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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Apr 18. 2019

단어 한 개, 쉼표 한 개가 가지는 힘

법률 세계에서는 작은 것 하나가 모든 것을 바꾼다

I. 서론: 단어가 가진 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우리가 재판에 갔을 때 엄청난 정의나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다툼을 갖는 것으로 표현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다.  대다수의 재판은 사소한 것의 차이를 가지고 다투는 것이며, 큰 것을 가지고 다툼을 시작했어도 결국 작은 쟁점으로 논의는 좁혀지기 마련이다.


미국 판례들을 읽으면서 굉장히 놀랐던 점은 한 문장에 찍힌 콤마 하나, 세미 콜론 하나를 가지고 그 문장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2-3년간 싸운다는 것이다.  법률에서 쉼표 한 개, 마침표 한 개, 나아가 단어 한 개가 가지는 힘은 그만큼 상당하다.


우리의 모든 일상이 법률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큰 비약이 되겠지만, 우리의 일상은 그 모든 것이 추후 재판에 갈 수 있을 만한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일상에서 쓰는 단어 하나에도 큰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 단어가 출력되어 불특정 다수에게 게시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오늘 아침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가 한 문구를 보고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문구는 버스운전기사에게 일어난 '폭행'은 '테러'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얼핏 봐서는 그렇구나, 맞아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되지, 혹은 폭행범들은 다 테러범 같은 이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내게 폭행이라는 단어와 테러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의 무게는 너무나도 다르게 인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폭행과 테러는 같은 것인가?


II.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광고의 내용 분석

먼저, 어떠한 의도로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자동자노련)은 전국 버스기사들에게 상기된 홍보 스티커를 배포하였는지 보기 위해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다.  기사의 내용을 간략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⑴ 승하차를 위해 일시 정차한 버스나 택시 운전기사를 폭행하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 역시 정확한 표현인지 추후 확인하겠다.)

⑵ 2015년 6월부터 적용되는 법률의 개정에 대해서 승객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⑶ 따라서 "버스 운전기사 폭행 테러와 같습니다"라는 문구를 프린트해 전국 버스에 배포하였다.


III. '폭행'과 '테러'는 같은 것인가

1. 범위

제1조(목적) 이 법은 「형법」, 「관세법」, 「조세범 처벌법」, 「지방세기본법」,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및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특정범죄에 대한 가중처벌 등을 규정함으로써 건전한 사회질서의 유지와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가장 첫 조항을 보면, 이 법이 어떠한 법들에 한해 적용되는지를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버스 운전기사에 대한 폭행이기에 자동차노련에서 이야기하는 폭행은 「형법」의 범위 안에서만 논의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겠다.


2. 정의

1) 폭행: "타인의 신체에 대한 일체의 불법적인 유형력의 행사"

간단한 형법 몇 가지를 통해 폭행의 정의에 대해서 알아보자.  형법에서 폭행과 관련한 법률 조항은 참으로 많지만, 그중 대표적이고 간단한 것이 바로 제260조, 261조, 262조라고 할 수 있다.  

제260조(폭행, 존속폭행) ①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폭행을 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②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에 대하여 제1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제1항 및 제2항의 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제261조(특수폭행)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제260조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62조(폭행치사상) 전2조의 죄를 범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때에는 제257조 내지 제259조의 예에 의한다.

조금 더 교과서적으로 접근해보자면 폭행은 "신체에 대한 일체의 불법적인 유형력의 행사"를 말하며, 그 성질이 반드시 상해의 결과를 초래할 필요는 없다.  이를 미국법으로 치환하면 'Battery'의 개념이 되겠다.  이는 타인의 신체에 대한 일체의 유형력의 행사를 모두 포함한다.  예를 들면, 기도를 해주는 행위를 통해 손의 압력이 지나쳤던 경우에도 이를 타인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로 볼 수 있기에 폭행에 해당된다.  대법원 1994. 8. 23. 선고 94도1484 판결.  반면에, 타인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이 없거나 부족한 경우에는 폭행이 아니다.  잠겨있는 방문을 여러 차례 발로 찬 행위는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가 아니기에 폭행이 아니다.  대법원 1984. 2. 14. 선고 83도3186 판결. 


2) 테러

'테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유일한 법은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으로서 가장 첫 두 조항에서 이에 대한 꽤나 충분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제1조(목적) 이 법은 테러의 예방 및 대응 활동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과 테러로 인한 피해보전 등을 규정함으로써 테러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 및 공공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테러"란 국가ㆍ지방자치단체 또는 외국 정부(외국 지방자치단체와 조약 또는 그 밖의 국제적인 협약에 따라 설립된 국제기구를 포함한다)의 권한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목적 또는 공중을 협박할 목적으로 하는 다음 각 목의 행위를 말한다

제2조의 이하 조항에서는 '사람을 살해하거나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하는 행위 또는 사람을 체포ㆍ감금ㆍ약취ㆍ유인하거나 인질로 삼는 행위', '항공기, 선박에서 이루어지는 해당 행위', '폭발물을 공공영역에 설치하는 관련 행위', '핵물질과 관련한 해당 행위'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제2조 참조.


3. 소결

폭행과 테러를 같은 선상에 놓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폭행이 테러에 해당되기 위해서는 특수한 '장소(비행기나 선박)'에 있거나 특수한 '장비(폭탄이나 핵물질)'가 있어야 한다.  혹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외국 정부나 국제기구와 같은 집단을 상대로 특수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한다.  상기된 폭행의 범위를 생각해보았을 때, 이는 논의를 더 진행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겠다.  폭행과 테러는 다르다.


III. 결론

우리 국회는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폭행을 가중처벌하는 것에 동의했고, 그에 따라 국민은 그러한 법을 만들어 여객자동차운송사업을 하는 운전자를 법으로서 보호하고 있다.  마땅히 박수받아야 할 일이다.  어찌 보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대중교통 운전자의 안전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더 특별히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당 법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과 다르게 말하는 것은 크나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앞서 서론에서 말했듯이, 이는 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글에서 다루고 있는 해당 광고는 크나큰 잠재적 문제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법률문서였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폭행은 테러와 다르다.  또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 10 1항에 따르면 특정 운전자를 폭행 또는 협박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추가적으로 해당 폭행행위가 상해나 사망의 결과를 가져온 경우에 각각 3년 이상의 유기징역, 그리고 무기 또는 5년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되어있다.  이러한 규정을 모호하게 적어놓은 것 역시 크나큰 문제다.  본인이 해당 연맹 소속의 변호사였다면, 반드시 법 조항을 그대로 쓰도록 권유했을 것이다.

제5조의10(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폭행 등의 가중처벌) 
① 운행 중(「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2조제3호에 따른 여객자동차운송사업을 위하여 사용되는 자동차를 운행하는 중 운전자가 여객의 승차ㆍ하차 등을 위하여 일시 정차한 경우를 포함한다)인 자동차의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제1항의 죄를 범하여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단지 한 연맹의 실수를 꼬집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의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위함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단어 선택들, 그리고 특히 한 번 게시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출력물들에 선택되는 단어들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선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단어 선택자에게는 그러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단어 선택에 꽤나 너그러운 편인 것 같다.  적어도 '법률'과 관련된 단어 선택은 Enter키를 누르기 전에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책임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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