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by 윤민지

내가 다니는 회사는 꽤 개인주의적인 분위기다. 신입 시절부터 일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사무실에서 사적인 대화도 거의 오가지 않았다. 질문을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잘 모른다”였다. 누군가 일을 잘 모르면 도와주기보다는 방치했고, 그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사람에 대한 뒷말이 먼저 따라왔다.


나는 늘 모르면 찾아보고, 알게 되면 나누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그런 환경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한편이 계속 불편했다. 그때 마음속으로 하나의 다짐을 했다. 언젠가 내가 선배가 된다면, 적어도 신입에게만큼은 절대 이런 방식으로 대하지 말자고. 모르는 게 있으면 함께 찾아보고, 알려주고,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자고.


그러다 아직 업무 경험이 많지 않던 시기에, 회사에서 아무도 해본 적 없는 일을 맡게 된 적이 있다. 늘 그래왔듯, 우리 회사에서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으니 스스로 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본부장님부터 팀장님까지, 질문을 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볼 때마다 “나도 잘 모르니까 물어보지 마.“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업무적인 질문은 물론 사소한 이야기조차 조심하게 되었고, 결국 모든 걸 혼자 해결하려 애쓰게 되었다.

그 과정은 점점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이 쌓이면서, 일은 어느새 긴장의 연속이 되어 있었고, 내가 점차 망가져갔다.

그러다 문득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기보다는 필요한 말만 하게 되었고, 한때 내가 싫어하던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막아낼 여유조차 없을 만큼 내 스스로가 너무 버거웠다. 그렇게 나 역시, 현재 다니는 회사의 조직 문화에 조용히 동화된 채 하루를 버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나의 업무 특성상 고객사가 있는 회사에서 일정 기간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하게된 프로젝트에서 내가 마음속으로 바라던 ‘리더’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그는 먼저 나서서 문제를 끌어안았고, 팀원들에게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누군가의 의견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끝까지 듣고, 함께 다듬어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 공간에서는 질문이 부담이 되지 않았고, 각자의 생각은 서로 연결되며 새로운 답이 되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오래 잊고 있던 감정을 느꼈다.

존경, 그리고 부러움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전교학생회와 반장을 했고, 대학 시절에는 동아리 팀장을 맡았으며, 조별과제에서도 거의 늘 조장을 맡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방향을 정하고, 결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좋았다. 각자의 잘하는 역할을 나누고, 분위기를 살피며,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 즐거웠고 그 안에서 묘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늘 자연스럽게 사람들 앞에 서 있었고, 리더의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모습은 어느새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조용히, 필요한 만큼만 움직이며 버티는 사람이 되어가던 나에게 그의 모습은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 사람의 방식은 내게 리더란 무엇인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쓰고, 팀원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앞에서 버텨주는 사람이었다.

그 자리는 때론 외롭고 조용할지라도, 그가 먼저 내민 손 덕분에 버텨낸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그 시간과 선택이 오래도록 남아 다시 일어설 힘이 되고 있을 것이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리더의 자리에 다시 서게 된다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기꺼이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내가 과거의 나를 잠시 잊고 있었다고 해서, 그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혼자 견뎌본 시간 덕분에 무엇이 가장 버거운지, 어떤 순간에 도움이 필요한지를 직접 겪어보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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