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은 왜 예술을 구입하는가?

가장 강력한 의사소통 수단 '예술'

by 문용석

우리는 매일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간다.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심지어 생각을 할 때에도 우리의 생각은 '언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를 학자 마샬 맥루한의 표현을 빌려 표현하자면 '구텐베르크 갤럭시'라고 한다.


언어 없는 삶을 상상해 볼 수 있는가?


'언어(말)'을 잘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대우받는다. 남을 심판대에서 대변해주는 변호사도, 명쾌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도, 글을 잘 쓰는 작가도, 감동적인 연설을 하는 정치인까지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생각을 '언어'의 틀 안에서 집약적으로 정리해 말이나 글이라는 표현적 도구로써 산출해내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며,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잘'할 수 없다.


우리는 매일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며 살아가지만, 그것을 누군가가 듣고 싶고, 읽고 싶게 하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재석 씨가 왜 천문학적인 방송료를 받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왜 엄청난 인세를 받는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써도 '언어적 표현'에는 피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모든 것이 언어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표현에 한계가 생긴다는 것이다.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과, 태국어를 하는 사람은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다르다.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예는, '눈(snow)'을 보고 에스키모인들은 다른 그 어떤 언어 사용자보다 다양한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논리는 필연적으로 '언어'의 한계에 부딪힌다. 그럼 그 언어의 한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 표현방식은 어떤 것일까?


바로 비언어적 표현(탈언어적 표현)이다.

예술: 미술, 음악, 춤...


나는 그래서 예술을 하는 사람이 좋다. 그리고 존중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언어의 힘이다.


아무런 말이 없는 발레 공연을 보며 눈물이 흐르는 것, 가사가 없는 클래식 연주를 들으며 희로애락을 느끼는 것, 미술작품을 한 시간 두 시간째 쳐다보는 것...


그래서 진정한 부자들(졸부나 작은 부자들 말고)은 반드시 '아름다움'을 사유하고 싶어 한다.


아름다움을 사유하는 방법으로 천문학적인 가격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비싼 가격의 클래식 연주회를 매주 간다.


조금 더 나아가면 '역사'사유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유물들과 각종 기록들을 갖는다.


언어로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감정''아름다움'이다.


예술(특히, 미술과 음악)은 바로 인간의 '감정'과 '아름다움'을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표현한다.


부자들이 예술에 열광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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