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인 만족과 성욕, 그리고 허무
유명 정치인, 학자, 교수, 기업인, 연예인, 심지어 종교인까지 힘있는 권력자들이 한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가장 주요한 이유중 하나는 바로 '성적 타락'이다. 흔히 '섹스 스캔들' 혹은 '~게이트'로 불리는 성적 문제(불륜을 포함하여)의 폭로에 따른 대중의 반응은 한 인물이 쌓아왔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다.
그만큼 성적 욕구는 강력하고, 무서우며, 자신할 수 없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가장 사랑했던 인물중 한명인 '다윗'도 밧세바와의 불륜으로 인해 죄를 지었었다. 순간의 성적 쾌락을 참기란 정말 어렵다는 사실은 여러 역사의 인물들에 의해서 증명된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이성적 주체'로 규명했고, 인간이 이성적 주체라는 명제는 진리처럼 20세기 오랜 시간 생각 되어왔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적 주체다'라는 명제를 망치로 깨부신 이가 있었으니, 바로 프로이트(Sigmund Freud)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분석하며 '성적 욕구(Sexual desire)'로서 모든 것을 설명하는데 성공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의 이론에 따르면 결국 인간의 모든 행동의 동기가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드', '에고', '슈퍼에고'의 세 가지 분류로 사람의 심리를 분석하는데, 여기서 '이드'는 본능을 의미한다. 데카르트가 말한 '이성적 주체'라는 인간의 모습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인간 무의식 이론'의 첫 등장이다.
프로이트가 '리비도'라고 표현하는 성욕은 모든 인간에게 존재한다. 그리고 성욕이 모든 행동의 이유라는 이론은 생각보다 설득력이 엄청나다. 우리가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또는 연애나 결혼을 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시간을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그의 이론을 잘 이해할 것이다.
결국, 『꿈의 해석』이란 그의 책 제목을 보면 모든 이론은 '꿈'과 관련되어 있다. 그는 꿈을 성욕의 결과로 보며 모든 상황들을 성적으로 해석한다. 습관이나 성격 그리고 심리상태도 마찬가지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대부분의) 동기는 성욕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일정부분은 정말 그가 말한것이 맞는것 같다. 인과성은 제쳐두고라도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성욕은 영구히 채워지는 욕구가 아니다. 일시적이며 그 고갈이 엄청나게 빠르다. 그렇다면 변증법적으로 보았을때, 프로시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 단지 일시적인 찰나의 만족밖에 얻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런가?
꽤 오랜 시간 전 사마리아 땅을 지나던 예수라는 청년은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겠다고 말이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장 14절
성경은 말한다. 세상 모든 것은 일시적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경험하는 모든 만족은 영구하지 않다. 특히 만족을 '소비'를 통해 얻게 만드는 소비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어제 그토록 사고싶었던 차는 일주일 후에 바꾸고싶은 차가 된다. 환상의 오페라 공연은 비싼 돈을 내고서 보고 나면 잊혀진다. 클럽에서 나와 그들이 술에서 깨어갈때쯤 그들의 마음속에는 허무가 자리잡는다. 만나면 세상을 다 얻을 거 같은 그 아름다운 연인이, 내일은 보고싶지 않은 사람이 된다.
성경은 말한다. 영원한 만족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그리고 그 만족으로 향하는 길은 단 하나라고 말이다.
우리는 숱한 '허무'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허무하기 때문에 자극을 찾고, 그 자극이 끝나면 다시금 더 큰 허무를 느낀다. 만족이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점점 그 자극(극치점)은 강해지고, 그 자극이 강해질수록 '의존'과 '중독'이 따른다. 성욕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허무함은 우리 사회를, 인간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그 속에서 빠져나가 진짜 만족(영구한 만족)을 얻었을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성욕의 만족이나 일시적인 만족이 가져다 줄 수 없는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