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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Sep 01. 2019

언론의 자유와 책임에 대하여

대한민국 언론의 자유와 책임의 현주소

1. 정직이 세상을 변화시킬까?

1995년, 어떤 학교의 개교식에서는 남들이 하지 않는 말이 마이크를 통해 황량한 흙바닥 광야에 전해졌다.  "성실이 세상을 움직이고, 정직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월급루팡'이 대세인 시대에서 성실의 가치도 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의 측면에서는 많은 이들이 저 말에 동의할 것 같다.  하지만, 정직의 측면에서는 어떠한가?  정직이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과연 그러한가?  옳은 말을 하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을 정직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직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대우하고 있을까?


사람은 생각보다 공정하지 않고, 객관적이지 않다.  그래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커 보이게, 불리한 것은 작아 보이게 만들고 싶다.  누군가는 그것을 정당한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약점은 감추고, 강점은 부풀리는 것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정직해서 어떻게 험난한 세상을 이겨내겠느냐는 말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정직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을 하면 외면받는 세상이다.


2. 우리 국민의 78%는 대한민국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언론은 Reuters Institute Digital News Report 2019 (디지털뉴스리포트 2019),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에서 올해 꼴찌를 기록하면서, 해당 조사에 국가 이름이 올라간 이래로 연속해서 언론 신뢰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물론 해당 수치는 시민을 대상으로 해당 시민들이 자기 국가의 언론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조사한 통계 결과기 때문에 객관적인 신뢰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이 우리나라 언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오직 22%의 국민만 대한민국 언론을 신뢰한다.  바꾸어 말하면, 대한민국 국민의 78%는 대한민국 언론이 정직하지 않다고 믿는다.


*원문 PDF 파일은 여기에서 다운로드하여 보실 수 있다.


3. 우리나라 언론의 자유도는 생각보다 훨씬 높다

'대한민국'과 '언론의 자유'라는 두 단어를 떠올리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Reporters without borders for feedom of information (정보의 자유를 위한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World Press Freedom Index 2019에 따르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해당 지표에서 한국은 41위로 Abuse Score (0), Underlying situation score (24.94), Global score (24.94)로서 작년에 비해 1.43점 올랐고, 작년 43위에서 2계단 상승했다.  이는 아시아 국가들 중 1등 수치이며, 심지어 미국보다 높은 수치이다.  무언가 이상하다.  의구심을 풀기 위해 시간에 따라 해당 수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해당 수치에서 48위로 Abuse Score (63.01), Underlying situation score (16.36), Global score (25.69)로서 작년에 비해 1.96점 내렸고, 작년 45위에서 3계단 하락했다.


우리나라의 언론의 자유가 원래 이러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나라는 위 수치에서 노무현 대통령 시절 30 위대로 상위권에 위치했으나,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박근혜 대통령 정권을 거치면서 70위까지 곤두박질쳤다.  대통령 탄핵 이후인 2017년 5월에는 63위로 소폭 상승했고, 2018년 43위, 2019년 41위로 문재인 대통령 정권하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 Abuse Score (정부의 영향력 남용)가 0인 점은 주목할만하다.  통계에 따르면, 분명히 정권이 바뀌고 우리나라의 언론은 잃어버렸던 자유를 되찾았다.  


4. 정직하지 못한 언론의 높은 자유도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우리나라 언론이 국민들에 의해서 '정직하지 못함'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는 것과 더불어, 현재 정권 교체에 의해 자유도가 급격히 올라간 것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 해보았다.  이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정직하지 못한 언론의 높은 자유도의 영향 아래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er than the sword)"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이다.  이 말이 누구로부터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존재하지만, 펜은 칼보다 강하다(Calamus Gladio Fortior)는 이 말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생각이나 사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직접적인 폭력이나 무력의 사용보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전쟁 영웅이자,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나폴레옹 역시 4개의 적대적인 신문이 1000명의 총검을 든 보병단보다 두렵다고 말한 바 있다.


"Trois journaux hostiles sont plus à craindre que mille baïonnettes (Four hostile newspapers are more to be feared than a thousand bayonets)"

Napoleon Bonaparte


나폴레옹은 자신에게 적대적인 신문사에 두려움을 느꼈다.  말을 타고 전장을 다니던 시절을 지나, 이제 '전송' 버튼 하나면 지구에 거주하는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내 글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한 시대에서 적대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직하지 못하고,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자유를 가진 언론에 우리는 얼마만큼의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5. 펜이 칼보다 강하다면, 펜을 든 손에는 어떤 책임이 있어야 하는가

과거 서구사회의 역사를 살펴볼 때, 언론은 항상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었기 때문에 언론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자유를 주창해왔다.  그것이 처음 발현된 곳이 유럽이라고 했을 때, 그 자유가 극도로 꽃 피운 곳은 바로 미국이다.  바로 그 자유가 꽃피운 장소는 미국 대법원(U.S. Supreme Court)이다.  New York Times Co. v. Sullivan에서 언론은 사실과 다른 의견광고도 공적 쟁점에 대한 토론의 자유를 위해 헌법상 보호되어야 한다는 판결을 손에 넣었고, 본격적으로 막강한 표현의 자유를 손에 얻었다.  New York Times Co. v. Sullivan, 376 U.S. 254 (1964).  이 이후로 미국 언론은 더욱더 강력한 표현의 자유를 확인해나가며 헌법의 보호를 받았고, 이러한 영향은 전 세계에 미쳤다.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의 적용은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많은 언론은 이러한 미국의 모습을 토대로 앞다퉈 언론의 자유를 주장했다.  그리고,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강력한 자유를 얻어냈다.  펜을 든 손에 자유는 더해졌고, 법적 책임은 줄어들었다.


ⓒNew York Times / 해당 케이스의 주인공이 된 의견광고와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들의 사진


앞서 소개한 판결이 나온 지 40년이 흘러, 미국에서 한참 떨어진 한국의 한 소설가는 이 판결이 미친 영향에 대해 자기 소설의 문장을 통해 스스로의 생각을 담는다.  소설의 문구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판결과 논문보다 묵직한 내용을 담고 있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은 여러분들께 다시 묻고 싶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면, 펜을 든 손에는 어떤 책임이 있어야 하는가?


 "붓이 칼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문필가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붓으로 이루어진 범죄가 칼로 이루어진  범죄보다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억울해합니다.  바르지 못한 일입니다.  붓이 정녕 칼보다 강하다면, 그 책임 또한 더 무거워야 합니다.  따라서 나는 창검으로 이루어지는 범죄에 비해 더 큰 처벌을 내리지는 못할 망정 최소한 같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붓에 보내는 칼의 경의로 생각할 것입니다."

이영도, 『피를 마시는 새』


6.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

많은 미디어가 앞서 소개한 자료들을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우리나라 국민 중 78%가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언론인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한 언론인은 되묻는다.  과연 단 한 번이라고 우리나라 언론이 "한국 경제가 좋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자는 덧붙인다.  "이들 언론이 자행하는 한국 경제 상황과 관련된 보도는 통시적으로 봐도, 공시적으로 봐도, 또 어떤 저널리즘의 윤리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는, 지독한 정파성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08년은 이명박 대통령이었고, 2018년은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단 하나의 사실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과장과 왜곡이, 거대한 상업 신문사들의 진공관을 거쳐, 분노와 저주와 증오가 확대 유포되고 습니다. 그들을 무방비로 둬서는 우리 사회에 미래가 없습니다."


슬프게도 2018년 게시된 최경영 기자의 촌철살인으로 드러난 현실은 2019년인 오늘날에도 그다지 변화하지 않았다.  최근 법무부 장관 지명과 관련한 언론의 모습을 보았을 때, 이러한 슬픔은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우리를 비통하고 심지어 애통하게 만든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이 되어야 하는지'와 같은 정치적 견해가 필요한 질문은 뒤로 하고, 언론의 행동에 초점을 맞춰보면 이러한 비통함은 잘 나타난다.  같은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때에 따라 '보도량'의 차이가 너무나 현저하기 때문이다.  유사한 적격성 논란이 존재하는 같은 사안(법무부 장관 지명)에 212배가 넘는 보도가 tv, 인터넷, 동영상, sns를 막론하고 쏟아졌다.  펜은 칼이 되었고, 한 개인의 주변 사람들에까지 무분별한 찌르기가 계속되었지만, 이를 막을 주체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결과만이 나왔다.  과거 이러한 언론의 펜에 여러 차례 찔려봤던 유시민 씨는 절망감을 표현했다.  '책임지지 않는 펜', 바로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다.

ⓒtbs


7. 해결책은 존재하는가? 또한 언론은 견제될 수 있는가?

누구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앞서 대한민국 78%의 국민이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보면, 우리 국민 중 대다수는 언론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판결을 통해 시작된 언론의 자유에서 파생된 막강한 권력이 자행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세계 많은 국가들에서 골칫거리로 남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해결책은 존재할까?


확실한 해결책이 있었다면, 전 세계가 왜 이러한 문제로 신음하고 있을까.  확실한 해결책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살펴볼 수 있다.  언론의 자유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나아가 과거 언론은 어떠한 책임을 졌었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언제부터 축소되었고, 현재는 어떠한 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모든 자유와 책임의 영역이 '법'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법을 모르고 이러한 문제를 살펴볼 수 없다.  자유와 책임의 변동은 모두 법원에서 일어난다.


꽤나 길어질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몇 차례 글을 통해서 이러한 논의들을 시작해보고자 한다.  언론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서 말이다.  이 문제가 굉장히 어렵고 첨예한 갈등이 도사린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도 이러한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지만, 결국 개혁에 실패하고 말았다.  나아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그 누구도 이 일을 성공하지 못했다.  이 문제를 알고 있어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감시'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권력의 견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자신들이 누리는 권력의 크기만큼 견제를 받는 것을 '삼권분립'이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삼권분립에 포함되지 않는 신흥 권력인 '언론 권력'에 대한 견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견제를 '소비자'가 할 것을 이야기한다.  글쎄, 지금 당장은 이 말에 100%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해 완벽한 반대를 하기에도 버겁다.  연구를 통해 조금 더 문제에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어떠한 답변을 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 소비자 주권이 행사되어야 할 과연 그런 산업 분야가 어느 분야일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실한 상품이 돌아다니는 영역이 어디지요?  내 생각에는 미디어 세계인 것 같아요.  정말 사실과 다른 엄청난 많은 사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기사로 마구 쏟아지고 있습니다.  누구의 말을 빌렸는지 출처도 불명한 의견이 마구 나와서 흉기처럼 사람을 상해하고 다닙니다.  그리고 아무 대안도 없고 결과에 대해서 책임도 지지 않는 상품들이 널려 있습니다.  물론 배상도 없습니다.  우리 소비자 주권의 시대가 장차 해결해야 될 가장 큰 분야가 저는 이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다 감시를 받고 있습니다.  감시받지 않는 생산자, 감시받지 않는 권력자, 이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건 소비자 행동으로만 제어가 가능한 분야입니다.  인터넷이 어느 정도 제어를 해 주고 있습니다. 공직 사회가 이 언론 집단에게 절대 무릎 꿇어서는 안 됩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권력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도 힘드시지만 일반 국민들이 소비자 권리를 행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정부권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이만한 집단에서 소비자 노릇을 제대로 좀 해 주시길 바랍니다.  불량 상품은 가차 없이 고발해야 합니다.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제일 나쁜 것이 유착입니다. 유착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저의 간곡한 부탁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경제점검회의 및 격려 오찬, 2007년 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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