사가 공개적이라면, 용의자는 증거를 인멸할 수 있고 해외로 혹은 도피처로 도주할 수 있게된다. 본인의 자유를 구속당하기 전에 이미 본인이 체포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합리적이지 않다.
2. 수사가 공개적이라면, 용의자 혹은 피의자는 언론과 국민에 의해 범죄자로 몰리게 된다. 우리 형사재판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피의자나 용의자는 결코 범죄자로 '추정'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재판이 끝나 형이 확정되면 그제서야 유죄로서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사가 공개된다면, 그 사람이 무죄인지 유죄인지를 가리기 전에 벌써 그 사람은 유죄로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기자들의 보도로 인해서 심증이나 공소제기 만으로 이미 범죄자 취급을 받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그런 보도로 기자들은 처벌받지도 않는다.)
따라서, 수사는 몰래해야한다. 독일 대륙법계와 영미법계는 이를 '수사 밀행성의 원칙'이라고 하는 형사법이론(엄밀히 얘기하자면 형사소송법 이론)으로 체계를 갖추어 놓은 것이다.
나아가, 국민들은 '용의자'와 '범법자'를 구별해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단순히 용의자나 피의자를 보호하는 방어수단이 아니다. 롤즈의 '무지의 베일'에 입각해서 볼 때, 용의자의 편에 언제든지 서있을 수 있는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수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