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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Jul 16. 2016

통일을 꿈꾼다는 것

사랑의 표현으로서의 통일

나는 통일을 꿈꾼다. 수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의 통일은 나의 꿈이다. 이러한 꿈이 있기에 나의 걷는 길(공부와 연구)은 즐거움이 있고,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나에게 있어서 통일을 꿈꾼다는 것은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헌법을 다시 쓰는 방식'으로서의 혁명을 꿈꾼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공한 혁명은 새로운 헌법을 남긴다"

한나 아렌트_혁명론


한나 아렌트 이전의 수많은 학자들은(모든 주요 학자들은) 혁명비폭력(피를 보지 않는 것)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학계의 정설로서 받아들여졌다.


아렌트는 처음으로 피를 흘리지 않는 혁명이 가능하다는 명제를 들고 나왔고, 프랑스혁명의 광기 대신 '헌법'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학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칼과 총 그리고 길로틴(단두대)으로 대표되었던 '혁명'이 '평화'와 양립할 수 있다니...


아렌트는 인민들의 대화를 통한 합의를 바탕으로 헌법을 다시 쓰는 것을 통해 혁명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아니, 그 헌법을 새로 쓰는 그 순간은 혁명이 된다.


헌법을 쓰는 것은 곧 혁명이다


나는 아렌트적 혁명이라면, 사랑혁명이 함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 땅을 살아가는 사명 중에는 이 말씀이 빠질 수 없는데, 나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비가시적 이웃에게도 마찬기지로 향해야지 단지 가시적 이웃에게 베푸는 온정에만 한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이것이 그 온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사야 61:1‭-‬2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북에서 오신 할아버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던 나는 어려서부터 민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고, 분단이 개인의 아픔에서 가정의 아픔, 나아가 민족의 아픔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통일이 바로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에게 고침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자에게 놓임을, 그리고 모든 슬픈자를 위로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통일은 사랑의 표현이 된다.


사랑의 표현으로서의 통일


이 모든 것은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헌법을 새로쓰는 방식으로,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직접 다가가 목소리를 듣는 방식으로, 다시 말해 오직 사랑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아렌트적 혁명과 사랑의 공존은 내가 꿈꾸는 통일의 전제가 된다.


나아가 이 헌법은 우리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고, 이 헌법을 통해 나아지는 삶을 본 다른 국가들은 이 헌법의 조항들을 본따 자신들의 헌법의 한 자리에 두게 될 지 모른다.


법과 사랑 그리고 혁명은 통일을 통해서 공존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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