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 창문을 내리고 욕설을 하는 것만으로도 유죄가 될 수 있다?
1. 평소엔 욕을 한 마디도 안 하지만, 운전대만 잡으면?
평소에 욕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도, 우리나라에서 운전대만 잡으면 욕쟁이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듯 우리나라의 운전문화는 예전부터 계속해서 문제시되어왔다. 창문을 열고 욕설을 내뱉으며 싸우는 모습이나, 두 운전자가 내려서 도로에서 한바탕 싸움을 펼치는 것 역시 자주 볼 수 있었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차선을 변경한다거나, 양옆을 살피지 않고 골목에서 대로로 우회전을 한다거나,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는 등의 운전행동은 평소에 욕을 하지 않는 나에게도 가끔 욕을 하고 싶은 충동을 주곤 한다.
하지만, 어느샌가 욕에서만 끝나면 다행인 상황도 연출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보기에 교통법규를 어겼거나,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만드는 운전을 했을 때 분노를 느끼고 이를 행동으로 대응했다는 소식들이 뉴스란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우리는 '보복운전'이라고 한다. 앞 차를 바짝 쫓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보복운전은 나중에 자신의 트렁크에서 도끼를 꺼내 휘두르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분노가 응집되어있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하루하루 늘어나고 있다.
2. 유명 배우의 최근 유죄 판결
법무부 장관 임명과 관련한 뉴스로 가득했던 언론 사회면에 오랜만에 연예인의 이름이 등장했다. 배우 최 씨는 앞서가던 차량을 앞지른 뒤 급정거한 혐의와 상대 운전자와 대화 중 욕설을 한 혐의로 기소되었었고, 지난 9월 4일 서울남부지법 형사8단독 최연미판사는 이와 관련하여 징역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수협박과 모욕 혐의를 인정하였고, 특수재물손괴 혐의에 대해서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과연 그는 어떠한 이유로 유죄를 받은 것이고, 흔히 언론에서 보복운전이라고 불리는 행위는 법률적으로 어떤 명칭으로 불릴까? 하나씩 알아보자.
3. 교통사고인데, 형법이 적용된다니?
일반적으로 과실로 일어난 교통사고는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과실이 아닌 고의성이 인정되는 경우 교통사고일지라도 「형법」이 적용된다. '보복운전' 행위는 상대방의 피해(감정적 피해 또는 교통사고와 같은 실질 피해)를 유도하기 위한, 매우 분명한 악의를 갖고 있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보복운전은 「도로교통법」이 아닌 「형법」이 적용된다. 물론, 당연히 이외에도 도로에서 일어난 많은 행위가 「형법」의 적용을 받는다.
4. 보복운전? 위협 운전?: 특수폭행, 특수상해, 특수협박, 특수손괴
보복운전은 고의로 특정인에게 상해, 폭행, 협박, 손괴 등을 가하는 행위다. 경찰청은 특정 대상을 상대로 갑자기 추월하여 급정거를 하거나 급감속을 하는 경우, 특정 대상을 쫓아가 고의로 추돌하는 경우, 특정 대상의 앞에서 급정지 후 진로를 막고 욕설을 하는 경우, 특정 대상을 중앙선이나 갓길로 몰아붙이는 행위 등을 보복운전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소개하고 있다. 실제 판례를 들여다보면, 특정 대상을 상대로 끼어들기를 하는 행위도 보복운전으로 인정되며, 심지어 이유 없이 경적을 울리는 행위도 난폭운전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보복운전 관련 판례를 보면, 재판부는 '피고인이 차량 운전이라는 행위를 통해 피해자에게 공포심을 줄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끼쳤는가'를 주요 쟁점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피고가 해당 행위를 함에 있어서 1) 위협 의도가 있었는지, 2) 해당 행위를 통해 일어날 피해를 예견할 수 있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특히, 행위에 이은 결과에 따라 형이 달라지게 되는데, 상해를 입거나 사망에 이른 경우에는 매우 중한 형을 받게 된다. 결과가 중하지 않더라도, 특정 대상을 향한 보복행위의 목적이나 위협, 협박을 목적으로 한 경우 특수협박죄가 성립 가능하며, 이 역시 중한 형을 피할 수 없다.
법이 '자동차'와 같은 이동수단을 위험한 물건으로 본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다. 이러한 시각이 밑받침되기에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하는 폭행, 상해, 협박, 손괴의 앞에 '특수'라는 단어가 붙게 되고, 중형이 내려지게 된다.
제185조(일반교통방해) 육로, 수로 또는 교량을 손괴 또는 불통하게 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교통을 방해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188조(교통방해치사상) 제185조 내지 제187조의 죄를 범하여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 제261조(특수폭행)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제260조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58조의2(특수상해) ①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제257조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제258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2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제284조(특수협박)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전조제1항, 제2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69조(특수손괴) ①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제366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제1항의 방법으로 제367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69조(특수손괴) ①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제366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제1항의 방법으로 제367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5. 아무리 억울해도 보복운전은 금물
우리나라는 2016년 7월 28일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통해 보복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현재 수많은 보복운전 처벌 사례들은 바로 이러한 도로교통법 개정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벌받지 않거나, 약한 처벌로 넘어갔던 보복운전이 이제는 법의 중형으로 재주목받게 된 것이다.
보복운전에 대해 공부하던 도중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보복운전으로 인해 처벌이 이루어진 판례를 다루는 기사의 댓글에는 언제나 보복운전을 유발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보복운전을 유발하는 사람들의 처벌 요청과 함께, 보복운전을 유발하는 사람에 대한 비난을 쓰고 있었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것이라던지, 1차선에서 저속 주행을 하는 것이라던지, 경적을 울리는 행위에 대한 분노를 엿볼 수 있었다. 심지어 "얼마나 잘못했으면, 저렇게 보복운전을 했겠나?"라는 이야기까지 종종 볼 수 있었다.
두 가지 아쉬움이 들었다. 첫 번째는 우리사회 내면에 존재하는 '분노'와 관련된 아쉬움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가 도로에서 여러가지 방식을 통해 표출되는 이러한 현상을 고치기 위해서는 단순히 처벌을 통해 결과를 해결하는 것보다 무언가 더 앞서는 해결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자신에게 가해진 타인에 의한 피해에 대해 스스로가 보복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마음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지난 글에서 '사적 복수'를 소개하며 법을 통하지 않은 사적 복수는 스스로로 하여금 법의 보호하에서 자신을 내치는 행위라고 말한 바 있다. 상대가 매너 없는 운전을 한 것, 심지어 도로교통법을 어겼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반응하여 보복운전을 하는 것은 엄연한 '사적 복수'가 된다. 우리 법은 아무리 상대방의 부주의한 운전 때문에 피해를 입었어도 보복운전을 한 경우, 이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