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화된 컨텐츠(Personalized Contents) 시대의 미래
세상이 정말 빠르게 바뀐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하도, 나의 손에는 누를 때마다 "똑똑똑" 소리가 나는 폴더폰 혹은 슬라이드 폰이 들려있었다.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는 컴퓨터가 필요했고, 인터넷으로 심야학습 신청(기숙사에 늦게 들어가겠다는 신청)을 하기 위해서 오후 10시쯤 되면 도서관 컴퓨터에는 사람들의 대기줄이 늘어섰었다. 고전 시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고작 9년 전 이야기다.
내게는 9살 차이가 나는 어린 동생이 있다. 이제 그 친구가 어느덧 스무 살이 넘었는데, 같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세상이 빠르게 바뀌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무한도전, 1박 2일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어떤 방송 스트리머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오늘 아프리카 tv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보며 깔깔 웃는다.
20대 초반 친구들에게 더 이상 TV와 컴퓨터는 필수재가 아니다. 손안에 있는 핸드폰 하나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컨텐츠의 개인화 (Personalized Contents)"다. 구글이라는 글로벌 초거대 기업의 영향력과 자금력을 통해서 Youtube라는 플랫폼은 급성장했고, 더 이상 거대 방송국에서 컨텐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올리는 컨텐츠로 무한한 세계가 펼쳐진다. 이제는 Youtube에만 들어가서 이리저리 손가락을 움직이다 보면 시간을 쉽게 보낼 수 있다.
매일 300만 개의 컨텐츠가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된다. 매일 23만 장의 사진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업로드된다. 1분마다 72시간을 재생할 수 있는 분량의 영상이 Youtube에 생성된다. 이미 컨텐츠의 개인화는 전성시대를 맞아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 대한민국 컨텐츠 역사에 짙은 한 획을 그었던 MBC 예능 프로그램 무
한도전의 전담 프로듀서였던 김태호 PD는 이러한 컨텐츠 개인화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현시대는 100명의 스태프와 1인 BJ가 경쟁하는 시대라며, 플랫폼보다는 남들과 얼마나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느냐가 성패를 가른다고 말한 바 있다. Youtube라는 거대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누가 어떤 컨텐츠를 개인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졌다. 영국의 유명 일간지 가디언에서는 이미 수년 전 TV는 죽었다고 말한다.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었다고 말한다.
Traditional TV viewing for teens and tweens is dead. Not dying. Dead.
10대와 20대를 대상으로 한 전통적인 TV는 죽었다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
영국 일간지_Guardian
나 혼자 본다, 나 혼자 즐긴다 개인화된 콘텐츠 시대, 그 의미와 방송에 던지는 화두 과잉의 시대다. 뉴스도 정보도 맛집도, 자극과 유혹도, 온갖 군데에 널려 있다. 무엇을 골라야 할지 난감하다. 눈 질끈 감고 하나 고르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 적당히 남들을 따라가는 것이 상책일지도 모른다. 친구에게 물어봐서 고를 수도 있지만 대답은 역시 글쎄올시다. 과잉의 시대에 사람들은 햄릿 증후군에 걸려 있다. 죽느냐 사느냐 고뇌하던 햄릿처럼 현대인들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는 결정 장애를 겪고 있다. 선택을 해도 옳은 결정인지 자신이 없다. 미국의 심리학자 베리 슈워츠는 선택의 여지가 많아질수록 행복해지기보다는 포기한 선택에 대한 후회가 커지는 역설이 일어난다고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적합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맞춤형 추천 서비스가 각광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고객을 특정 그룹으로 묶지 않고 개인의 속성에 맞추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바야흐로 개인화의 시대다... (생략)
정재민 KAIST 정보미디어 경영대학원 교수
10대와 20대는 아니지만, 시대를 살아가면서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 이제는 컨텐츠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있고, 임금은 올라가면서 사람들은 비교적 이전보다 홀로 쓸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서 하루를 마감하기 전, 사람들은 컨텐츠를 찾는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은 컨텐츠를 찾는다. 자신의 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소비에는 당연히 재화가 모이게 된다. 앞서 소개한 정재민 교수의 글은, 대표적으로 기성세대의 두려움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바뀌어가는 시대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잔뜩 움츠려 든 모습이다. 오히려 피부로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정교수의 말처럼, 사람들은 햄릿 증후군에 걸려있다. 선택은 모두에게 두려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히려 더욱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간다. 조회수가 높은 것을 찾고, 랭킹이 높은 것을 찾는다. 다수의 선택이 개인의 선택을 강제한다. 이미 수년 전 바라트 아난드가 예측했던 것처럼 말이다.
컨텐츠 자체로서의 힘은, 네트워크 효과의 강력함을 지닌 사용자 연결의 힘에 점차 눌리고 있다... 사용자들이 더 많을수록 그 제품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바라트 아난드, 『콘텐츠의 미래』
나의 일상에서도 Youtube를 여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나둘씩 재생 목록이 늘어간다. 하나둘씩 구독하는 컨텐츠 생산자들이 늘어간다. 그렇게 컨텐츠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다 보면 진주를 찾기 마련이다. 사실, 이 글에서는 '컨텐츠의 개인화'에 대한 소개와 함께 내가 찾은 한 진주를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가수 10cm의 컨텐츠다.
안녕하세요... 랜서트구요, 7월 29일에 끝난 성요한 10cm의 소극장 장기콘서트 10100을 기념하는 앵콜 공연이자, 랜서트이자, 내방 1열에서 보는, 관객은 지금 보고 계신 여러분 한 명밖에 없는 10001이라는 제목의 콘서트입니다.
5회 랜서트 중에서_권정열
랜서트 5화 시작 부분에서 10cm의 보컬 권정열 씨가 랜서트를 소개하는 말이다. '내 방 1열에서 보는, 관객은 지금 보고 계신 여러분 한 명 밖에 없는 콘서트' 이보다 컨텐츠의 개인화를 잘 이용한 아티스트가 있을까? 본래 콘서트란, 수가 한정되어 있는 상당 금액의 티켓을 구입하여 콘스터장까지 이동하여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보고 그 음악을 듣는 것이다. 하지만, 1인 컨텐츠의 개발로 인해서 티켓이 필요 없고, 불편한 옷을 입을 필요도 없고, 집에서 내 침대에 누워 혹은 소파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콘서트이지만, 여러분께 이 공연을 더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알려드리면: 우선 이어폰으로 들으세요 웬만하면... 귀에 가깝게 어차피 1:1 공연이기 때문에 조금 더 가까운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고, 관객이 한 명밖에 없기 때문에 아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고, 재미있으면 크게 웃거나 이렇게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겠습니다.
5회 랜서트 중에서_권정열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10cm의 해당 컨텐츠는 그다지 많은 구독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재생 회수도 그렇게 많지 않다. 10cm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일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컨텐츠와 해당 플랫폼에 엄청난 잠재력이 숨어있다고 믿는다.
10100 콘서트가 예상치 못한 티켓 대란으로 공연을 아예 못 보신 분들도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분들도 조금이나마 10100의 냄새를 느끼셨으면 좋겠는 마음에, 그리고 10100에 함께 하셨던 분들도 다시 한번 이 기분을 느끼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반으로 오늘의 랜서트가 성사되었습니다.
5회 랜서트 중에서_권정열
10cm의 소극장 콘서트 이름은 10100인데 관객석이 100자리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10cm의 유튜브 콘서트 이름은 10001이다. 관객이 너 한 명이라는 의미란다. 참 재미있는 것은, 가수가 노래를 부르다가 틀리고 실수하는 장면이 여과 없이 랜을 통해 모두의 핸드폰에 전송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댓글로서 반응한다. 그리고 그 댓글로 소통한다.
10100에서는 환성이나 환호로 했어요, 그런데 오늘 10001에서는 여러분의 댓글밖에 표현해주실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댓글로 반응을 알려주세요
5회 랜서트 중에서_권정열
10cm의 컨텐츠 플랫폼은 나를 정말 놀라게 만들었다. 이보다 컨텐츠의 개인화를 잘 따라간 아티스트가 존재할까? 단순히 팬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많은 공인(公人)들이 개인 컨텐츠를 이용하고 있지만, 이 컨텐츠는 그를 몇 단계 뛰어넘는 것처럼 느껴진다.
10cm 이름은 본래 멤버 2명의 키 차이가 10cm라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관객과 10cm 거리에서 소통하는 아티스트라는 것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재해석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